죽음에서도 피어나는 것이 있다 [1인칭 책읽기]

이민우 기자 2024. 4. 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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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신좌섭 시인의 시, 삶, 죽음
죽음이 삶과 같았을지도 모를
아버지, 아들 그리고 시인
그에게 죽음이란 삶과 같았을 것이다. 사진(왼쪽)은 신좌섭 교수.[사진=연합뉴스]

신좌섭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지난 3월 30일 별세했다.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후 의식을 찾지 못했다. 자기 자신도 준비하지 못했을 죽음. 향년 65세였다.

1978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그는 한평생 의학교육인으로 살아갔다. 국내에서 해외까지 폭넓은 활동에 많은 후학이 그를 존경했다. 하지만 훌륭한 의사였다는 말로 그를 오롯이 담긴 어렵다. 그는 시인이었다. 죽음에서 피어난 시인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죽음이란 삶과 같았을지 모르겠다.

신좌섭 시인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그의 아버지를 소환하곤 한다. 그의 아버지는 '껍데기는 가라'로 잘 알려진 신동엽 시인이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사회참여 시인이었다. 그가 신동엽 시인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곧잘 신좌섭 시인을 통해 신동엽 시인을 읽으려고 하곤 했다.

중학교 시절 그의 선생님이 신동엽 시인의 아들이란 이유로 "신좌섭씨"라고 높여 호칭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물론 신좌섭 시인의 세계에 신동엽 시인의 영향은 있다. 하지만 신좌섭 시인의 시는 독자적이다.

신좌섭 시인의 첫 시집은 2017년 그의 나이 58세에 나왔다. 그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 시를 쓴 적이 없었다. 시를 쓰게 된 건 2014년 가을, 19살이던 아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였다.

[사진 | 실천문학 제공]

아들의 죽음에 잠을 자지 못했던 시인은 새벽이면 깨어나 무언가를 썼다. 그것이 문학이 됐다. 그에게 시는 치유다. 살기 위해 어찌할 수 없는 것. 그는 시집에서 "오십대 후반에 시(詩)를 시작하다니/얼토당토않은 망발이지만,/목숨을 이어갈 방도가 달리 없으니 어찌 하랴?"고 이야기한다.

그의 아버지인 신동엽 시인은 38세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1950년 국민방위군에 징집된 후 소집해제돼 돌아오는 길에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게를 익히지 않고 먹었다가 게에 있던 디스토마에 감염됐다. 그게 암의 원인이 됐다. 시인의 아내였던 인병선 짚풀문화학자는 홀로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키웠다. 신좌섭 시인의 나이 10살 때의 일이다.

그렇기에 신좌섭 시인은 시로 가족사 전체에 남아있는 죽음을 읽어낸다. 그 죽음이란 오히려 생명과도 같아 그의 시집에 내내 꿈틀거린다. 그가 시를 쓰는 것 빼고는 달리 목숨을 이어갈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그의 시집은 죽음에서 피어난 것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
민원실 들어서 신고서를 쓴다
볼펜이 나오지 않는다
오래 끌어온 탓에 벌금 삼만 원
얼굴이 하얀
창구 아가씨가 나를 들여다본다
돌아올 수 있다면
돈이 얼마라도 버티겠건만
십구 년 전 너 태어날 때
이름 석 자 눌러쓰던
이 손으로 네 이름을 지운다
용서해다오
휘청거리며 돌아오는 길
멀리서 아득히 랩 노래 들려온다
이름마저 지워진
네가 외롭게 랩을 부르는구나

-신좌섭, 네 이름을 지운다

신좌섭 시인에게 시집은 일종의 기록이다. 자신 안에 담아둘 수 없었던 감정과 이야기들이 터져 나온 것을 모아 시집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아들과의 추억, 죽은 아버지, 그리고 그의 가족사 이야기가 가득하다.

신좌섭 교수는 시인이자 시대의 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그는 시집을 내며 문학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문학으로 타인을 구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자신은 치유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58세에 진정 시인이 됐다.

그의 가족사가 그러했듯 그도 돌연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에게 그는 의과대 교수로 기억될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신동엽 시인의 아들로 남을 것이다. 나는 그를 시인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 시대의 아버지로 기억하고자 한다.

그에게 죽음이란 삶과 같았을 것이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겠지만 그에게는 익숙할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그의 가족들이 그러했듯, 죽음에서 피어나는 것이 있다. 신좌섭 교수를 시인으로 추모한다. 분명 그로부터 피어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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