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신혼집에서 같이 일하면 안될까”…동전 던지기로 운명 정한 두 남자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4. 4. 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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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50][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42]빌 휴렛 & 데이비드 팩커드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은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창업자의 스토리를 들려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애플, 아마존, 구글, 디즈니의 공통점은?
애플, 아마존, 구글, 디즈니.

오늘도 시작부터 퀴즈입니다. 위의 4개 기업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앞에 3개 기업은 미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기업이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마지막에 있는 디즈니 때문에 정답을 잘 모르시겠다고요?

차고창업한 대표기업들의 차고
답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바로 공개하는 정답! 이들 4개 회사는 공통적으로 미국식 가정집에 딸린 차고(Garage)에서 창업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차고는 단순히 차만 주차하는 공간은 아닙니다. 개인주택의 내부 시설이나 마당의 잔디를 정비하고 정리하기 위한 각종 공구를 비치해두고 월마트나 코스트코에서 사온 수많은 비상식량과 안전재고 물품을 적치해두는 곳이기도 하죠.
자기가 창업했던 차고 앞에 서있는 스티브 잡스
취향에 따라선 카페나 독서실 또는 재택근무의 업무장소로 활용하기도 하는 무궁무진한 확장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업과 혁신을 꿈꾸는 가난한 이들에겐 비싼 사무실을 얻고 임대료를 내는 대신 사용하는 차고 창업(Garage Startup)의 본거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애플, 구글과 같은 기업들은 미국 창업의 요람이라 불리는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 지역을 탄생시켰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탄생지가 된 팩커드의 신혼집
그런데 말입니다. ‘차고 창업’ 하면 많은 분들이 떠올리는 ‘빅테크의 요람’ 실리콘밸리에서, 원조기업은 애플도 구글도 아니란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구글은 인터넷 붐이 한창이던 1998년 캘리포니아 멘토파크 지역의 월 임대료 1700달러짜리 주택차고에서 시작했고요. 혁신을 대표하는 애플은 1976년 캘리포니아 로스앨터스의 한 차고에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차고에서 창업해 실리콘밸리의 원조기업이라 불리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휴렛 팩커드(HP)’입니다.

휴렛 팩커드의 차고창업이 이뤄진 차고
HP는 1970년대 창업한 애플보다도 무려 40여년 앞선 1939년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애디슨 에비뉴 367번지에서 창업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캘리포니아주는 HP의 창업이 이뤄진 차고지를 공식적으로 ‘실리콘 밸리의 탄생지(Birthplace of silicon valley)’라고 인정하며 사적으로 등록합니다. 실리콘밸리가 바로 이 곳 HP의 차고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실리콘밸리 탄생지라고 적힌 HP 차고
마이클 델이 창업한 델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휴렛 팩커드 역시 창업자의 이름에서 사명을 따왔습니다. 그런데 델과 달리 휴렛 팩커드는 2명의 공동 창업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바로 스탠포드 대학교 동기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입니다.
빌 휴렛
빌 휴렛은 1913년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서 미시간대학교 의대에서 교수로 있던 알비온 월터 휴렛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이후 스탠포드 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된 아버지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휴렛은 로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의 바람대로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빌 휴렛은 불행히도 12살 때 아버지가 뇌암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잠깐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열심히 학업에 열중한 끝에 스탠포드로 진학합니다. 그리고 스탠포드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꿀 데이비드 팩커드를 만납니다.

데이비드 팩커드
1912년 생으로 휴렛보다 한살 많은 데이비드 팩커드는 미국 콜로라도 주 푸에블로에서 변호사인 스페리 팩커드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어릴적부터 과학과 공학 그리고 스포츠 등에 관심이 컸던 팩커드는 다양한 학문과 운동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변호사가 되길 바란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평소 관심이 많던 전자공학을 전공하고자 스탠포드대학에 진학한 그는 이 곳에서 평생의 동반자인 루실 솔터와 비즈니스 동반자 빌 휴렛을 만나게 됩니다.

데이비드 팩커드(왼쪽)과 빌 휴렛
창업 수업서 운명처럼 만난 둘, 창업을 결심하다
이 둘은 1934년 스탠포드대학에서 진행된 실리콘밸리의 아버지, 프레드릭 터먼 교수의 창업 수업에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사실 말썽꾸러기였던 휴렛과 운동과 공부에 능했던 만능모범생 팩커드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소유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공학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관심, 그리고 사업에 대한 열정으로 공감대를 형성했고 콜로라도로 2주간의 캠핑 여행을 다니며 부쩍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1937년부터 본격적인 회사 설립에 대해 논의합니다. 그리고 2년여간의 준비 끝인 1939년 이들은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음향 발진기(Audio Oscillator) 사업을 시작합니다. 돈이 부족한 그들이 창업 당시 가지고 있던 돈은 지도교수에게 빌린 538달러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앞서 실리콘밸리의 탄생지는 데이비드 팩커드의 신혼집 차고였습니다.

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사실 회사 이름이 휴렛 팩커드가 아닌 ‘팩커드 휴렛’일 뻔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창업을 준비하던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따 회사이름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누구 이름을 먼저 쓰냐였는데요. 이를 정하기 어려워 결국 이들은 동전 던지기를 통해 사명을 정하기로 했습니다.그 결과 빌 휴렛이 승리했고 회사 이름은 지금의 휴렛 팩커드로 결정됐습니다.

HP의 첫 제품 200A
빌의 아이디어에 기반해 휴렛 팩커드가 내놓은 음향발진기는 전기적인 진동을 소리로 만들어주는 기계였습니다. 인공적인 소리를 내는 전자음악이 바로 음향 발진기로 만들어지는 것인데요. 휴렛 팩커드가 처음 만든 음향 발진기 제품은 ‘200A’였습니다. 이어 이를 개선한 200B 모델이 대어를 낚습니다. 바로 영화 판타지아 제작을 준비중이던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였죠. 휴렛 팩커드와 마찬가지로 차고에서 창업했던 디즈니는 영화 제작에 필요한 음향 장비 테스트용으로 8개의 휴렛팩커드 음향 발진기를 구입했습니다.
1940년작 디즈니 판타지아
직원 우선주의, HP 기업문화된 HP way
이후 휴렛 팩커드의 기술력은 입소문을 타고 업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금방 사세가 커진 회사는 1940년 불과 1년여만에 차고를 벗어나 팔로알토의 사무실로 옮겨갔습니다. 또한 창업 초기부터 창업자 둘은 직원들에게 성과를 격려하는 보너스와 수익 배분 프로그램을 실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의 건강 보험 비용을 지원했고 모든 직원들이 수평적으로 대화하고 논의할 수 있는 오픈 플로어 디자인으로 회사를 꾸몄습니다. 또 1940년부터 지역 사회에 첫 기부를 시작하며 지역 공동체 기여에도 힘썼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유지되는 휴렛 팩커드의 기업문화인 ’HP way‘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책으로 출간된 HP way
사업이 본격적으로 개화되려하던 1941년, 회사의 양축 중 하나인 빌 휴렛이 당시 터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군장교로 입대하며 자리를 비웁니다. 무려 1947년까지 군복무를 하는 사이 사업수완이 좋고 영업역량이 뛰어난 팩커드를 중심으로 한 회사는 무전기, 레이더 등 선박 및 항공용 통신장비 등을 제작하며 전쟁특수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전 HP 로고
그 결과 1945년 종전 후 매출 100만달러, 종업원수 200명을 거느린 큰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휴렛이 회사에 복귀한 1947년, 팩커드를 CEO 겸 회장으로, 휴렛을 부회장으로 한 휴렛 팩커드는 법인회사로 기업을 재정비한 뒤 10년 뒤 기업을 상장시키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등 고속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오히려 군복무기간 동안 관련 기술을 더욱 습득하고 전문가를 많이 사귄 휴렛의 경쟁력이 빛이 발한 시기도 이때입니다. 그리고 1966년 휴렛 팩커드 최초의 컴퓨터 ’HP2116A‘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컴퓨터 기업으로의 전환을 시작합니다.
HP 최초의 컴퓨터 HP2116A
이후 수십년간 휴렛과 팩커드는 회사를 이끌며 회사를 성장시켰고, 노년에 회사 경영진에서 완전히 물러선 뒤 재단을 설립하고 자선활동에 매진하며 노년을 마무리합니다.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는 각각 2001년과 1996년 각각 87세와 83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돌한 고딩 스티브 잡스, 휴렛에게 공짜부품을 받다
실리콘밸리의 주춧돌이 된 휴렛 팩커드는 실리콘밸리와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스티브 잡스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전자제품과 컴퓨터에 미쳐있던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부터 전자제품을 조립하거나 해체하는데 능했습니다.
HP와 제휴한 애플 iPod 제품
고등학생이던 잡스는 주파수 측정기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부품이 없어 이도저도 할 수없는 막막한 상황에 쳐한 적이 있습니다. 잡스는 곧바로 전화번호부를 꺼내 들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한 끝에 주파수 측정기 사업으로 이미 대기업이 돼 있던 HP의 빌 휴렛의 전화번호를 찾아냅니다. 그리곤 곧장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부품을 공짜로 좀 얻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20여분간 이어진 통화 끝에 휴렛은 흔쾌히 부품을 내줬고 방학 동안 잠깐이나마 일할 수 있는 일자리까지 주선해 줬다고 합니다. 결국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 법일까요. 휴렛 팩커드의 차고 창업 정신은 스티브 잡스로, 스티브 잡스의 정신은 구글을 창업한 세르게이 브린과 레리 페이지로 이어지며 지금의 실리콘밸리 제국이 완성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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