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제주 관덕정...전통을 디지털 자산으로 만들죠”

신익수 기자(soo@mk.co.kr) 2024. 4. 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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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경 한국문화정보원장 인터뷰

K전통문화 디지털자산化
이미지 만들어 무료 공개
한옥 문양 3억건 다운로드
전시 도슨트 AI로봇 개발해
국립중앙박물관·미술관 보급

암투병 하면서도 문정원 이끌어
“디지털자산, K컬쳐 동력 될 것”
홍희정 한국문화정보원장. [이승환기자]
“K 컬쳐의 모든 것을 디지털 공공 자산으로 만듭니다. 앞으로 K컬처의 핵심 동력이 될 것입니다”

홍희경 한국문화정보원(이하 문정원) 원장(53)은 탱크다. 아니, 멈추지 않고 디지털 공간을 누비는 ‘디지털’ 탱크다. 지난 2020년 10월 부임 이후, 벌써 4년차. 3년의 임기 만료 후에도 문정원과 인연을 이토록 오래 이어간 원장은 사실상 홍희경 원장이 처음이다.

문정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정보화 전담기관이라 보면 된다. 사실상 정보화 기관 수준에 머물던 역할을 문화 디지탈 전환 전문기관으로 퀀텀점프 시킨 주역이 ‘디지털 탱크’ 홍원장이다.

홍원장은 부임하자마자 문화 분야에서의 디지털 가치를 강조하며 ‘문화 디지털 전환 전문기관’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핵심 역할은 세 축이다. 홍원장은 “그동안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다룬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며 “디지털이 일상의 삶에 들어와 대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문정원도 변혁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이를 위해 문화정보서비스 지능화, 문화데이터 생태계 조성, 디지털 기반 확대라는 3대 전략 과제를 혁신적인 ‘IDEA 아이디어’로 이루겠다는 이른바 ‘IDEA 비전’을 선보였다.

홍원장은 기관의 정관 개정 등 내부 혁신과 함께 문화체육관광 전 분야에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디지털 정책이 필요하다는 대외 가치 전파에도 적극 나섰다. 이를 바탕으로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 분야 첫 디지털 전략인 ‘문화 디지털 혁신 기본계획 2025’를 수립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문화 디지털 혁신 통합지원센터’를 문정원이 운영하게 된다.

홍 원장이 무게를 실은 또 다른 축은 대한민국 K 컬쳐의 디지털 자산화 작업이다. 그것도 국민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공자산으로 만드는 중추적 역할을 맡는다.

‘대박’을 친 결과물도 즐비하다. 대표적인 게 전통 문화유산의 디지털 공공자산화다. ‘메타버스 공간’에 활용하는 배경 부품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제주 관덕정 등 한국적 전통가옥의 3D 데이터 작업을 통해 한옥의 처마, 기와 형상과 한복, 전통 문양까지 완벽하게 디지털 공간에 재현하는 작업을 끝냈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K 전통 문화의 DNA를 품은 ‘자산’은 중요하다. 글로벌 오프라인 무대가 디지털세계로 통째 옮겨지는 시점에, 무턱대고 흉내만 낸 건 안된다. 게임 배경 하나하나, 영화 OTT의 한국적 배경 하나하나에, 철저히 역사적, 문화적 고증과 검증이 이뤄진 이 공공자산이 심어지는 것이다.

홍 원장은 이걸 한방에 해결한다. 아예 전세계 게임 개발자들이 쓰는, 디지털 에셋 거래소(오픈마켓)에다 디지털 ‘우리의 것’을 공공저작물 형태로 무료 개방한 것. 이게 다운로드 대박을 터뜨렸다. 현재까지 누적 다운수만 85만회. 레고블록 처럼 한국적 문양이나 기둥, 지붕, 옷 등을 하나하나 뜯어쓸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디지털 전통 문양 세부 건수로 3억4000만건 이상을 내려받은 셈이다.

홍희정 한국문화정보원장. [이승환기자]
홍 원장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오징어게임‘과 같은 K-콘텐츠의 인기를 끌면서 글로벌 차원의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전세계 개인 창작자와 민간사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놀라워 했다. K 디지털 공공 자산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일부 중국 네티즌들이 우리 한옥을 적반하장 ’중국 건물‘이라고 주장하는 등 ’디지털 동북공정‘ 같은 사태가 빚어지기까지 했다.

작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의 디지털 자산화 작업까지 시작했다. 디지털 공간에서 수원 화성을 둘러보고, 한국인 디지털 휴먼까지 개발하는 등 K컬쳐에 정교함과 세밀함을 더하고 있다. 올해에도 국민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의 범위를 더 확대할 계획이다.

문정원이 무료 공개한 디지털 자산.
홍원장이 강조하고 있는 또 하나의 핵심 축은 ‘문화 리터러시’ 확산이다.

홍 원장은 “문화 디지털 대전환은 문화 러터러시를 위해 필수적이다. 국민 누구나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지역·계층의 제약 없이 우리 문화를 쉽게 질기고 누리게 하려는 의도”라고 강조한다.

문정원이 내놓은 결실이 문화전시 해설 도슨트 로봇인 인공지능(AI) 큐레이팅봇 ’큐아이‘다. 자율주행 기반의 ’큐아이‘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극장 현대미술관을 누빈다. 다국적 언어 구사 능력쯤은 기본. 문해력 향상과 문화 향유를 위해 사회적 약사를 위한 수어 해설 서비스와 휠체어 동행 안내서비스까지 척척 해 낸다. 심지어 박물관 현장까지 물리적 거리가 있는 오지 주민들을 위해서는 원격접속 해설까지 제공한다.

도슨트 AI로봇 큐아이.
추가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 부문은 데이터 기획이다. ‘데이터가 컨텐츠이자 새로운 가치(value)’라는 게 홍원장의 지론이다.

현재 정부의 빅데이터 플랫폼은 산림, 교통, 의료 등 21개 다양한 분야에 포진해 있는데, 그 중 문화 분야의 빅데이터 플랫폼은 문정원이 맡고 있다. 문화 전반에 걸친 공공분야의 데이터를 민간에 무료 개방하고, 야놀자, 레드테이블 같은 사기업 분야의 데이터를 연결해, 데이터를 거래할 수 있게끔 만든 오픈 마켓 개념이다. 거래건수로는 교통 분야 다음 2위에 올라 있다.

홍 원장은 “곧 문화여가생활관측소도 선을 보인다”며 “우리 국민의 문화 소비 전반에 걸친 트렌드를 한눈에 시각화 해서 표나 그래프로 가져갈 수 있다”며 “데이터 자체가 하나의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왔다”고 설명했다.

한 기관의 전리품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많은 결과물들. 이 모든 게 홍 원장 취임 후 불과 3년여 만에 이뤄진 일이다. 일련의 데이터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뒤에는 그의 경험이 녹아 있다.

MBC 예술단으로 입사한 그는 프로덕션 이벤트 팀장을 거쳐 MBC C&I에서 전략사업팀장·출판팀장·기획팀장·스마트미디어팀 부국장을 역임하는 등 문화 전반을 두루 경험했다.

그가 취임 후 항상 잊지않고 지낸 키워드는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 정신이다. 그가 둥지를 트고 있는 원장실의 한 쪽 벽면에는 지금도 현대판 AI의 문양과, 전통 문양이 공존하는 대형 그림이 붙어 있다. 법고창신의 정신을 형상화 한 것이다.

원장 임기를 쉴틈 없이 완주하고 퇴임을 앞둔 지금, 아쉬운 건 없을까.

0.1초만에 답이 날아든다. 그는 “업무적인 영역은 틀이 갖춰졌다.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 기관의 포지셔닝”이라고 단언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정보화센터로 2002년 출범한 문정원은 사실상 법적 설립 기관이 아니다. 법적 기반이 없는 조직인 만큼 규모 확장과 예산 확보가 힘들 수 밖에 없다.

홍 원장은 문정원을 ‘엔진만 좋은 경차’에 비유한다.

“체격은 경차 수준인데, 업무가 벤츠 엔진을 달고 산도 넘고 수륙양용으로, 물 위까지 달려가고 있다”는 홍원장은 “데이터 자산은 K컬쳐의 핵심 동력이다. 이 부분만 해결되면 디지털 공간에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심는 역할에 더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벤츠 엔진을 단 경차(?)에 직원들을 대거 태워 고생시킨 데 대한 미안함도 크다. 혹독한 수장으로 기억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일 터.

그는 “기관장 자리라는 게 그렇다. 많은 원장들이 스쳐가고, 또 그 자리를 채운다. 직원들에게는 스쳐가는 원장 중 한명 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각별한 인연으로 이 자리(문정원장)가 남아있을 것 같다”고 귀띔한다.

‘각별한 인연’을 강조하는데는 ‘각별한’ 이유가 있다. 임기를 꽉 채운, 최장기 문정원장이나 다름없지만, 사실 ‘최단기’ 원장이 될 뻔도 했던 것.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그는 사실 문정원장 취임과 동시에 여성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수차례 항암치료를 겸하며, 수십번 그만둘까를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고생한 직원들의 눈과 에너지를 보며 버텼던 것. 그러다 보니, 임기를 채우고 퇴임하는 영예까지 안게된 것이다.

홍원장은 지금도 ‘각별한 인연’을 함께 4년여를 고생한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이 이야기를 한다.

“우리 (문정원)직원들. 짝사랑했고, 앞으로도 짝사랑 할 것”이라고.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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