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굴려, 제비뽑기로 순번 정해” 아파트 가구 입찰, 그렇게 ‘흔들어’ 놨으니.. 분양가만 그리 올랐나?

제주방송 김지훈 2024. 4. 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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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 아파트 ‘빌트인’ 특판가구 대상
‘경쟁입찰’ 선정 → “10년 간 담합 벌여‘
31개 업체.. 관련 매출 2조 상당 추정
입찰가 올려 “아파트 가격 상승 영향”


아파트 분양 과정에 건설사들이 발주하는 특판가구, 이른바 ‘빌트인’(Built-in. 가구나 가전제품·주방기기, 냉난방기기 등을 붙박이장에 매립시키는 것) 구매입찰을 하면서 10년 동안 담합을 벌인 31개 가구 제조·판매업체가 적발됐습니다.

이들은 건설경기 활성화로 인해 출혈경쟁이 예상되자 담합에 나서 ‘주사위 굴리기’ 등 방식으로 낙찰예정자나 순번을 정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관련 매출액만 2조 원에 달했고, 이에 따라 930억 원의 과징금을 물게 됐습니다.

정부당국은 이들이 벌인 담합행위가 사실상 아파트 분양원가 상승을 부추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24개 건설사들이 발주한 738건의 특판가구 구매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합의하거나 투찰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벌인 31개 가구 제조·판매업체들에 대해 시정명령 또는 과징금 931억 원(잠정)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대표적으로 2014년 이래 특판가구 3강으로 꼽히는 한샘에 211억 5,000만 원, 현대리바트 191억 2,200만 원, 에넥스 173억 9,600만 원 등의 과징금이 부과됐습니다.

특판가구의 종류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특판가구는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대단위 공동주택의 건축사업에서 건설사·시행사를 대상으로 공급하는 ‘빌트인’ 가구로 크게 싱크대, 상부장, 하부장, 냉장고장, 아일랜드장 등 주방가구와 붙박이장, 거실장, 신발장 등 일반가구로 분류합니다. 해당 비용은 아파트 등의 분양원가에 포함돼 이들 가구 가격 수준에 따라서 분양원가 증감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입찰은 대부분 최저가 지명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되며 건설사들은 협력업체 풀을 정해놓는 경우가 많아, 건설사별 입찰참여업체들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가구업체들은 대부분 건설사별로 영업 담당자를 지정해놓고 입찰에 참여합니다,

공정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축됐던 건설경기가 2011년부터 다시 풀리고 아파트 입주물량이 늘어나자, 가구업체들이 경쟁 구도 심화에 따른 저가수주 등을 피하려고 담합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구업체들은 입찰 참여 전, 모임 또는 유선 연락 등을 통해 낙찰예정자·들러리 참여자·입찰가격 등을 합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낙찰예정자 합의 과정에 갖가지 방법이 동원됐습니다.

주사위 굴리기를 통해서 낙찰순위 결정한 사례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대우건설 발주 건의 경우 입찰 전 미리 준비한 주사위 2개를 굴려 그 합계가 높은 업체 순서대로 연간단가 입찰의 낙찰순위를 결정했습니다.

또 GS건설 발주 때에는 해당 년도 예상 현장목록을 만든 후에 제비뽑기를 통해 낙찰순번을 정했고 선정된 낙찰예정자는 이메일, 카카오톡 등을 통해 들러리사에 견적서를 전달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해당 년도의 예상 현장목록을 만든 후 제비뽑기를 통해 낙찰순번 결정한 사례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들러리사는 견적서에 적힌 금액 혹은 견적서보다 금액을 일부러 높여서 투찰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실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입찰 실적이 필요한 다른 업체들은 들러리를 섰고, 업체들간에 금액 수준을 올리고 내린 흔적들이 고스란히 확인됩니다.

수령한 견적가격을 조정(‘흔드세요’)해서 투찰하라며 업체간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주고 받은 한 이메일에서도 ‘흔들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들러리사가 견적서 금액을 조정하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로, 사실상 입찰가를 높이라는 식으로 적용됐습니다.

공정위는 또 가구업체들이 낙찰확률을 높이거나 입찰참가자격 유지 목적으로 낙찰예정자를 명시적으로 합의하지 않고 견적서 교환을 통해서 입찰가격만 합의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견적서를 제공받은 업체는 견적서 금액 또는 그보다 높은 금액으로 투찰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결국 견적서를 제공한 업체는 낙찰확률을 높이거나 높은 순위를 확보할 수가 있었고, 제공받은 업체는 입찰참가자격 유지 목적을 달성하면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10년 간 이어져온 가구업체 입찰담합을 통한 계약금액 매출액은 모두 1조 9,45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결국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대다수 국민들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 분양원가 상승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앞서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해 최양하 전 한샘 대표 등 가구업체 6곳의 전·현직 대표이사 등 12명을 불구속 기소하기도 했습니다.

공정위는 “이번 결정은 중·대형 건설사가 발주한 특판가구 입찰담합을 우선 조사해 제재한 것”이라면서 “약 70개 소형 건설사 발주 입찰에 대한 담합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를 통해 제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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