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고시’ 못봤는데 방과후 수업은 추첨?”…‘초보 초등맘’ 역경도 다 지나가리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4. 4. 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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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사진출처=워너브라더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죠? 그런데 다 되더라고요.”

워킹맘의 희망이었던 사립초등학교 입학이 좌절되던 날. 처음 드는 생각은 ‘앞으로 어쩌지’였다. 사립초등학교에 지원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늦은 하교였다. 지난해에는 총 3곳의 사립초등학교를 지원할 수 있었는데, 근처의 학교들을 찾아본 후 셔틀 버스를 타면 4시 이후에 귀가할 수 있는 학교들만 골라 지원했었다. 상대적으로 아침 일찍 등교를 하는 것도 장점이고, 하교 시간이 늦기 때문에 학교에서 생활하다가 돌아오면 시터 선생님이 무리 없이 아이를 픽업할 수 있어 좋았다. 추첨 당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온라인 창을 3개 띄워놓고 합격자 발표 생중계 방송을 봤다. 모든 학교에 탈락하고 대기번호 조차 받지 못한 채 방송이 끝났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탄식이 흘러나왔다.“와, 이제 어떻게 하지?” 어떻게하긴 뭘 어떻게 하겠나. 통장님이 띵동, 벨을 누르고 취학 통지서를 전달해 주시면 받으면 된다. 우리 첫째는 그렇게 집앞의 공립초등학교에 배정되었다.

어떤 회사들은 초등학교 1학년 휴직 혹은 휴가가 있다고 하던데, 참 훌륭한 회사들이다. 당장 12시 50분이면 하교하는 아이를 단 몇달이라도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에게도 오랫동안 아이를 돌봐주신 시터 선생님이 계시지만, 4시 이후에 와주실 수 있기 때문에 사이 시간을 메워야했다. 워킹맘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없을 때 우리 아이가 안전하게 나를 대신할 수 있는 보호자가 있는 환경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놔야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어린이집·유치원에 맞춰 세팅해놓은 보육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등학교에는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 하교 후에도 학교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돌봄 교실이 있다. 그나마 나는 처지가 조금은 나은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돌봄교실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다른 동네의 다른 학교에 아이가 배정된 나의 친구는 돌봄교실 추첨에서 똑 하고 떨어졌다. 누구나 학교에서 돌봄을 활용할 수 있다는 늘봄교실이 2학기에 생긴다지만, 그야말로 딴 세상 이야기다. 우리는 당장 출근을 해야하고 아이들은 지금 입학을 해야한다.

돌봄교실에 보내면 되겠지, 했던 나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주 10시간을 채워야만 돌봄 교실을 계속 이용할 수 있는데, 오후 시간을 떼우기 위해 등록해놓은 학원에 시간을 맞춰 이동하려면 주 10시간 돌봄 교실 이용이 불가능했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을 해보자! 아, 빈 시간 동안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수업을 들어야겠구나. 그런데 방과후 수업 시간표는 언제 나오는 것일까? 엄마들은 학교 입학이 결정된 순간부터 아이들의 시간표를 짜야하지만 방과후수업 시간표는 3월 입학식이 지나고 나서야 공개된다. 게다가 방과후 수업은 신청한다고 모두 들을 수 있는게 아니다. 인원 제한이 있고 인원이 초과될 경우 무작위 추첨으로 방과후 수업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초등학교 1학년 하교 시간 직후 수업은 모두 어마무시한 경쟁률을 자랑한다. 20명 정원의 수업에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지원한다. 방과후 수업 추첨 결과는 3월 10일이 지나서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머릿속이 하얗다. 아이의 입학 전에 시스템을 만들고 세팅을 완료해놓고 싶었지만 그때까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결국 빈칸이 가득한 일정표를 들고 입학식을 맞이했다. 그 사이에 틈이 나는 대로 퇴근 후나 점심 시간을 이용해 태권도 학원, 미술 학원을 포함해 다양한 학원의 상담을 다녔다.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보고 등록을 ‘해 줄지’ 결정하는 학원들이 많아 요즘은 ‘7세 고시’라는 말도 생겼다지만 나는 그보다 ‘안전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았기에 그나마도 학원에 불쑥 찾아가 상담을 할 수가 있었다. 레벨테스트를 보러다닐 여유가 없어 7세 고시를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속으로 ‘방과후 수업을 미리 확인하고 등록할 수 있게만 해 주면 이렇게 학원을 미리 알아볼 일도 없을텐데’ 싶었지만, 그런 불평도 사치였다. 눈 앞에 닥친 것들을 정리해야만 했고 하교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는 학원을 알아봐야 했고 자리가 있다면 일단 등록을 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긴 빈칸에 또 걱정이 한가득 이었다. 마음만 분주할 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시간들이 불안감을 키웠다. 걱정에 잠이 들지 못하는 날들도 이어졌다.

문제를 가득 안은 채 시간은 흘러갔고, 그새 돌봄교실과 방과후 수업 신청이 끝났다. 조금씩 빈칸은 메워져갔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학원 이동 전까지의 공백을 방과후 수업으로 메울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셔틀버스가 없는 것도 골칫거리였지만, 비슷한 처지의 엄마·아빠들의 품앗이로 해결이 되었다.

퍼즐이 다 맞춰지고 나서야 선배 엄마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결국에는 어떻게든 다 되더라’는 말 말이다. 퍼즐은 어떻게든 맞춰지고 하나의 퍼즐이 빠져버린다면 다른 것으로 메울 수 있게 된다. 방과후수업 합격 덕에 큰 고민을 덜었지만, 돌아보면 방과후수업으로 빈칸이 메워지지 않았다면 또 다른 대안을 찾았을 것 같다. 아마도 지금의 시스템이 또 붕괴될 가능성이 적지 않겠지만 그때는 또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시간을 겪었지만 이 경험 조차도 육아의 과정에서 엄마가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인 것 같다. 변수가 생길 때 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경험하지만, 계획했던 일이 내 뜻 대로 안될 때 너무나도 입맛이 쓰지만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아주 조금은 초연해지고 있다.

나같이 좌충우돌을 겪어가며 아이를 키우는 초보 워킹맘들에게 영화 인터스텔라 속 대사를 공유하고 싶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라는 대사다.

지나보면 우리는 항상 답을 찾았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서로 위로하고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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