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시대’ 이후를 바라보는 중동의 노림수를 읽어라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4. 4. 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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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국부펀드 활용해 해외 기업·자산 잇달아 매입
한국, 중동 산유국과 광업 분야 동반 진출해 리스크 줄여야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부존자원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제일 부러운 곳은 각종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이다. 그중에서도 중동의 경우 현대문명의 핵심인 석유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어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탈탄소와 재생에너지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원유 생산비용을 자랑하는 중동 국가들은 여전히 석유를 판매하며 살아남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자동차가 전기차로 바뀌더라도 플라스틱으로 대표되는 석유화학산업은 원료로 석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걱정 없어 보이는 중동 국가들도 고민은 있다. 석유라는 자원은 한정돼 있는 데 비해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몇 배씩 증가한 인구는 중동 산유국의 재정 사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왕정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경제적 과실을 공유해 줘야 한다. 오랫동안 중동 산유국들은 넉넉한 보조금, 공공부문을 활용한 직업 제공 등 다양한 지원책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지속적인 인구 증가는 이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렇기에 UAE나 사우디아리비아 등은 자국 내 민간 일자리를 육성하고, 석유 이외에 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수단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 가운데 가장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막대한 규모의 국부펀드를 활용한 해외 기업 및 자산 매입이다.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면서도 자국의 이해관계를 충족시켜주는 기업이나 자산에 대한 중동 국가들의 공격적인 투자는 이제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산유국인 중동 국가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광업 분야 투자에 뛰어들면서 배경이 주목된다. 사진은 광산 채굴을 준비 중인 대형 버킷 굴착기 모습 ⓒDPA 연합

인구 느는데, 석유 자원은 한정돼 있고…

최근 중동 산유국들은 광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23년 아프리카 잠비아의 대규모 구리광산 매입은 당초 중국과 남아공 기업의 경쟁이 예상됐다.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UAE의 기업이었다. UAE는 지분 51%를 11억 달러에 매입했는데, 금액도 중요했지만 잠비아가 필요로 하는 여러 부문에 패키지로 투자하겠다는 UAE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석유 자원을 보유한 중동 산유국들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자원 독점과 지배적 지위가 가져다주는 이익에 정통하다. 석유의 경우 세계적으로 약 70개 국가가 원유를 판매하는 데 비해 구리·니켈 등 광물자원은 5개 내외의 국가가 전체 공급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4조1000억 달러가 지출돼야 한다는 전망에 비춰보면 당연히 중동 산유국들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특히 이런 자원 보유국 상당수는 중동과 인접한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사우디는 비전 2030에서 석유·가스, 석유화학과 더불어 광업 및 광물 처리를 세 번째 기둥으로 지정하면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우디는 석유와 가스뿐만 아니라 각종 광물자원도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라늄의 경우 세계 매장량의 9%에 이른다. 사우디는 국영 광산그룹인 마덴(Ma'aden)을 통해 자국에 매장된 2조5000억 달러 규모의 광물자원을 개발하고자 한다. 하지만 훈련된 엔지니어와 광물 개발에 필수적인 물 부족 등으로 인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단기적으로 사우디는 해외 광산 투자를 통해 노하우를 습득하고 관련 인력과 시스템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일본의 종합상사가 수행했던 업무 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남아시아를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사우디는 지난 1월 이집트, 러시아, 모로코, 콩고민주공화국과 광산 탐사 계약을 체결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동 산유국의 대규모 광업 투자는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유리한 점이 많다. 광업은 이익 발생 이전에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데 산유국들은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는 주주들의 간섭 없이 이러한 투자를 집행할 수 있다. 실제로 기존의 주요 광업 메이저 기업들은 증가하는 배당금 요구로 인해 신규 투자 여력이 축소됐는데, 이 틈을 중동 산유국들이 파고들고 있다. 분쟁 지역 진출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규 개발 잠재력이 있는 광산 상당수는 분쟁 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의 경우 서방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서부 지역에서 진행되는 70억 달러 규모의 금 광산 개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광산에 대한 직접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우디와 달리 UAE는 채굴된 광석을 운반·가공하는 연관 산업에 대한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UAE는 아프리카의 상당수 항구 및 물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탄자니아에서 항만 운영권을 획득하면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중국 독과점 체제 견제 가능" 평가도

중동 산유국의 광업 분야 진출 확대는 그동안 우려됐던 중국의 독과점 체제를 견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자국의 수요 충족 및 영향력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 왔다. 특히 일대일로와 연계된 중국의 투자는 인프라 개발 및 제조업 기반 확충 등을 기대하는 국가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일대일로 사업은 소수의 성과를 제외하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부채 증가와 불투명한 사업 구조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중동 산유국들 역시 중국과 유사한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왕정 특유의 독점적이며 비밀스러운 의사결정 구조가 저개발국가의 부패 구조와 연결됐을 때 나타날 결과물이 무엇일지는 명백하기 때문이다.

중동 산유국 내부적으로는 급속한 투자 확대에 따른 내부 교통정리도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다수의 기관이 경쟁적으로 참여하면서 중복투자 및 과당경쟁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상황을 전략적으로 총괄할 수 있는 기관 또는 인사의 지명이 필요하지만 왕실 인사들 간 경쟁까지 겹치면서 단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자원 빈국인 우리에게 안정적인 자원 확보는 중요하다. 과거에 추진됐던 자원외교는 단기적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실패했다. 자원 수요국이지만 정작 장기적 지원과 투자가 필요한 광업 분야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전문성이 턱없이 낮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어지는 중동 산유국들의 광업 분야 진출은 이들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리스크를 낮추고 자원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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