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거대한 ‘썰’이 되기를 표방한 영화의 노림수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2024. 4. 7. 11:4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자 내세워 원작인 장강명 소설과 다른 방향으로 각색…결말 두고 관객들 반응 극과 극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다. 우리의 일상은 무한 클릭과 스크롤, 검색과 타이핑으로 채워진다. 실시간으로 수많은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개인은 현실 사회의 현상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독자적 검증 능력과 판단력을 근거로 입장을 정한다. 나아가 그것이 사건을 바라보는 본질 혹은 정답이라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그것 역시 여론이나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조작된 선동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 《댓글부대》 포스터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여론을 만드는 심리전과 닮은 영화 

3월27일 개봉한 영화 《댓글부대》는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소수의 인원이 대중을 선동해 권력을 얻는 과정을 폭로하고,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불분명한 동시대를 진단하는 핵심적 주제를 공유한다. 하지만 각색의 방향은 원작과 다른 노선을 취한다. 그 결과 결말을 둘러싼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는 중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허무한 끝맺음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언뜻 주인공의 패배로 마무리되는 듯한 《댓글부대》의 결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는 영화의 진행 방식 전체를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원작과 달리 영화 《댓글부대》는 기자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를 통해 모든 상황과 혼란을 바라본다. 임상진(손석구)은 대기업의 횡포에 당했다는 어느 중소기업 대표의 사연을 취재해 기사를 쓴다. 그러나 이것이 오보로 판명되고, 급기야 제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모든 화살이 임상진에게로 향한다. 정직당한 채 시간만 죽이던 그는 의문의 제보자 찻탓캇(김동휘)을 만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찻탓캇에 따르면 임상진의 기사는 오보가 아니며, '기레기' 프레임을 쓰게 된 것 또한 자신들의 기존 방식대로 온라인 여론 조작을 통한 결과라는 것이다. 찻탓캇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사로 써주면 누명을 쓴 임상진을 돕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임상진은 찻탓캇이 속한 '팀 알렙'의 작업 방식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기자를 전면에 내세우긴 했지만 《댓글부대》에서는 언론의 현실을 고발하거나 저널리즘의 정의를 말하려는 의도가 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자의 소명을 언급하는 동시에, 기사를 '끝나지 않는 연재소설'에 비유하는 임상진이 처음부터 그다지 믿음직한 화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극의 초반부터 반복해서 강조되는 것은 그가 자신이 취합한 사실을 '나만 아는 비밀'로 인식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극 중 임상진은 말한다.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비밀을 마음껏 소문내는 기분을 아는가. 그 쾌감은 기자만이 안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임상진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지금은 일반화된 촛불시위의 기원, 즉 '촛불을 가장 먼저 든 사람은 누구인가'다. 이때부터 화면에 펼쳐지는 것은 임상진의 주장과 그가 제시하는 근거다. PC 통신 이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의 계보도를 그려가는 그의 추적은 2017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촛불집회의 상황과 연결된다. 이는 일부 사실에 기반한 영화적 허구지만, 임상진의 내레이션은 '이 이야기는 실화'임을 강조한다. 뉴스 화면과 푸티지(미편집된 원본)와 온갖 인터넷 밈이 뒤섞인 자료화면은 관객 대다수에게 이미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여론을 만드는 작업은 심리전이다. 특정 의견에 대다수가 동의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방식을 쓰기 때문이다. 극 중 팀 알렙 멤버인 찻탓캇, 찡뻤킹(김성철), 팹택(홍경)의 주특기다. 작업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 상품이 될 수도, 특정 인물이 될 수도 있다. 간접적으로, 교묘하게, 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불법은 아닌 방식으로. 원작 소설에서 찻탓캇은 임상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희랑 댓글로 논쟁을 벌이는 건 쇳덩이로 된 로봇이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쪽이 진 쪽 따귀를 때리는 게임을 하는 거랑 비슷한 겁니다. 가위바위보는 질 수 있지만, 큰 틀에서 저희는 절대 지지 않아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게임. 진실을 파악하고 싶어 하는 임상진과 관객의 이인삼각은 시작부터 불공평한 게임의 법칙에 휘말린다. 

크게 보면 《댓글부대》는 임상진이 팀 알렙의 방식에 동화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어느 순간 찻탓캇과 임상진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찻탓캇은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는 인물이며, 비록 반응은 악플로 도배될지언정 마감 한 번 어긴 적 없다는 자부심이 있다. 극의 후반에 이르러 찻탓캇의 제보를 토대로 성실하게 기사를 쓴 임상진은, 찻탓캇을 통해 들은 모든 말이 그가 몇 달 전 인터넷에 연재한 소설 내용과 동일함을 뒤늦게 깨닫는다. '기사는 끝나지 않는 연재소설'이라던 임상진은 정말로 그 일에 가담해 버린 것이다. 

영화 《댓글부대》의 한 장면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댓글부대》의 결말이 지닌 진짜 효력 

처음에는 또렷하게 구분되던 임상진과 팀 알렙의 세계는 영화가 후반으로 달려갈수록 서서히 합쳐지며, 종국에는 구분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루머일지 모르는 여론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 언론인. 《댓글부대》에서 거짓과 진실, 소설과 기사는 또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영역이다. 급기야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언론사 내부의 사람들에게 임상진은 이미 자신이 공격당했던 언어를 그대로 되돌려준다. "다 똑같네. 기레기 같은 게." 

"사실에 거짓을 조금 보태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는 찻탓캇과 임상진의 논리는 곧 《댓글부대》 전체의 논리이기도 하다. 영화는 댓글 공작이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형상화하려는 데 더 목적을 둔다. 임상진이 겪는 거대한 혼란은 관객의 그것과 동일하다. 다시 말해 영화가 하나의 인터넷 게시물이자 거대한 '썰'이며, 우리는 러닝타임 동안 그것을 읽는 과정에 동참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안국진 감독은 댓글부대의 정체, 이들이 어떤 권력과 결탁돼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헤치는 것보다 이 같은 체험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결말이 허무하다거나 뒷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도 일리는 있으나 온전히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망감은 대개 댓글부대의 존재 여부와 실체를 고발하는 마무리를 기대했던 데서 기인한 것일 테지만, 애초에 이 영화는 댓글부대의 진짜 정체를 까발리는 단순한 목적성을 향해 갈 수 없다. 영화가 진단한 동시대가 아무것도 규정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만드는 거대 권력이 모습을 감춘 사이에 수많은 을과 병과 정의 대립과 각자도생을 위한 싸움만이 남은 사회. 진실 추구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계속 탄생하는 패착의 세계. 정체의 심판은 오히려 영화의 영역이 아닌 법의 영역일 것이다. 

다시 마지막 장면. 알고 보면 영화의 시작과 연결되는 이 장면에서 임상진은 언론이 아니라 댓글부대 방식으로 자신이 포착한 진실을 퍼뜨리기로 결심한다. 그를 궁지에 몰고 나락으로 끌어내린 방법 그대로 반격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가 있는 공간은 언론사 편집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신없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PC방이다. 

물론 임상진의 반격이 통했는지, 반향 하나 없는 최후의 발악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영화는 모호한 결말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후의 파장을 열어둔 채 마무리된 것이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이 결말의 진짜 효력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관객 각자는 지금까지 본 것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해석하려는 움직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자본이 투입된 하나의 문화 상품이지만, 그 정체성에서 벗어나 하나의 거대한 커뮤니티 글이자 밈이 되기를 자처한 영화의 목적은 이렇게 성공한다. 원작에 따르면,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