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장작 넣고 尹 불붙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최저임금 차등…노동계 반발

세종=손덕호 기자 2024. 4. 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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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임금 2가지 방안 제시
尹대통령, ‘가사 사용인’ 정책 수립 지시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 이주민, 육아·가사에 장점”
돌봄 서비스 업종 최저임금 차등 적용도 부상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경제분야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일반적인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자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서 심각한 저출산 문제 해결책으로 이 방법이 언급됐고, 윤석열 대통령도 취지에 공감하면서 정부에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노동계는 외국인이나 돌봄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주는 것은 차별이라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7일 노동계에 따르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논의할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9명 중 2명을 돌봄 근로자로 추천했다. 한국노총 추천은 최영미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지부장이고, 민주노총 추천은 전지현 전국돌봄노조위원장이다. 돌봄 근로자가 다른 업종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될 것이란 가능성이 나오자 이를 막기 위해 투입된 셈이다.

◇이정식 장관 ‘현실론’…”오죽하면 그런 이야기 했겠나”

노동계의 경계를 불러일으킨 것은 한은이 지난달 발간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간병·육아와 같은 돌봄 서비스 부분은 인력난을 겪고 있고 향후 고령화로 더 심해질 것이라면서 급증하는 수요를 국내 노동자만으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 임금을 올려 내국인 종사자를 확대하는 것은 비용 부담이 크고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게 한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1안은 개별 가구가 외국인 근로자를 사적 계약으로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다. 현행법상 사업주와 고용 계약을 맺은 서비스 제공자는 ‘가사 근로자’여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적용받지만, 일반 가장이 직접 고용하면 ‘가사 사용인’이어서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2안은 고용허가제 외국인력(E-9 비자) 허용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추가하고, 이 업종에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적용하자고 했다. 다만 한은은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보고서는 한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최저임금은 업종별로 다르게 설정할 수 있지만, 제도가 도입된 1988년을 제외하고 한 번도 실제로 차등 적용된 적은 없다. 지난해에도 최저임금위에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안건이 표결에 부쳐졌지만 찬성 11표, 반대 15표로 부결됐다.

한은의 돌봄 근로자 최저임금 차등 주장에 대해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의 이정식 장관은 ‘현실론’을 펼쳤다. 이 장관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가사노동 현실을 보면 고용도 어렵고 (종사자 중) 50대 이상이 90% 이상으로 고령화되고 있다”며 “최저임금위에서 이런 부분을 감안해 수용성 높은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 보고서에 대해서는 “한은 연구자가 한 발언 취지는 존중을 해야 한다. 오죽하면 그런 이야기를 했겠나”라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현재도 중국 교포 가사 도우미로 활동…문 더 넓히고 임금 인하 추진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한은 보고서에 제시된 1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면서 “내국인 가사 도우미와 간병인의 임금 수준은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국내에 이미 거주 중인 16만3000명의 외국인 유학생과 3만9000명의 결혼 이민자 가족분들이 가사·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면서 “가정 내 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 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 이민자는 한국어 능력이 우수하고 국내 생활에 이미 적응한 상태여서 “육아와 가사를 돌보는 데 상당한 장점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무부와 고용부에 관련 정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현재도 외국인이 가사도우미(가사관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재외동포(F-4)나 방문취업(H-2) 비자를 가진 중국 교포(조선족)아 결혼이민 비자로 장기 체류 중인 외국인만 가사·돌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외국인 유학생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임금 하한선도 낮추는 변화를 주자는 내용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고 낮은 임금을 지급하자는 방안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주장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고용부와 서울시가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100명 도입해 시범사업을 시작하지만 내국인과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주는 것으로 결정됐다.

오 시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한은 보고서에 대해 “신중한 한은이 이런 의견을 낸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시급하다는 것”이라며 “간병 도우미는 월 370만원, 육아 도우미는 월 264만원이 드는 현실을 지적하며 외국인 가사 도우미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싱가포르·홍콩 사례도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와 서울시가 협력해 올해부터 외국인 가사 도우미 시범사업이 시작되지만 비용이 장벽”이라며 “현재 방안대로 외국인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월 200만원이 넘어서 대부분의 중·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가진 최저임금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한국노총 “외국인 유학생이 최저임금 못 받으면서 돌봄노동 선택할 리가”

노동계는 돌봄 업종이 다른 분야보다 최저임금이 낮게 설정되지 않도록 최저임금위 차원에서 대응했다. 이외에도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거나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우다야라이 이주노동조합 위원장은 돌봄 서비스 업종 최저임금 차등 적용과 관련한 이 장관 발언은 “이주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낮게 책정하자는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용과 직업에서 차별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111호 협약 위반이며, 국적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제16조 위반이며 헌법의 평등권에도 위배된다”고 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지난달 28일 양대노총이 개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한은 보고서에서 저임금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활용하는 싱가포르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제도가 없다”고 했다. 제도 자체가 없으므로 외국인에게 내국인보다 낮은 임금을 줘도 차별이 아니다 또 홍콩에 대해서는 ILO 제111호 차별금지협약을 비준하지 않았고, 대만은 ILO 회원국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세 곳과 한국은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한국노총은 성명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돌봄 근로자로 활용하자는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외국인 유학생은 대부분 어린 학생이어서 아이를 키워본 경험도 위급 상황에 대처할 능력도 부족하다”면서 가정에서 아이를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유학생들도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돌봄 노동을 선택할 리 없다”고도 했다. 결혼 이민자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돌봄이 필요한 맞벌이 가정은 주로 도시에 있고, 결혼 이민자들은 비수도권에 많이 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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