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클럽 간 남친, 다른 여자랑 먼저 나가놓고선…“나 지금 출장 가능한데” [씨네프레소]
[씨네프레소-117] 영화 ‘러스트 앤 본’
“만일 네 눈이 너를 죄 짓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
마태복음에는 예수가 이처럼 말했다고 적혔습니다. 그는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고 얘기합니다. 예수는 손과 발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신체를 찍어내 버린다면 며칠 안 가 목숨을 잃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몇 시간이 채 안 걸릴지도 모르죠.
반대로 말하면, 심각한 상처를 입는 건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몸에 남은 흔적을 통해 자기 과오에 따른 대가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죠. ‘러스트 앤 본’(2013)은 몸을 다침으로써 구원받은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들에게 그다지 자상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는 대놓고 아이를 때리지는 않지만, 종종 거친 손길로 아이에게 감정을 드러냅니다. 한 번은 아이가 아빠 말을 듣지 않고 냄새나는 개집에서 오래 노는 일이 있었는데요. 알리는 아들이 오물 묻은 물건이나 되는 듯 강한 물줄기로 씻겨냅니다. 또 다른 날엔 우는 소리를 듣기 싫다고 아이를 강하게 흔들다가 모서리에 머리를 찧게 하기도 합니다.
어쩐지 그녀는 알리를 점점 편한 사람으로 느끼게 됩니다. 알리 앞에서만큼은 자신이 사고를 당해서 달라졌다는 걸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잠자리를 갖게 되고, 스테파니는 사고 이후 오랫동안 쳐다보지 못했던 자기 다리를 어루만지고 응시할 수 있게 되죠. 옛 직장을 찾아가게 되고, 다리 절단의 원인이 됐던 고래와도 다시 인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 날 스테파니는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알리에게 따지는데요. 스테파니에게 알리는 “나 지금 ‘출장’ 가능한데”라는 황당한 답변을 합니다. ‘출장’은 두 사람이 성관계를 에둘러 표현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밀어였는데요. 심각한 질문을 하는데 ‘지금 같이 자지 않겠느냐’는 엉뚱한 대답을 들려준 셈이죠. 그 답변을 듣고 스테파니는 왠지 화가 나기보다는 남자를 이해하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동물처럼 단순하지만, 거기에 어떤 악의가 있는 건 아니라고요.
문제는 마트 노동자였던 알리 누나가 규정 밖 행위를 하던 것이 해당 CCTV에 찍히면서 발생합니다. 알리 누나는 수년 만에 찾아온 동생을, 심지어 아들까지 포함해서 거둬줬는데 동생 때문에 졸지에 실직자가 된 것이죠. 알리 누나의 비위가 대단한 건 아니었습니다. 유통 기한이 지나서 어차피 폐기해야 하는 음식을 집에 챙겨온 정도였죠. 알리는 누나를 그렇게 만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누나는 알리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요청합니다. 알리는 아들을 두고 가출합니다.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알리는 스테파니와 통화합니다. 영화에서 그가 우는 모습이 처음으로 잡힙니다. “세 시간이나 샘이 혼수상태였어. 세 시간 동안 죽었던 거야. 샘을 잃을까봐 너무 두려웠어. 나를 버리지 마. 사랑해.”
본인이 남을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두 가지 충격적 사건으로 알게 됐습니다. 하나는 누나에게 버림받은 것입니다. 자신을 조건 없이 받아줬던 누나가 집밖으로 내치는 사건을 통해 그는 누나가 받은 상처를 짐작하게 됐습니다. ‘의도가 없었다’는 게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아들이 죽을 뻔한 사건까지 발생하며 그는 뼛속 깊이 새기게 됐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지 않으면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손가락뼈가 부러진 것은 그에겐 축복이었습니다. 영화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손에는 뼈가 27개 있다. 팔이나 다리뼈가 부러지면 더 강해지기도 하지만 손가락이 부러지면 절대 완치될 수 없다. 펀치를 날릴 때마다 통증을 느낀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어느새 갑자기 그 고통이 살아난다.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나를 찌르고 또 찌른다.”
알리는 깨진 유리 조각처럼 자신을 계속해서 찌르는 그 고통 때문에,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 늘 되새길 것입니다. 무심함으로 인해 하마터면 누나를, 아들을, 연인을 잃을 수 있는 사람임을 뼈마디가 저릴 때마다 상기하게 될 것입니다. 신체적으로는 전보다 못하게 됐을지 모르지만, 타인의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살아가던 짐승 같은 상태에서 그는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아픔을 통해 그는 구원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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