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변영재 통역의 가장 큰 행복, 선수단과 느낀 희노애락

손동환 2024. 4. 7. 10: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4년 3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2월 14일 오전에 이뤄졌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변영재 한국가스공사 통역(이하 변영재 통역)은 10년 넘게 농구계에 몸 담은 베테랑이다. 그런 그가 농구계에서 가장 많이 얻은 건 ‘감정’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선수단과 함께 느낀 '희노애락'이었다. 선수단과 같이 느낀 여러 감정들이 변영재 통역한테 대리 만족을 안겼기 때문이다.

“We don't need a superstar here”
위에 나온 제목은 강을준 전 오리온 감독의 명대사(?) 중 하나다. 변영재 통역이 이 기사의 주제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위의 말을 뜬금없이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면을 파고 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강을준 감독이 2010~2011시즌 창원 LG 지휘봉을 잡고 있을 때, 변영재 통역이 LG 선수단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건, 강을준 감독의 타임 아웃이었다. “우리는 영웅이 필요없다고 그랬지! 성리(승리)가 우선이라고 그랬지! 성리했을 때, 영웅이 나타나”라고 할 때, 변영재 통역은 단 하나의 변형도 주지 않았다. 그가 외국 선수들에게 건넨 말은 “We don't need a superstar here”이었다.

2010년부터 창원 LG 통역으로 농구계에 발을 디디셨습니다.
통역하기 전의 저는 해외 마케팅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제 친동생이 마침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고요. 그때 동생이 “형. LG 농구단에서 통역을 구한데”라고 알려줬어요. 그래서 저는 앞뒤 재지 않고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하는 스포츠가 농구여서, 꼭 도전해보고 싶었거든요.
통역 생활이 녹록치 않았을 것 같아요.
농구 용어도 어렵지 않았고, 외국 선수와의 의사소통도 어렵지 않었습니다. 다만, 운동 선수와 해야 할 커뮤니케이션은 약간 달랐습니다. 또, 저희 팀에서 타임 아웃을 요청할 때, 저는 선수들한테 팀의 작전을 정확히 알려줘야 했습니다. 선수들이 타임 아웃 후 정확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제가 선수들에게 인지를 시켜야 했습니다. 통역이 아닌, 설명의 의미가 컸죠. 그런 것들을 첫 시즌 때 배웠던 것 같아요.
강을준 감독님께서 “우리는 영웅이 필요없어”라는 명언(?)을 남기셨습니다. 통역님께서는 그때 “We don't need a superstar here”라고 통역해주셨고요.
감독님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돌려서 표현하기보다, 직설적으로 통역해야 한다고 판단했죠. 그렇게 하는 게, 감독님의 뜻을 100% 표현할 수 있을 방법이라고 여겼거든요.
강을준 감독님의 멘트와 통역님의 번역이 지금도 화제되고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웃음) ‘이걸 어떻게 잘 전달하지? 이걸 어떻게 선수들한테 이해시키지?’라는 생각 자체가 저한테는 벅찼거든요. 그 정도로, 그때는 제 앞가림하기 바쁜 시기였어요.

“신명호는 놔두라고”
변영재 통역은 창원 LG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013년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통역으로 이직했다. 그 곳에서는 국제 업무까지 맡았다. 비중이 한층 높아졌다.
변영재 통역은 인천에서 오랜 시간 보냈다. 유도훈 전 감독과 함께 오랫동안 합을 맞췄다. 유도훈 전 감독과도 잊지 못할 장면을 남겼다. 특히, “신명호는 놔두라고”라는 유도훈 감독의 지시는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전자랜드에는 어떻게 입사하신 건가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았고, 전자랜드 사무국에서도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천에 살고 있었고, 첫 아이가 그때 막 태어났습니다.
LG에서 일할 때는 긴 출퇴근 시간 때문에 아이를 보지 못했지만, 전자랜드는 집에서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집부터 체육관까지 왔다 갔다 할 조건이 충족됐습니다. 구단에서도 그런 점을 생각해주셨고요.
LG와의 차이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유도훈 감독님께서는 늘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또, 저에게 “주어진 업무를 주도적으로 해봐”라고 주문하셨죠. 그래서 저도 외국 선수 스카우트와 외국 선수 연봉 협상 등 제 업무를 주도적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외국 선수 관리도 마찬가지였고요.
말씀하셨듯이, 유도훈 감독님과는 오랜 시간 함께 하셨습니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 대처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를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PLAN E’까지 준비하는 걸 원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사전에 확인하는 습관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유도훈 감독님 덕분에, 그런 습관들을 얻은 것 같아요.
뜬금없지만, “신명호는 놔두라고”는 어떻게 통역하셨나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Let No.17 shoot. No matter what you just don't guard him”이라고 했을 거예요. 작전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표현했던 것 같아요.

또 한 번의 변화
전자랜드는 2020~2021시즌 종료 후 ‘프로농구단 운영 종료’를 선언했다. 전자랜드를 인수한 기업은 한국가스공사. 대구에 본사를 둔 한국가스공사는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라는 이름으로 프로농구단을 창단했다.
연고지부터 달라졌다. 사무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전자랜드 시절부터 10년 넘게 팀을 이끈 유도훈 감독이 2022~2023시즌 종료 후 물러났다. 세컨드 코치였던 강혁이 감독대행으로 2023~2024시즌을 이끌고 있다. 변영재 통역 역시 2021년부터 약 3년 동안 숱한 변화를 마주했다.

전자랜드가 ‘프로농구단 운영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한국가스공사가 새로운 주인이 됐고요.
새로운 모기업이 저희 농구단을 운영하게 됐고, 새로운 도시가 저희 농구단의 연고지가 됐습니다.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모두 어려운 길을 걸어야 했죠. 하지만 저만의 이익을 위해, 저 혼자 빠질 수 없었습니다. 또, 한국가스공사와 연봉 협상도 하지 않았어요. 사무국에는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선수단과 고생을 같이 하겠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연고지와 사무국이 달라져서, 통역님께서 느낀 변화도 컸을 것 같습니다.
체육관 등 기반 시설이 정비되지 않아서, 모든 걸 하나하나 맞춰야 했습니다. 식당 같은 세부적인 요소에도 다양한 플랜을 가동해야 했죠. 선수들이 아마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사무국도 많이 어려웠을 겁니다. 농구단 업무를 처음 했으니까요. 또, 사무국과 선수단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도 필요했습니다. 사무국과 선수단 모두 ‘기준’을 새롭게 맞춰야 했거든요. 그 시간이 꽤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게다가 유도훈 감독님도 2022~2023시즌 종료 후 물러나셨습니다.
‘내가 보좌를 제대로 못해, 팀 성적이 안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반성하게 됐죠. 그리고 감독님한테 힘을 실어주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2~3달 정도는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강혁 코치님께서 감독대행으로 부임했습니다. 통역님에게는 어떤 걸 주문하셨나요?
비시즌 때는 외국 선수와 국내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끔, 수비 훈련부터 다 같이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셨습니다. 그렇지만 2023~2024시즌을 시작도 하기 전에, 외국 선수 구성이 무너졌습니다. 1옵션 외국 선수인 아이재아 힉스가 컵대회에서 아킬레스건을 다쳤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희는 외국 선수를 급작스럽게 교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감독님께서는 선수단 전체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신경을 많이 쓰셨습니다. 의사소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죠. 저 역시 ‘외국 선수와 기존 선수단이 서로 믿어야 한다. 외국 선수를 포함한 팀 전체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코칭스태프와 외국 선수, 국내 선수의 중간에서 ‘전달’을 잘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팀 내 모든 구성원들이 많은 노력을 했기에, 감독님과 외국 선수 간의 믿음이 돈독해진 것 같아요.

희노애락
변영재 통역은 프로농구에 청춘을 바쳤다. 코트에서 많은 변화를 겪기는 했지만, 그의 위치는 그대로였다. 통역 그리고 국제업무 담당자로서 많은 데이터를 누적했다.
그러나 변영재 통역한테 중요한 건 ‘데이터’가 아니었다. 선수들 사이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선수단과 나눈 감정 덕분에, 가장 큰 행복을 느꼈기 때문.
그리고 “외국 선수만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팬 여러분께서 그런 특수성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외국 선수를 우선으로 생각해달라’는 뜻이 아니었다. ‘외국 선수들도 응원해달라’는 의미가 컸다.

통역으로 있는 시간 동안, 어떤 것들을 얻으셨나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행복한 조건 속에서 하는 건 정말 힘듭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가 농구거든요.
다만, 가장 크게 얻은 건, 팀의 구성원으로서 선수단의 희노애락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비록 꿈이었던 운동 선수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팀의 일원으로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어요. 이는 저한테 가장 큰 행복입니다.
통역으로서의 목표는 어떻게 되시나요?
1년이라는 시간이 같은 패턴으로 반복되지만, 해야 하는 일은 매 시즌 종료 후 달라집니다. 거기에 맞춰서, 제 업무를 잘 해내야 해요.
구체적인 의미가 궁금합니다.
외국 선수가 감독님의 의중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고, 감독님과 외국 선수가 조금이라도 더 끈끈해져야 합니다. 그런 관계가 형성되도록, 제가 중간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그게 매 시즌마다 새롭게 달성해야 하는 목표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농구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대부분의 외국 선수들이 어렸을 때부터 ‘농구’라는 하나의 꿈을 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농구에 모든 걸 바쳤죠. 비록 원하는 만큼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해외에서도 자기 자신을 개발합니다.
비록 그 선수들과 우리의 문화가 달라, 우리 눈에는 뭔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 선수들이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선수들이 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해도, 팬 분들께서 이 선수들을 많이 격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국 선수만이 지닌 특수성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외국 선수들도 팬 분들의 마음을 이해해줄 겁니다. 동기 부여도 많이 할 수 있을 거고요.

일러스트 = 락
사진 제공 = KBL

Copyright ©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