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 철조망 너머 북녘 내금강 기암괴석을 그리다

노형석 기자 2024. 4. 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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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한반도 분단 80년째다.

분단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철망이 쳐진 휴전선 풍경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국내 시각예술가들은 철조망의 분단 풍경을 의식하지 않고 작업하는 편이다.

철책 너머 이어지는 북녘 풍경을 부감하거나 사물들의 숨은 면모를 드러내어 분단의 현실을 유추하는 작업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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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지대-무장에 대하여’ 전
분단 화두를 색다르게 꺼내든
진보적 리얼리즘 작가들의 작품
김억 작가가 2019년 작업해 대형화폭에 목판화로 찍은 ‘디엠제트 2019’ 연작들 가운데 ‘양구 두타연’의 위쪽 일부분. 산 능선에 걸친 휴전선 언저리에 국군 최전방초소(지피)가 있고 그 너머 북쪽으로 18세기 조선 진경산수 거장 정선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내금강 봉우리의 기암들이 빽빽하게 묘사되어있다.

내년이면 한반도 분단 80년째다. 분단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철망이 쳐진 휴전선 풍경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국내 시각예술가들은 철조망의 분단 풍경을 의식하지 않고 작업하는 편이다. 철책 너머 이어지는 북녘 풍경을 부감하거나 사물들의 숨은 면모를 드러내어 분단의 현실을 유추하는 작업들이 적지 않다.

지금 서울 관훈동 관훈갤러리와 나무아트에서 나뉘어 열리는 기획전 ‘무장지대-무장에 대하여’(13일까지)는 이런 특징을 보여준다. 참여 작가 17명(강재구, 김억, 김재홍, 김진하, 류연복, 류준화, 박순철, 박영균, 손기환, 송창, 이동환, 이명복, 이인철, 이태호, 정기현, 정지윤, 최경선)은 ‘무장지대‘라는 진보적 리얼리즘 작가 모임의 구성원이다. 최근 남북관계 경색으로 가라앉은 분단 화두를 되살리기 위한 미술 한마당을 표방하며 개성적인 형식과 내용의 작품들을 내놓았다.

관훈갤러리의 1부 ‘무장의 그늘’에서는 3층 들머리에 걸개그림처럼 내걸린 판화가 김억씨의 목판화 ‘디엠제트 2019’ 연작에 먼저 눈길이 간다. 경기도 장단 판문점부터 강원도 철원, 양구를 거쳐 고성에 이르는 휴전선 동서 구간 일대의 주요 풍경들을 화폭 8폭에 펼쳐놓았다. 작가가 눈에 담은 산과 계곡, 강, 인간의 여러 모습들을 조선후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구도로 부감하면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8폭 중 한 폭인 ‘양구의 펀치볼’을 보면, 아래엔 펀치볼 분지, 상단엔 최전방초소가 있고 그 위로 북녘 내금강 기암들이 빽빽하게 묘사된 구도다. 분단 현실이 진경산수의 미학과 어우러진 경지라 하겠다. 북한이 개성공단 관리사무소를 폭파하는 장면이나 남북정상의 도보다리 회담 광경이 들어간 판문점 풍경과 남북 군인이 악수하는 철원 화살머리 고지 풍경에서 전통화법과 지금 현실을 겹쳐 보이게 하는 특유의 화법 또한 엿보게 된다.

1층에서는 이태호 작가가 훈련 중인 탱크 앞에서 기차놀이하며 지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부각시킨 목판화와 탁구대와 나룻배 위에 휴전선 그물을 쳐놓은 설치작품들을 통해 분단현실을 풍자적으로 풀어냈다. 비무장지대 관광지의 행락객 모습을 몽환적 색조로 포착한 송창 작가의 유화 근작과 임진강의 스산한 겨울풍경을 포착한 박순철 작가의 수묵화 근작들도 눈에 들어온다.

나무아트에 펼쳐놓은 2부 ‘무장의 힘’에는 한반도 분단의 역사적 배경이 된 19세기말 외세 침탈과 동학혁명 시기를 조명한 이동환, 류준화 작가의 인간군상 대작들이 돋보인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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