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농구’의 미친 선수는 정창영, SK로 갈 뻔 했던 식스맨이 보여주는 기적
봄 농구에선 ‘미친 선수’가 놔아야 한다는 속설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KBL판 슈퍼팀끼리의 맞대결로 주목받은 부산 KCC와 서울 SK의 6강 플레이오프(PO·5전 3선승제)에서 벤치 멤버의 힘이 승부를 갈랐다.
전창진 감독이 이끄는 KCC는 지난 6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서울 SK와 6강 플레이오프(PO·5전 3선승제) 2차전에서 99-72로 승리했다. 지난 4일 1차전(81-63 승)에 이어 2연승을 달린 KCC는 정규리그 챔피언 원주 DB가 기다리고 있는 4강 PO 진출에 단 1승을 남겨놓게 됐다. 역대 6강 플레이오프에서 1~2차전 승자가 4강에 오른 확률은 100%였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팽팽한 시소게임을 벌이던 3쿼터, 주인공은 정창영이었다. 정창영은 KCC가 58-60으로 역전을 헌납한 3쿼터 2분10초를 남기고 왜 자신이 KCC에 필요한 선수인지 입증했다. 정창영이 과감한 돌파로 골밑에서 송창용을 상대로 득점 인정 반칙을 얻어낸 게 시작이었다.
침착한 자유투로 ‘3점 플레이’를 완성한 정창영은 1분 뒤 수비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줬다. KCC가 61-62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오재현의 속공을 오펜스 파울로 막아낸 것이다. 실점을 내줬다면 흐름이 아예 넘어갈 위기가 거꾸로 공격 기회로 바뀌었다. 그리고 정창영은 또 다른 식스맨 캘빈 제프리 에피스톨라에게 역점 3점슛을 어시스트하면서 KCC에 흐름을 가져왔다. KCC가 27점차 대승을 결정지을 수 있었던 발판이었다.
정창영의 이날 기록은 6점 4어시스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주전들과 비교하면 초라할 수도 있지만 기록의 영양가에선 부족함이 없었다는 게 전창진 감독의 설명이다. 벤치 구간이 약했던 KCC가 상대의 흐름을 빼앗았으니 그럴 법 했다.
KCC는 지난 여름 국가대표급 선수들(최준용·허웅·송교창·이승현·라건아)로 주전을 구성해 KBL판 ‘슈퍼팀’이라는 불리는 전력을 구성한 대신 샐러리캡의 한계로 벤치가 얇아진 팀이다.
특히 정창영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최준용이 SK를 떠나 KCC에 입단하면서 SK 유니폼을 입을 뻔하기도 했다. 당시 SK는 최준용의 보상선수 혹은 보상금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보상선수로 정창영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SK는 정창영이 농구선수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선수이지만 풍부한 경험과 수비 능력으로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부분이 높게 평가됐다. SK는 최종적으로 보상선수 대신 보상금(11억원)을 선택했다. 당시에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으나 정창영이 6강 PO의 중요한 고비에서 미친 선수로 거듭나 뼈아픈 선택이 됐다.
정창영은 자신을 데려가지 않은 SK를 상대로 화려한 6강 PO 피날레를 꿈꾸고 있다. 안방에서 열리는 3차전에서 바로 끝내겠다는 각오다. 그는 “지난 시즌에는 6강에서 SK를 만나 3패로 탈락했다. 또 다시 SK를 6강에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그 복수를 올해하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원정에서 열린 (2경기에) 팬들이 많이 찾아주셨다. 3차전 부산에서 멋지게 경기를 보여드리며 홈에서 끝내겠다”고 덧붙였다.
정창영이 자신의 각오대로 남은 경기에서 미친 선수가 된다면 지난 시즌 SK를 상징했던 ‘미라클’을 KCC로 가져올지 모른다. 기적의 꽃말이 담긴 푸른 장미 한 송이로 시작된 KCC의 거침없는 행진이 어디까지 나아갈지가 이번 봄 농구의 관심사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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