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명 떼지어 눈물의 송별”...‘푸바오 기현상’ 이 나라가 원조?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4. 4. 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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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톺아보기-126]
중국으로 떠나는 푸바오를 환송한다며 용인 에버랜드에 6000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렸다.[연합뉴스]
지난 3일 용인 에버랜드에는 전국 각지에서 구름떼 같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중국으로 돌아가는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를 배웅하기 위해서였죠.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이들 상당수는 푸바오의 마지막을 함께하기위해 새벽 4시부터 대기했습니다. 이윽고 중국행 차량에 탑승한 푸바오가 떠나는 이별의 순간, 주변은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지난해 푸바오의 반환일정이 정해진 이후 에버랜드 앞에는 매일같이 푸바오 팬들이 몰려들었으며, 개장과 함께 이들이 판다월드를 향해 냅다 뛰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외신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했나 봅니다. 지난달 미국 CNN은 한국에서의 푸바오 열풍을 조명하며 “공개 관람 마지막 한 주간 단 5분 관람을 위해 많은 한국인들이 대여섯 시간을 기꺼이 대기했다”고 전했습니다. CNN은 “푸바오는 한국에서 최고 유명 인사” 라며 “열성팬들은 푸바오 삶의 모든 이정표를 따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같은 ‘푸바오 열풍’선뜻 이해가 안 간다는 의견들도 많습니다. 국내에서 이 정도로 특정 동물에 과몰입하는 상황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2월 19일 도쿄 우에노 동물원에서 샨샨과의 마지막 만남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일본 여성. [유튜브 캡처]
다만,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나라가 한국이 처음은 아닙니다. 옆나라 일본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연출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2월 도쿄 우에노 동물원은 일본의 국민 판다 ‘샨샨’을 보기위해 추첨에 응한 6만여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마지막 관람일이었던 이날은 사전 추첨에 뽑힌 이들만 1인당 고작 1~2분 밖에 관람할수 없었지만 개장 전부터 끊임없이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샨샨이 탄 차량이 떠나자 일부는 트럭을 쫓아가며 눈물까지 떨궜습니다.

올해 2월에는 “샨샨 반환 1주년” 이라며 수많은 일본 매체들이 중국까지 앞다퉈 건너가 이 판다의 소식을 전했으며, 지금도 틈틈이 “최근 샨샨” 이라며 사진을 찍어나르는 모습입니다.

52년전 곡절끝 일본땅 밟은 판다...“대기줄 2km, 2시간 기다려 50초 구경”
1994년 용인 자연농원에서 놀고 있는 판다 밍밍과 리리 모습. [유튜브 캡처]
한국 최초의 판다는 ‘밍밍’과 ‘리리’라는 암컷 한쌍으로, 이들은 한중 수교 2년이 지난 1994년에 한국땅을 밟았습니다. 일본땅에 판다가 발을 들인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72년으로 일본이 중국과 수교를 한 직후 였습니다. 중국측이 국교재개를 기념해 판다를 보내 준 것인데, 사실 일본은 국교 정상화와 별개로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중국에 판다를 보내달라고 수차례나 요청했습니다.

일본이 처음 판다를 들여오려 시도했던 건 1958년 입니다. 당시 우에노 동물원의 분원이었던 다마 동물공원 초대 원장이 개장에 앞서 좀처럼 보기 힘든 동물을 들여놓길 원해 일본 정부를 통해 중국측에 타진했지만 거절당했죠.

이후 1960년대에 걸쳐 우에노를 비롯 일본의 다른 몇몇 동물원과 사업가들이 더 적극적으로 판다 공유를 추진하나 번번히 거절당하고 맙니다. 이는 당시 일본 사토 에이사쿠 정권이 중화민국(대만)과의 단교 및 중국과의 국교수립에 소극적인데 대한 중국측의 항의표시였죠.

이후 중국의 유엔가입과 미국 닉슨 대통령의 방중 등 국제정세 급변과 함께, 중국과의 수교에 적극적인 다나카 카쿠에이로 총리가 바뀌면서 국교가 정상화 되자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 판다를 일본에 보냈습니다.

1972년 도쿄 우에노 동물원에 등장한 캉캉과 란란 앞에 모인 군중들. [교도통신]
일본 최초의 판다였던 ‘캉캉’ 과 ‘란란’은 중일 해빙무드와 맞물려 말 그대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습니다. 공개 첫날 우에노 동물원에는 큰 혼잡으로 “2시간 기다려서 50초 관람”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동물원 앞에는 대기줄이 전철역까지 2km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빵, 학용품 등 이들을 테마로 한 관련상품은 기본에, 영화까지 여러편 제작됐고 도쿄시내에는 판다 이름을 딴 가게들이 30개 넘게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중일 국교정상화와 함께 홀연히 등장한 일본내 판다 붐은 한마디로 기이한 현상이었습니다.

사람들에 처음 “귀엽다”이미지 각인시킨 건 1936년 美 건너간 ‘수린’
1929년 중국에서 판다를 사냥한 뒤 기념촬영중인 시어도어 루즈벨트 주니어와 커밋 루즈벨트. [시카고 필드 박물관]
사실 판다에 대해 “귀엽다”라는 이미지가 생겨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판다가 원래부터 인간에게 친근한 동물이었거나 외적으로 귀엽다는 이미지가 있었다면 판다 원산지인 중국에서 먼저 판다 붐 같은게 일어났을 법도 한데, 그런 기록은 없기 때문입니다.

판다가 전세계에 그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은 19세기 후반이었습니다. 1869년 중국에 들어왔던 프랑스 선교사가 판다 가죽과 뼈를 본국에 보냈고, 이를 본 서구 동물학자들이 판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동방에만 있는 신비스런 동물의 존재는 서구 사냥꾼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알려진대로 1929년 미국 켈리-루즈벨트 탐험대가 중국의 허락하에 서방 출신으로는 처음 판다를 사냥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판다는 ‘진기한 동물’ 로서 좋은 사냥감에 지나지 않았을뿐 “귀엽다”라는 이미지는 없었습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언론들은 판다를 “가장 희귀한 동물” 이라고 소개하며 박제된 사진을 게재할 뿐이었습니다.

수린을 안고 귀국하고 있는 루스 하크니스 여사.
이 같은 상황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36년 중국을 방문했던 미국인 여성 디자이너 루스 하크니스가 아기 판다 ‘수린(蘇琳)’을 데리고 귀국하면서 부터 였습니다. 이전까지 판다는 밀렵된 상태로 중국 외부로 반출된 적이 있을 뿐, 살아있는 상태로 외부에 노출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죠.

미국에 도착한 수린은 세계 첫 판다 붐의 주인공이 됩니다. 수린이 루스 여사에게 애처롭게 매달려 있는 한장의 사진은 미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루즈벨트 형제를 비롯한 사냥꾼들도 판더를 수렵했던 자신들의 행위를 반성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이듬해 시카고 동물원에서 모습을 드러낸 수린은 수십만명의 관람객들을 끌어모았습니다.

판다가 미국에서 “귀엽다”는 이미지를 갖게 된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만화 캐릭터와의 유사성도 거론됩니다.

1928년 처음 등장했던 월트 디즈니사의 ‘미키 마우스’는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는 중이었는데, 미국의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 캐릭터의 인기요인으로 유아적 특성을 꼽은 바 있습니다. 판다 역시 큰 머리와 큰눈, 짧은 팔다리 등이 신체적 특징인데, 수린의 등장이 우연히 미키마우스가 유행하던 시기와 겹쳤고 사람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했다는 겁니다.

판다에 관심없던 中, 인기 얻자 도구로 활용...1941년 ‘판다외교’ 시작
1941년 중국 충칭시 자택 마당에서 미국인과 함께 아기 판다를 쓰다듬고 있는 장제스 부인 쑹메이링.
‘중국 판다 외교사’를 쓴 일본 도쿄 여자대학 이에나가 마사키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에서 화제가 되기 이전엔 사실 판다에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린을 계기로 판다 인기가 갑자기 치솟자, 중국 지도부는 판다가 외교적 수단으로 쓸모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941년 중일전쟁이 격화되던 때 장제스 총통의 아내 쑹메이링은 미국에 중국 지원에 대한 감사 표시로 판다 한 쌍을 선물하는데, 이것이 소위 ‘판다외교’의 시초 입니다. 이때 판다를 보낸 건 당연하게도 미군을 확실히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이었죠.

이후 국공 내전에서 중공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판다 외교는 계승되어 미국, 구소련, 유럽, 일본, 남북한 등등 세계 각지로 판다가 속속 보내지게 됩니다.

중국 정부는 주요 무역 상대국이나 외교적으로 중요한 나라를 상대로 때론 친선의 상징과 우호촉진의 수단으로, 때론 압박의 수단으로 판다를 활용해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1972년 미중 접근과 1979년 미중수교, 1989년 톈안먼 사건이후 등등 중요 고비때마다 판다가 등장하곤 했습니다.

중국은 상대방을 중시할수록 판다를 더 많이 제공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실제로 냉전 시기동안 최다 공여국은 항상 미국과 구소련이었습니다.

전문가 “판다 외교, 실질적 효과 크지 않지만 상대국 대중 호감도 끌어올리는데 쓰여”
챗GPT4가 중국의 판다외교를 형상화한 이미지.
알려져 있다시피 중국은 1984년부터 판다 정책을 공여에서 대여로 전환했습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노선에 맞춰 판다 외교도 정치에서 시장 중심으로 정책 축이 옮겨가게 되죠. 마리당 연간 100만 달러의 대여료와 최장 대여기간 10년, 외국에서 태어난 판다까지 모두 자국 소유로 귀속시키는 것 등이 모두 이때 결정됐습니다.

사실 중국이 판다에 대해 엄격한 보호관리를 하게 된 것도 이때 이후의 일입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중국내에서 판다 밀렵이 횡행하곤 했죠. 중국 당국은 개체수가 줄자 1989년 전후에 와서야 판다를 ‘일급 중점 보호 야생동물’로 지정했고 보호관리를 현재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중국이 판다외교 상대로 삼아온 나라들을 보면 “중국에 가치 있는 자원이나 기술을 제공하고 있는 나라”라는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시진핑 정권은 주로 교역관계에서 중요하거나 핵심 대외정책 ‘일대일로’ 와 관계가 있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판다 대여를 늘려왔습니다.

지난해 중국행 판다를 실은 트럭이 미국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해외에 있는 판다숫자는 2020년 기준 미국(11마리), 일본(9마리), 한국(4마리), 대만(2마리), 독일(4마리), 러시아(2마리), 호주(2마리) 등 이었습니다. 중국과의 교역량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죠. 다만 현재 기준으로는 일본이 판다를 가장 많이 임대하고 있습니다.

최근들어 중국은 관계 촉진 보단 압박 수단으로 판다외교를 활용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트럼프 정권때 무역 갈등여파로 판다 4마리를 예정시기 보다 훨씬 빨리 돌려받았고,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로도 미국의 임대 연장요구를 거절하곤 했죠. 현재 미국에 남은 판다는 4마리가 전부 입니다.

다만, 이에나가 교수는 중국이 그동안 판다 외교로 거둔 외교적 효과가 실질적으로 크지는 않다고 지적합니다. 중국이 1941년 이후 지금까지 판다를 통해 상대국의 외교정책 변화나 양보까지 이끌어낸 사례가 있진 않다는 겁니다. 그는 “판다 외교는 우호관계를 0에서 1로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정도 존재하는 우호관계를 더 강화하거나 상대국 대중들의 호감도를 끌어올리는데 사용된다” 고 지적했습니다.

美에 판다 보내기로 급선회한 中...한국선 이례적 ‘푸바오 외교’, 의도는?
지난 4일 쓰촨성 청두 중심가에 걸려있는 푸바오 사진. [연합뉴스]
얼마전까지 중국은 연내 미국에 대여해줬던 모든 판다를 회수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돌연 다시 판다를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자국경제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미국과의 갈등과 국제적으로 커진 비호감 이미지를 굳이 악화시킬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3일에는 한국에 관영 매체들을 파견해 푸바오의 반환 전과정을 생중계했고, 외교부와 대사관까지 나서 푸바오를 키워준데 대한 사의와 푸바오에 대한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이처럼 이례적 적극성으로 ‘푸바오 외교’를 펼치는 것 역시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모종의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푸바오가 주목받으면서 중국의 판다 외교술에 대한 정보는 국내에서도 예전보다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중국에게 판다를 대여받는다면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대여해 주는 건지 그 동기를 응당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정치적 동기 없는 순수한 대여란 있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그동안 판다를 보낸 상대국에게서 자국에 대한 우호적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어느정도 성공해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향후 그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들 국가에서 대중들의 판다에 대한 호감도와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전혀 별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판다 외교’의 효과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앞으로도 중국의 호감도에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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