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완벽한데 외국인? 레미제라블의 에포닌 '루미나'를 만나다 [스프]
빅토르 위고 소설이 원작인 뮤지컬 '레미제라블'에는 에포닌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장발장이 양딸로 곱게 길러낸 코제트는 어린 시절 사기꾼인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맡겨져 학대받은 적이 있는데, 에포닌은 바로 이 사기꾼 부부의 딸입니다. 어릴 때는 코제트가 불쌍한 처지였지만 자라서는 처지가 뒤바뀝니다.
인상적인 그 배우가 외국인이었다고?
오랜만에 찾아온 '레미제라블' 한국어 공연에서도 '나 홀로'를 들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는데요, 이번 공연의 에포닌 역은 두 명의 배우가 번갈아 연기했습니다. 이미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배우 김수하와 함께 이 역을 맡은 배우는 루미나. 굉장히 인상적인 신인 배우였습니다. '레미제라블'이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기도 노래도 안정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루미나는 일본에서 온 외국인 배우였습니다. 아버지는 인도인, 어머니는 일본인, 국적은 일본. 한국에 유학해 서울대 성악과 졸업. 궁금증은 더 많아졌습니다. 일본인이 왜 한국에 와서 성악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을까요. SBS 보도국 팟캐스트&유튜브 프로그램인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초대해 궁금증을 풀어봤습니다.
한국 뮤지컬에 반해서
루미나는 이렇게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한국에 와서 한국 뮤지컬 여러 작품을 봤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에서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일본도 뮤지컬 공연이 많은데, 왜 한국에서 뮤지컬을 하고 싶었을까요.
"일본하고 한국은 아무래도 언어가 다른 만큼, 분위기 자체가 달라요. 일본은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면 한국은 강렬한 느낌이 더 들어요. 아무래도 발음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한국 뮤지컬을 보면서 대사를 못 알아듣는 게 아쉽고, 다른 관객들이 웃을 때 같이 못 웃는 게 속상했다는 루미나는 일본에 돌아가자마자 한국어 공부에 돌입했습니다.
"제가 웬만하면 열심히 했다는 말을 안 쓰는데,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때부터 한 1년 반쯤 한국분한테 1대1 과외를 받아서, 읽는 방법부터 문법, 대화까지, 집중적으로 공부했어요."
(정말 그렇게 1년 반 만에 한국어를 배우셨다고요?)
서울대 유학, 그리고 '레미제라블'로 데뷔
"코로나 시기라 성악 레슨도 영상으로 하고, 피아노 반주랑 잘 안 맞고, 노래하는 동안에 피드백이 오는데 그걸 못 듣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도 녹음해서 보내고 거기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하면서 잘 해결했어요. 대학 생활이란 게 엠티도 가고 동아리도 활동하고 그런 게 좀 없었던 게 아쉬웠어요. 엠티라는 걸 한 번도 못 가봤어요."
서울대에서 성악을 공부하며 뮤지컬 배우의 길을 준비하던 루미나는 맨 처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마리아 역을 지망하며 오디션에 응시했지만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레미제라블' 오디션 공고가 뜨자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합격했습니다.
에포닌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역할이었습니다.
"상견례 때 많이 봐 왔던 선배님들이 쭉 들어오시는 거예요. 와 이분이 계시네, 저분도 계시네, 난 또 왜 여기 같이 있지, 하면서 그저 신기하기만 했어요. 첫 무대를 했을 때도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서 그 순간 내가 뭘 했는지 사실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도 커튼콜 때 박수를 쳐 주시는데, 해냈구나, 내가 일단 첫걸음을 내디뎠구나, 하는 생각에 벅찼던 것 같아요."
'나 홀로'를 부르고 나서 객석의 반응에 감격했던 기억도 들려줬습니다.
"무대가 워낙 어두운 편이어서 객석이 정말 안 보여요. 그래도 웃음소리가 나면 그거도 잘 들리고요. 안 보여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는 건 잘 느껴져요. 'On My Own(나 홀로)' 끝났을 때 객석에서 조명이 나가는데, 그때 처음으로 3층까지 모든 객석이 다 보이거든요. 무대에서 정말 감격스러워요. 이 눈빛들이 확 느껴지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다 보이니까요. 이 장면은 혁명으로 나아가는 장면이거든요. 그래서 '그래, 나 다녀오겠다' 이런 다짐을 하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그 다짐을 하게 만드는 집중력이랄까요? 집중해 주시는 에너지가 느껴져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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