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침실의 일까지야”…‘동성애 며느리’ 퇴출 사건 [김기정의 와인클럽]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선시대에도 ‘키스’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특히 세종대왕 때 왕실을 발칵 뒤집어 놓은 ‘동성애 며느리 퇴출사건’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는 “목을 맞대고 혓바닥을 빨았다”는 것과 같은 적나라한 표현이 등장하는데요. 절대권력을 가진 왕실의 치부를 이렇게 상세하게 기술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무척 놀랍습니다.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조선의 금지된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5월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키스라는 행위는 인류에게 보편적(universal)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당시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한 이 기사에서 연구자들은 여전히 키스하지 않는 문화권이 있다고 밝힙니다. 2015년 미국 네바다대학 인류학과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살펴보면 전 세계 168개 문화권을 연구한 결과 키스를 하지 않는 문화권이 절반 이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중동(100%), 아시아(73%), 유럽(70%) 문화권은 키스 행위 비율이 높았던 반면, 아프리카에선 전체 31개 문화권 중 27개 문화권에서 키스 행위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게 아프리카 ‘마사이족’입니다. 마사이족은 일부다처제로 60년생, 70년생, 80년생 등 같은 연령대 남자들끼리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키스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 중에 아케미는 귀족 가문의 딸로 쇼군에게 시집 보내려는 아버지에게 반발해 집을 나옵니다. 그러면서 “결혼해 이빨을 검게 칠하고 싶지 않다”고 외칩니다.
치아를 까맣게 물들이는 ‘오하구로’라는 풍습입니다. 헤이안 시대 남녀가 성인식 때 하던 것이 중세 이후 여성들의 화장법으로 바뀐 것인데 흰 피부를 강조하고 변색한 치아를 감추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한 기혼여성이 남편에 대한 순종이나 사랑을 맹세하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합니다. 1700년대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의 기록에도 “창녀와 미혼녀를 제외하고는 치아를 까맣게 칠했다.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이유는 그 남편을 위해서 마음을 맹세하는 것이다”라고 서술돼 있습니다.
일본의 오하구로 풍습은 메이지 시대 개화와 함께 사라집니다.
“네 입(口)과 내 입(口)이 마주 닿았으니 풍류(음률) 려(呂)자, 좋구나!”
하지만 ‘키스’의 문화는 이보다 훨씬 앞서 한반도에 상륙한 것으로 보입니다. 왕실의 이야기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는 동성애와 딥키스 같은 표현이 난무합니다. 세종대왕의 두 번째 며느리인 세자빈 봉씨 ‘폐출사건’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대왕 때를 다룬 ‘세종실록’ 18년(1447년) 10월26일의 기록을 살펴봅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담은 조선왕조실록을 한글로 풀어 놓았습니다.
세종이 주위 신하를 물리치고 도승지 신인곤과 동부승지 권채를 불러 말합니다.
“요사이 괴이한 일이 있는데 이를 말하는 것조차도 수치스럽다. (중략) 김씨를 폐하고 다시 봉씨를 간택했는데, 뜻밖에도 세자가 친영(親迎)한 이후로 금슬(琴瑟)이 서로 좋지 못한 지가 몇 해나 되었다. 내가 중궁과 함께 상시 가르치고 타일러서, 그 후에는 조금 대하는 모양이 다르게 되었지마는, 침실(寢室)의 일까지야 비록 부모일지라도 어찌 자식에게 다 가르칠 수 있겠는가.” (세종실록)
왕이지만 자식과 며느리의 잠자리 일을 신하들에게 꺼내야 하는 세종의 ‘킹’ 받음이 느껴집니다. 여기서 세자는 후에 문종이 됩니다. 영화 ‘관상’에서 “내가 왕이 될 상인가”를 외쳤던 수양대군(이정재)의 형이 문종입니다.
이미 첫째 며느리를 폐위시킨 세종은 둘째 며느리 순빈 봉씨 때문에 고민에 빠집니다. 봉씨가 소쌍이라는 궁녀와 동성애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세종실록 내용입니다.
“요사이 듣건대,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이란 사람을 사랑하여(중략) 이러한 일들이 궁중에서 자못 떠들썩한 까닭으로, 내(세종)가 중궁과 더불어 소쌍을 불러서 그 진상을 물으니, 소쌍이 말하기를, ‘지난해 동짓날에 빈(봉씨)께서 저를 불러 내전으로 들어오게 하셨는데, 다른 여종들은 모두 지게문 밖에 있었습니다. 저에게 같이 자기를 요구하므로 저는 이를 사양했으나, 빈께서 윽박지르므로 마지못하여 옷을 한 반쯤 벗고 병풍에 들어갔더니, 빈께서 저의 나머지 옷을 다 빼앗고 강제로 들어와 눕게 하여, 남자의 교합하는 형상과 같이 서로 희롱하였습니다’ 하였다.” (세종실록)
“소쌍이 단지와 밤에만 같이 잘 뿐 아니라 낮에도 목을 맞대고 혓바닥을 빨았습니다. 그들이 하는 짓이며 저는 동숙한 일이 없습니다.” (세종실록)
세자빈은 궁녀 소쌍과 또 다른 궁단인 단지가 사랑을 한 것으로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해명합니다. 단지는 세자의 후궁인 권승휘의 사노비로 세자빈은 궁녀들끼리 동침하는 행위가 와전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세자빈 봉씨-소쌍-단지의 ‘동성애’ 삼각관계를 심각하게 바라봅니다. 더구나 세자의 후궁 권승휘가 딸(경혜공주)을 낳자 세자빈 봉씨가 ‘상상 임신’ 소동까지 벌이며 시기, 질투가 심해지는 것을 참고 있었던 세종이었습니다. 세종은 결국 세자빈 봉씨를 폐하고 궁에서 내쫓는 것으로 사건을 정리합니다.
“키스라는 건 말야. 봐봐! 입술이 다 붙잖아. 그럼 이게 걔 혀. 이게 니 혀.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스르르 뱀처럼. 알지? 스네이크. 그래서 만나. 자연스럽게 막 섞여.”
이렇게 혀를 사용한 키스를 보통 ‘프렌치 키스’라고 부르는데요. 프랑스 사람들의 키스 또는 프랑스식 키스란 의미지요.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 파병되었던 미군들이 귀국하면서 퍼뜨린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에선 혀를 사용한 키스를 피렌체(Florence) 키스라고 불렀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섹시하고 로맨틱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프렌치 키스란 말도 2014년에야 프랑스어 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라고 하네요.
정리해봅니다. 와인을 마셨을 때처럼 치아를 까맣게 물들이는 ‘오하구로’라는 풍습이 일본에 있었습니다. 다만 키스는 인류의 보편적인 행위는 아닙니다. 아프리카 마사이족 등은 키스하지 않습니다. 조선에서는 춘향전에 입맞춤이 등장합니다. 이보다 앞서 세종 때 ‘목을 맞대고 혓바닥을 빨았다’는 조선왕조실록 문구로 입맞춤의 풍습을 간접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성’에 좀 더 자유로웠던 고려시대에도 입맞춤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관련 문헌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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