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지식산업센터, 인·허가 받은 미착공 '1115개'
7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식산업센터, 팔방미인에서 동상이몽으로'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지식산업센터(지산)는 제조업, 지식산업, 정보통신산업 등에 속하는 사업장이 6개 이상 입주하는 산업시설이다. 도시 내외에 산재한 소규모 공장의 집단화를 위해 도입됐다가 첨단산업 입주를 위한 시설로 바뀌었다. 입주 업종에 제한이 있는 반면 취득세·재산세 등의 세금 혜택을 부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영세 소규모 공장의 입지난을 해소하기 위해 1988년 '아파트형공장'이라는 개념로 도입된 후 2010년 이름이 바뀌었다. 정부에서 지산을 산업성장의 거점시설로 보고 택지개발지구 자족용지 등에 적극 도입하면서 2018년 이후 인허가가 급증했다. 대규모 부지 활용과 지원시설 범위 확대 등의 영향으로 규모도 점차 커졌다.
지난해까지 등록된 전국 1528개 지산 중 수도권에 소재한 곳은 1175개(77%)다. 최근 5년(2019~2023년) 등록건수를 기준으로 하면 수도권 비중은 85%로 증가한다. 제조업 공장 형태의 지산도 있으나 도시 내 기업 밀집지역 또는 대도시 인근의 택지개발지구에는 오피스 형태도 다수 입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의 경우 353개의 지산 중 광역시에 160개, 기타 지방에 193개가 위치했다. 광역시가 아닌 곳에 자리한 지산이 더 많다. 수도권은 산업단지가 아닌 곳, 즉 개별입지에 소재한 경우가 훨씬 많은 반면 지방에서는 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지산이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오피스 사용수요가 적고, 노후 산업단지를 재활성화하기 위해 지산을 개발하는 일이 많아서다.
지산은 공실 위험이 높은 상품으로 꼽힌다. 입주업체 대부분이 종업원 10명 미만 중소기업으로 경기가 악화되면 공실이 발생하거나 입주업체가 임대료를 미납할 위험이 큰 편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투자 목적으로 매입하며 손실을 입는 경우가 늘어나며 정부에서 투기방지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지역별 지식산업센터 설립 현황 등 정보를 공유하고 인허가 시 수급 상황을 반영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 중이다. 과도한 투기수요 방지를 위해 분양권 전매와 전대 제한, 처분·임대 시 신고 의무 등이 포함된 법률 개정안도 여러 건 발의됐으나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중소 건설업체가 지산 건설 시장을 선점했지만 최근 대형 건설업체와 전문 개발사도 자체 브랜드를 출범시키며 시장에 진출하고 있어 공사 위험은 줄었다. 2010년대 들어 SK에코플랜트(V1), 현대엔지니어링(테라타워), 한화건설(비즈메트로), DL건설(비즈캠퍼스) 등 대형 건설 업체도 지산 건설사업에 진출했다.
민간에서 개발한한 지산은 개인 또는 소규모 법인이 매입하는 일이 잦고 실사용 목적 외에 매각차익 등을 겨냥한 투자가 많은 편이다. 개인이 임대 목적으로 분양받는 것은 불가하나 사업자로 등록해 분양을 진행하고 준공 후 임대하는 방식은 가능하다.
분양 또는 매입가격의 80% 내외까지 대출이 가능해 대출금리가 낮았던 부동산 호황기에는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대체 투자처로써 개인들이 활발하게 매수했다. 기관투자자나 대기업이 많이 투자하는 오피스, 실수요자 비중이 높은 오피스텔과 달리 지식산업센터는 부동산 경기와 대출 금리에 따라 매입 수요가 크게 좌우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들어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어들며 당분간 가격 조정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이후 인허가 건수가 급증하며 미분양 위험이 커진데다 분양 완료된 물건 중에서도 여러 건이 할인 가격으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거나 대출이자와 관리비 등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지산 인허가(승인) 건수는 2018년 이후 연간 100건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2022년 141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20년 이후 인허가를 받은 곳 중 건축 중인 곳이 45개, 착공 전인 곳이 115개에 달한다.
손정락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건축비 상승 등으로 최근 몇 년간 지산 가격이 급등한 반면 공급 증가로 임대료가 정체되며 임대수익률이 대출금리를 하회하고 있다"며 "가격상승 기대감이 낮고 공급이 많아 임대료 인상이 어려운 곳은 가격조정 등으로 수익률이 올라야 매입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향후 서울 주요지역에서는 오피스형 지산, 산업단지 내에서는 공장형 지산으로 시장이 이분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풍부한 수요를 기반으로 성수·문정·영등포·구로·가산·강서 등에 있는 지산은 향후에도 오피스의 대안 상품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손 연구원은 "산업단지 내 지식산업센터는 인근에 소재한 제조업체 등의 이전수요가 존재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가능하다"며 "중앙정부는 지식산업센터를 활용해 노후한 산업단지를 개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도시 또는 택지개발지구에 개발하는 지식산업센터는 성격이 다소 모호해 대규모 공급 시 수급 불균형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오피스 사용 수요가 적고 조성비가 비싼 반면 주거지역과 혼재돼 공장으로서 활용도도 제한적이다. 기업 이전수요를 반영해 자족용지 규모를 정하거나, 공공기관이 매입하거나 위탁운영자로 참여하는 공공임대형 지식산업센터 등의 정책 대응을 고려해볼 필요가 제기된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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