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남한영상 '보면 공개처형'? 대통령은 '맞다', 통일부는 '아니다'?

마틴와이저 독립연구자 2024. 4. 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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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실만으로 충분히 북한 인권 현실 비판 가능한데 과도한 심리전 하는 이유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미국 방문 당시 윤석열 정부가 최초로 공개 발간한 <북한인권보고서>의 내용을 두 차례 소개했다. 4월 29일 하버드대학교에서 이 보고서에 "남한 드라마를 보았다는 이유로 ... 공개 총살당한 끔찍한 사례"가 담겨 있다고 소개했고 전날인 28일 미국 의회에서는 "some being publicly executed for watching and sharing South Korean shows"라는 표현을 썼다.

이를 두고 <NKNEWS>, <UPI>, 아리랑 TV 등 여러 언론에서 '남한 드라마를 보면 공개 총살당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보도했고 미국 공영방송 PBS도 윤 대통령의 연설을 그렇게 소개했다.

SBS의 동시통역가는 그 표현을 "한국의 콘텐츠를 본다는 이유로 공개처형당하"는 것으로 전달했고, 심지어 대통령실의 통역가도 "대한민국의 TV쇼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공개처형" 한다는 것으로 통역했다. 그 동시통역은 현재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유튜브계정 및 KTV에 나와 있다.

대통령실이 배포한 번역문에는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하고 유포했다고 공개 처형한 사례"로 번역되어있지만 하바드대 연설을 보면 윤 대통령이 '시청하든 유표하든 공개처형'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 같다.

▲ 지난해 4월 27일(현지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미 하원 의회에서 연설을 가졌다. ⓒ통일부UNITV 갈무리

'북한인권보고서'를 보면 남한영상 시청 때문에 사형시킨다는 정확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남한 영상과 관련한 사형사례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남한 영상 시청은 항상 다른 범죄 혐의와 함께 있었다. 필자가 지난해 6월 통일부에 문의를 했을 때도 영상 시청으로 사형당하는 사례는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 조사과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한국영상물과 관련하여 사형된 사례는 일반적으로 한국영상물을 시청하고 유포한 경우 또는 한국영상물을 유포하여 타인을 시청하게 한 경우입니다. 이처럼 시청과 유포 간의 밀접한 연관성을 나타내고자 "시청·유포"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한글에서 문장부호 가운뎃점 (·)은 선후관계 등의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 경우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 보고서에 인용된 한국영상물 관련 처형 사례는 △유포하여 주민들을 시청하게 한 경우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유포한 경우입니다.

이 답변은 보고서에서 소개된 2015년 원산 공개처형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 사형사례는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고 아편을 사용했다는" 혐의로 소개됐다. 아편을 사용한 것 때문에 사형을 내린 사례일 수 있기 때문에 시청으로 사형당했다는 것을 명확히 증명하지는 못한다.

통일부의 탓

북한인권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윤 대통령은 왜 인권보고서의 내용을 왜곡시켰을까? 이유는 보고서의 부족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보고서는 요약문을 포함해 4번 북한에서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 혐의로 사형시킨다고 강조했다. 맥락을 보면 윤 대통령이 오해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종교·미신행위"와 "마약밀수·거래" 표현을 똑같은 문장에 쓰면서 영상시청만 사형죄가 아닌 것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는 "시청과 유포 간의 밀접한 연관성을 나타내고자 '시청·유포' 표현을 사용"했다고 설명했지만 가운뎃점의 애매한 의미를 고려하면 성실하지 않게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 뿐만 아니라 마약거래, 한국영상물 시청·유포, 종교·미신행위 등 자유권규약상 사형이 부과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해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증언들이 수집되었다." (요약문, 22면)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 뿐만 아니라 종교·미신행위, 마약밀수·거래,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 음란물 유포, 성매매 등 자유권규약상 사형이 적용될 수 없는 범죄에 대해 서도 사형이 부과되었다." (62면)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행위로 사형된 사례들도 수집되었는데 한 북한 이탈주민은 강연회에서 주민들을 교양하기 위해 틀어준 영상물에서 공개처형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63면)

"공개처형은 살인죄 이외에도 마약거래, 미신·종교행위,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 등 광범위한 사유로 집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73면)

당시 통일부장관이었던 권영세 현 국민의힘 의원은 보고서의 발간사에서 "이번 보고서의 발간은 단순히 북한인권 상황을 고발하는 데 있지 않으며, 현재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실질적인 해법을 찾는데 근본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통일부의 최고책임자로서 이같은 표현의 부정확성을 무시하거나 허락한 것은 발간사와 어긋난다.

윤 정부의 무책임성과 반북심리전

이 사례로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성이 잘 보여졌다. 실수가 있을 수 있지만 윤 정부는 거짓말도 허락되는 반북심리전을 벌이듯 잘못을 고치지 않았고 KTV, 통일부 및 소속기관들은 정확한 증거물 없이 '남한영상을 보기만 해도 사형시킨다'는 주장을 1년 동안 해왔다.

미국의회 연설의 동시통역은 오역이 매우 많아 정부가 모를리가 없었다. KTV는 중계방송에서 자막으로만 썼지만 몇 시간 뒤에 재방송했을 때 그 자막을 대통렬실의 공식번역문으로 교체하는 것까지 신경을 썼다.

그런데 통일부에 그 동시통역을 쓰지 말라는 지시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초 통일부의 통일담담 프로그램에서 인권보고서를 소개했는데, 미국 의회 연설 장면과 잘못된 동시통역을 자막으로 보여줬고 영상의 썸네일에서는 "TV보면 공개처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지난해 6월 13일 통일부 UNITV의 '통일 담대한 담화' 프로그램의 썸네일. ⓒ통일부UNITV 갈무리

또 윤 대통령이 꼽은 북한인권 침해 사례 3가지 중 하나만 제대로 번역됐다. 세 번째 사레는 "성경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는 자를 공개총살을 한다 (people being shot in public for possessing the bible and having faith)"는 말이었고 이는 사실이지만 통역가는 공개총살을 "처벌"로 낮췄다.
▲ 지난해 4월 27일(현지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미 하원 의회에서 연설을 가졌다. ⓒ통일부UNITV 갈무리

정확히 하자면 윤 대통령이 주장한 이 사례도 인권보고서에서는 찾을 수 없다. 2019년 평양 공개재판에서 "성경을 소지하고 기도생활을 한 사람은 사형을 받았다고" 하는 증언만 언급되었고 사형집행되었는지, 공개총살로 집행되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이는 모두 오역 때문이라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인권보고서가 나오자마자 KTV와 통일부 기관이 '남한영상을 보면 사형' 한다는 주장을 증거 없이 해왔다. KTV는 인권보고서 발간에 대한 보도에서 2015년 원산 공개처형을 "한국 영상물을 시청했다는 등의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고, 바로 총살됐다"는 것으로 소개했다. "아편을 사용했다"는 혐의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지난해 4월 4일 KTV의 정책&이슈 프로그램에서는 원산 공개처형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알려줬다. 진행자는 "인권보고서 첫 공개"를 강조하면서 "남한 영상물을 본 청소년이 공개처형" 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연주 시사평론가는 원산 공개처형을 언급하면서 "남한의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만으로 미성년자를 공개처형했다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고 진행자는 이를 고치지 않았다.

이어 국립통일교육원과 통일연구원은 똑같은 주장을 직접 하거나 홍보해왔다. 위 프로그램과 달리 윤 대통령의 연설이나 인권보고서를 인용하지도 않고 증거를 안가리켰다. 국립통일교육원은 인권보고서가 발간되자 북한이탈주민이자 유튜버인 윤설미에게 영상제작 지원을 해주고 결과물인 "북한 인권, 그게 정확히 뭔데?" 영상을 5월의 통일교육주간에 광고하고 청년 교육용으로 쓰기로 했다.

이 영상은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래서 한국 드라마를 봤다? 영화를 봤다? 아니면 아니면 유포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어린 학생을 처형까지" 한다는 말을 포함했다. 2020년에 제정된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인용해도 해당조항에서 남한영상을 보는 처벌이 사형이 아니라는 점은 감췄다.

필자는 국립기관인 통일교육원이 그런 영상을 광고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의견을 민원으로 내고 증거가 있는 주장인지, 아닌지에 대해 물었는데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영상 10분 25초부터 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봤다, 영화를 봤다, 아니면 유포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어린 학생을 처형까지 하는 거예요"라고 말한 것은 진행자가 한국 영상물 시청·유포에 대한 처벌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윤설미는 윤 대통령처럼 북한인권보고서를 오해한 가능성이 크다. 통일연구원은 마찬가지로 증거물을 언급없이 그 주장을 포옹했다. 작년 7월에 인권연구실장인 이규창은 작성한 보고서에서 공개처형 사유를 요약하는 그림에 "한국 녹화물 시청"을 포함시켰고 정확한 증명없이 "북한이 김정은 집권 이후 주민들에 대한 사상통제와 정보통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 녹화물 시청을 사유로 하는 공개처형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말 뒤에 이규창 실장이 여러 가지 사형사례를 소개했지만 모두 영상 유포나 마약 거래 등 다른 범죄와 함께 혐의된 사람이 사형판결을 받은 사례였다.

▲ 지난해 7월 24일 통일연구원 이규창 인권연구실장이 펴낸 보고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사회통제 및 처벌 실태는?'에 수록된 삽화. ⓒ보고서 갈무리

윤 정부가 왜 정확히 증명할 수 없는 주장으로 반북심리전 같은 것을 벌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가짜뉴스와 반지성주의를 자주 비판하는 대통령의 정부가 많은 전문가들이 과장할 필요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북한인권 현실을 사실대로 비판하지 않는 것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많은 증언으로도, 입수된 법으로도 남한영상 유포자와 유입자들을 처형당할 수 있는 사실이 이미 충분이 증명되었다. 심리전을 할 필요 없이 이 사실로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 필자소개

마틴 와이저 독립연구자는 독일 출신으로 2014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북한인권 정책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의 정치, 법, 매체와 남북관계와 사회주의 우당(友黨)을 연구하고 있다. European Journal of Korean Studies, 38North, NK News, East Asia Forum 등에 글을 게재했다.

[마틴와이저 독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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