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경과 김남주의 선택, 왜 이토록 먹먹하게 느껴질까('원더풀 월드')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4. 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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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악순환과 대결하는 원미경과 김남주의 휴머니즘

[엔터미디어=정덕현] "나 너무 힘들었어. 내 새끼 뺏어간 놈의 아들이라 그 애가 너무 미운데 걔 또 그러고 있는 거 보면 인간적으로는 가엽고 그냥 이대로 다 멈추고 싶어. 다 잊어버리는 거 같아서 너무 무서웠어 엄마."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에서 은수현(김남주)은 엄마 오고은(원미경)에게 힘들었던 자신의 심경을 꺼내 놓는다.

권선율(차은우)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이다. 그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을 죽게 만든 권지웅(오만석)의 아들이다. 그래서 밉다. 하지만 권선율은 또한 자신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엽다. 그 복잡한 감정이 얼마나 은수현을 괴롭혔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은수현의 선택은 미움이 아닌 연민이다.

그는 끝내 사망한 권선율의 어머니 앞에서 속으로 다짐한다. '김은미씨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우리 건우를 앗아간 당신 남편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내 새끼를 떠나보낸 그날부터 내 인생도 숨만 붙어 있었을 뿐 죽은 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이 말은 꼭 하려고 왔습니다. 당신 아들은 내가 돕겠습니다. 그것만큼은 내가 하겠습니다. 권지웅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선율이 엄마인 당신에게 약속합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편히 쉬세요.'

어찌 보면 같은 엄마로서 자식을 위하는 똑같은 마음으로 은수현은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건 복잡하게 복수의 고리로 얽혀있는 이 문제들을 심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법에 가깝다. 복수심만으로 그 무거운 감정들이 어찌 풀어질 수 있을까. 그래서 은수현은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미운 감정보다 똑같이 가족을 잃은 피해자로서의 공감과 연민을 선택한다.

그리고 은수현의 이런 선택은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권선율의 마음도 조금씩 돌려놓는다. 그는 이미 은수현이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 알고 있었어. 당신 이미 지옥에 있다는 거. 나 역시 그러니까. 근데 외면했어.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살아낼 수 있을 거 같아서. 아니면 죽을 거 같아서." 다만 그렇게 은수현을 미워해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원더풀 월드>가 보여주는 이 복수의 끝없는 고리를 만들어낸 건 정치인 김준(박혁권)으로 대변되는 부정한 권력이다. 죄지은 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게 만든 그 부정한 권력 때문에 사적 복수가 야기하는 이 악순환이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후반부로 가면서 은수현과 권선율이 함께 이 문제를 야기한 김준과 맞서는 과정으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은수현과 권선율이 가족을 앗아간 원수지간의 미운 감정을 넘어서 똑같이 가족을 잃은 아픔을 공유하는 피해자로서의 공감을 해나가는 모습은 어찌 보면 이 작품이 가진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고통스러워 하는 은수현은 물론이고, 그를 괴롭혔던 한유리(임세미)나 권선율까지 모두 엄마의 마음으로 끌어안는 오고은(원미경)이라는 존재가 도드라져 보인다.

오고은은 엄밀한 의미에서 타인인 한유리에게도 또 권선율에게도 딸, 아들이라 부를 정도로 엄마 같은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인물이다. 심지어 그들이 자신의 딸 은수현을 힘들게 만드는 자들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화를 내거나 놀라면서도 그는 그들을 여전히 연민하는 엄마 같은 감정을 버리지 않는다.

내 가족만이 소중한 게 아니라 타인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 바라보는 시선. 그래서 갖게 되는 공감과 연민이야말로 가해와 피해라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원더풀 월드'를 맞이하게 되는 길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이 공감대를 가진 피해자들의 연대로 지옥을 야기한 부조리한 시스템과 부패한 정의와의 대결이 가능해질 테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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