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끄러운 줄 알아라”…오스카를 들어올린 정치적 발언들[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정치 무대가 된 아카데미 시상식
분위기 싸하게 만드는 오스카 수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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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tand here as men who refute their Jewishness and the Holocaust being hijacked by an occupation which has led to conflict for so many innocent people.” (우리는 유대인답다는 것과 무고한 희생자를 낳은 점령에 이용된 홀로코스트를 반박하는 사람들로써 이 자리에 섰다) |
이런 공식을 따르지 않는 수상 소감도 있습니다.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소감입니다. 올해 시상식에서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로 국제영화상을 받은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논란이 됐습니다.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지휘관 가족의 얘기를 담았습니다. 소감의 핵심 구절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전쟁에 관한 내용입니다. 글레이저 감독은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의 가자 점령을 비판했습니다. 이 소감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에 1200명 넘는 할리우드 유대인 인사들이 서명했습니다.
할리우드는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지만, 유대 세력이 득세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소감은 시상식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것을 물론 발언 당사자의 경력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할리우드 잔칫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문제적 발언을 한 셀럽들을 알아봤습니다.
You have refused to be intimidated by the threats of a small bunch of Zionist hoodlums.” (시원찮은 시온주의자 깡패 무리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다) |
레드그레이브는 파리에서 ‘줄리아’ 촬영 때 팔레스타인 부부 집에 살면서 사상적으로 교류하게 됐습니다. 이들이 만들고 있던 다큐멘터리 영화 ‘팔레스타인’의 제작비를 대고 해설을 맡았습니다. 배급사까지 물색하자 극우 성향의 유대인 단체들은 ‘줄리아’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에 “레드그레이브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다시 고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폭스사의 모든 영화를 보이콧하겠다는 겁니다.
레드그레이브가 행사장에 도착하자 아카데미상 위원장은 “만약 수상하게 되면 ‘댕큐’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도록 당부했습니다. 존 트라볼타가 수상자로 부르자 레드그레이브는 감사 인사를 한 뒤 시위대를 비판했습니다. ‘Zionist hoodlums’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Zionist’(시오니스트)는 팔레스타인 지방을 약속의 땅으로 여기고 조국을 건설하려는 유대 민족주의자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건국에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을 ‘hoodlum’(후들럼)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깡패’를 말합니다. 레드그레이브는 행사장 밖에서 시끄럽게 시위를 벌이는 소수의 극우 시위대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단어였습니다. 야유가 터졌습니다.
각색상을 발표하러 나온 할리우드 인사의 일침을 놓자 기립박수가 터졌습니다. “I would like to suggest to Miss Redgrave that her winning an Academy Award does not require a proclamation and a simple ‘Thank you’ would’ve sufficed.”(레드그레이브 양에게 한마디 하겠다.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고 해서 거창한 발언을 할 필요는 없다. 간단한 ‘댕큐’로 충분했을 것이다)
레드그레이브는 할리우드에서 영향력 있는 여배우여서 논란을 이겨냈습니다. 이후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두 차례 더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당시 수상 소감을 후회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You do what you feel is right. People get it or they don’t.”(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I wondered if Deng Xiaoping is watching this right now.” (덩샤오핑이 지금 시상식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
기어는 열렬한 티베트 분리독립 운동가입니다. 덩 주석이 티베트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인권 유린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끔찍한’을 강조하기 위해 ‘horrendous’(허렌더스)를 두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영화에서 볼 법한 기적이 일어나 덩 주석이 군대를 철수해 티베트 국민이 자유롭게 사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중국 발언 후 곧바로 후보 발표로 넘어갔습니다. 기어의 기습 발언에 화가 난 주최 측은 향후 아카데미상 참석을 금지했습니다. 기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수전 서랜든과 팀 로빈스도 편집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관타나모 수용소에 억류된 아이티인 200명의 인권을 위해 미국 정부가 나서주기 바란다는 정치 발언을 했다가 참석이 금지됐습니다.
중국이 미국의 최대 영화시장으로 떠오르던 때였습니다.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기어를 고용하기를 꺼렸습니다. 자연히 소자본 독립 영화로 출연 무대가 바뀌었습니다. 간혹 대형 영화에 출연했을 때는 홍보 인터뷰에 나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금방 관계를 회복한 서랜든과 달리 기어와 아카데미상의 불편한 관계는 오랫동안 계속됐습니다. 2003년 영화 ‘시카고’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았으나 아카데미상에는 후보에 조차 오르지 못했습니다. 20년 만인 2013년 ‘시카고’ 10주년 축하 무대에 오르면서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The reasons are the treatment of American Indians today by the film industry and also with recent happenings at Wounded Knee.” (이유는 영화산업의 아메리카 원주민 대우와 최근 운디드니 사건 때문이다) |
동료 배우들은 화가 났습니다. 미국의 국민배우 존 웨인은 리틀페더를 때려눕히기 위해 무대로 뛰어나가려다가 8명이 달라붙어 간신히 뜯어말렸습니다. 작품상을 발표하러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카우보이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비꼬았습니다. “I don’t know if I should present this award on behalf of all the cowboys shot in all the John Ford westerns over the years.”(존 포드 서부영화에서 총에 맞은 모든 카우보이를 대신해 이 상을 수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브란도는 욕을 먹었지만, 리틀페더는 설득력 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언론은 그녀를 가리켜 “gracefully”(품위 있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차분하게 이름과 소속, 무대에 오른 이유를 설명하고, 시상식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이해를 위한 것이라고 마무리했습니다. 운디드디 점거 사건을 널리 알렸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운디드니 사건은 1973년 원주민 부족 200여 명이 운디드디 마을을 점거하고 열악한 생활조건 개선을 요구하다가 강제 진압된 사건입니다. 아카데미상 위원회는 50년 뒤 리틀페더의 용기에 존경을 표하며 시상식에서 박대했던 것을 사과했습니다.
명언의 품격
마이클 무어 감독이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습니다,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주제로 총기에 집착하는 폭력적인 미국 문화를 고발한 영화입니다. 무어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총기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바로 본론인 이라크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다큐멘터리는 ‘nonfiction’(사실)을 다루지만 미국인들은 ‘fiction’(허구)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플로리다 재검표 공방까지 갔던 2000년 대선을 ‘fictitious election’(허구의 선거), 이를 통해 선출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fictitious President’(허구의 대통령)라고 꼬집었습니다. ‘fictitious’(픽티셔스)는 ‘fiction’의 형용사입니다. 이어 대통령을 거론했습니다.
Shame on you, Mr. Bush, shame on you.” (창피한 줄 알아라, 부시, 창피한 줄 알아) |
공개적인 자리에서 농담도 섞지 않고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역사상 가장 무례한 수상 소감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발언이 위험 수위에 달하자 아카데미 측은 마이크를 끄고 배경음악을 크게 틀면서 빨리 퇴장하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시상식 후 파티에서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미시건 집에 돌아오자 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Shame on you, Mr. Moore, shame on you’(창피한 줄 알아라, 무어, 창피한 줄 알아)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집 앞에 말똥을 한가득 쌓아놓았습니다.
실전 보케 360
보수 재벌, 범죄자, 근육질 영화배우까지 긴즈버그상 수상자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2020년 세상을 떠난 긴즈버그 대법관은 생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평등을 위해 노력한 진보적 법관이었습니다. 아들 제임스 긴즈버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질겁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Those are the last names that would come to mind.” (그들은 마지막에 떠오르는 이름일 것이다) |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0년 1월 20일 소개된 영화 ‘기생충’에 대한 내용입니다. ‘기생충’은 2020년 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명언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이다)를 인용한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은 지금도 명소감으로 꼽힙니다. ‘기생충’에 쏟아졌던 찬사를 다시 음미해보겠습니다.
▶2020년 1월 20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120/99313653/9
Parasite’s awards season domination would extend to the Nickelodeon Kids Choice Awards.” (영화상 시즌에 ‘기생충’의 압도적 성과는 니컬로디언상까지 이어질 것이다) |
It’s worth bringing your glasses.” (안경을 가져갈 만한 가치가 있다) |
Bong will win you over.” (봉이 당신의 마음을 차지할 것이다) |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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