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지에서 직접 택배를 받아봤습니다”…중국 소비기행 [김범수의 소비만상]

김범수 2024. 4. 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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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지에서 온라인 주문을 한다면 며칠 만에 받을 수 있을까’

중국으로 출장을 가게됐다. 처음 가보는 중국 본토인데다가 온갖 말도 선입견도 많은 나라이기에 중국 일정을 업무로만 끝내고 싶진 않았다. 공식 일정 외에 중국에서 꼭 하고 싶은 것들을 몇 가지 추렸다. 

가장 먼저 ‘중국 현지에서 온라인 거래하기’였다.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물건을 주문한 뒤, 머물고 있는 중국 베이징의 숙소에서 택배를 받는다는 계획이다. 과연 주문한 물품이 무사히 제대로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중국 현지에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해봤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의 화면을 구글 렌즈 번역 기능을 사용한 모습.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온라인 전자상거래는 일상이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과 다소 다른 독자적인 플랫폼을 사용하는 중국에서의 전자상거래는 어떨까 호기심이 생겼다. 또한 중국의 택배 배송 시스템 역시 궁금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중국 현지에서 널리 쓰이는 ‘타오바오’를 선택했다. 국내에서 알리익스프레스로 유명한 알리바바 그룹의 자국용 전자상거래 플랫폼이다. 또 타오바오를 선택한 이유로는 다른 현지 플랫폼보다 더 외국인 친화적(?)이라는 점이다. 다른 플랫폼은 외국인이 주문하면 거절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타오바오를 설치하니 중국어의 압박이 느껴졌다. 한국어는 찾아볼 수 없는 순도 100%의 중국어다. 게다가 번체자는 조금 읽을 수 있지만, 간체자는 전혀 모르는 터라 의미조차 추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다른 나라의 언어를 학습하는 속도보다 인류의 기술 속도가 더 빨랐다. '구글 렌즈'라는 앱을 통해 화면 상에 있는 중국어를 해석해가면서 온라인 쇼핑을 시작했다. 

고른 것은 시계 관련 물품. 개인 취향이 200% 반영됐다. 가격은 2350위안. 한화로 약 44만원이다. 

같은 물건을 한국에서 구입하면 약 63만원 정도하니 중국 현지에서 사는게 20만원 가까이 더 저렴했다. 또한 배송기간도 한국에서 받는 것 보다 훨씬 짧았다. 아무래도 시계 관련 물품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 수입이다. 한국에서 시계 관련 물품을 주문하면 최소 몇 주, 길면 몇 달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중국 전화번호 없이는 인증 ‘불가’

'딥엘' 번역기를 사용해 중국어로 중국 현지 판매자와 대화하는 모습. 어색함 없이 대화가 가능했다.
타오바오에서 고른 물품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결제가 되지 않는다. 순간 짧은 패닉에 빠졌다. 분명 타오바오에 연동된 전자 결제 플랫폼인 ‘알리페이’를 연동했는데 결제가 되지 않았다. 

혼자서 앓느니 물건을 사려던 중국 셀러에게 문의를 해봤다. 시계 물품 판매자에게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으로 연락했다. 상당수의 중국인은 영어가 서툴다. 타오바오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셀러들은 그나마 영어를 조금 할 수 있다는 평이지만, 큰 기대를 하면 안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류의 기술은 기자의 생각보다 항상 앞서나가고 있다. 오늘날 번역기는 웬만한 의사소통은 문제없을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 ‘파파고’(Papago), ‘구글번역’ 등 다양한 번역기가 있지만 기자가 주로 사용하는 번역기는 ‘딥엘’(DeepL)이다. 매달 유료결제를 해야하는 단점이 있지만, 정확도는 가장 높다는 평이다. 중국에 있는 동안 이 번역기를 통해 단 한번의 막힘 없이 중국인들과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중국 판매자에게 연락한 시간은 현지시간 오후 9시, 몇 초만에 바로 답장이 왔다. 돈을 벌려면 밤낮 없이 빠르게 응답해야 하나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오바오에서 결제를 하려면 중국 휴대전화 번호로 인증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중국 번호 따윈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중국 번호가 없다고 결제가 불가능하다고 하자 중국 현지 셀러는 다른 제안을 했다.

그는 내게 “그러면 내게 100위안(한화 1만9000원)의 보증금을 보내면 내가 물건을 보낼 게, 나머지 잔액은 택배기사를 통해 알리페이로 지불해. 오케이?”라고 말했다.

중국 타오바오를 이용할 수 없었던 터라 판매자를 믿고 직접 알리페이를 통해 수수료 포함 2417위안을 입금했다.
중국은 전자상거래 플랫폼 없이도 택배기사를 통해 물품대금을 결제할 수 있다. 택배기사에게 거래 대금의 잔액을 결제하면 곧바로 셀러에게 전달되는 구조다. 주로 전자상거래 플랫폼 이용을 어려워하는 중년층, 노년층들이 사용한다.

하지만 택배기사를 통한 거래도 불가능했다. 택배기사에게 결제를 하려면 역시 중국 휴대전화 번호의 인증이 필요했다. 즉, 외국인의 경우 이용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결국 구매를 포기하던 찰나, 중국 셀러는 또 다른 제안을 했다. 바로 자신을 믿고 2350위안 전액을 보내고, 택배를 인증없이 수령하는 것이다.

한 시간 가까이 고민했다. 행여나 중국 판매자가 돈을 가지고 잠적해도 보호를 받을 방법이 없다. 전적으로 셀러를 믿거나, 믿지 못하겠다면 구매를 포기하거나, 둘 중의 하나인 상황이다.

결국 중국 판매자를 믿어보기로 했다. 44만원은 큰 돈이지만 중국 전자상거래와 택배 시스템, 그리고 중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했다. 떨리는 손으로 2350위안을 알리페이를 통해 전송했다. 셀러는 고맙다고 물품을 차질 없이 준비해서 지정한 날짜에 보내겠다고 답장이 왔다.

◆택배가 비행기를 타고 하루만에 도착했다

물품을 배송하기로 약속한 날이 왔다. 저녁이 됐는데 중국 판매자에게 연락이 없었다. 기자는 오후 내내 “제발 날 엿먹이지 마”라고 중얼거릴 정도로 초조해졌다. 26일 오후 11시30분 드디어 중국 판매자에게 연락이 왔다. 보내는 물품 사진과 함께 송장번호를 전달하면서 조금 전에 배송을 마쳤다고 했다. 그 때부터 나는 중국 판매자를 ‘당신’(You)이 아닌 ‘형님’(哥哥·꺼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중국 현지 택배사인 ‘SF 익스프레스로’부터 배송이 시작됐다. 중국 판매자가 위치한 지역은 광둥성 광저우시, 베이징과 무려 2200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광저우에서 베이징까지 자동차로 쉬지 않고 이동하면 23시간 걸릴 정도다. 

중국의 택배 시스템은 기대 이상이었다. 27일 오전 1시에 배송이 시작된 택배는 그날 오후 광저우 공항으로 이동했고, 비행기를 타고 3시간 만에 당일 오후 9시쯤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8일 오전 11시40분 쯤 택배가 호텔로 도착했다. 불과 36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광저우에서 베이징까지 배송이 끝난 것이다.

말 그대로 택배가 비행기를 타고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머물고 있는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마지막까지 잘 받았는지 신경 써주는 중국 판매자도 인상 깊었다.
중국 현지에서는 택배 수령을 할 때 택배기사 또는 택배보관함에 휴대전화로 인증을 해야한다. 기자는 중국 번호가 없었기 때문에 인증을 할 수 없었지만, 중국 판매자가 택배기사와 연락을 하면서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 택배를 보관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아울러 기자에게 연락해 잘 받았는지 확인을 부탁한다는 연락까지 보냈다. 이때부터 기자는 중국 판매자를 ‘형님’에서 ‘대형’(大哥·따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제품과 배송 상태, 판매자의 친절은 더할나위 없이 훌륭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전자상거래는 고도로 발달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크게 유행하는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역시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이다. 

중국은 국토가 넓어 육로 운송으로 당일 택배 배송이 불가능하다. SF 익스프레스 같은 대표적인 택배회사는 자체적으로 항공 운송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현금이나 신용카드 대신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등 전자결제가 일상화 돼 있는 것도 전자상거래 발전에 한 몫했다는 평일 받고 있다. 또한 항공 운송까지 결합돼 오지가 아닌 이상 1∼3일이면 택배를 받을 수 있는 유통망 역시 전자상거래 발전이 기여했다는 평이다.

다만 중국 휴대전화 번호 없이는 자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점은 단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한다고 해도 외국인이 많이 머무르는 호텔을 제외하고는 인증 문제로 택배를 수령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도 단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들은 내수용 플랫폼과 외국 전용 플랫폼으로 이원화 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갈수록 간극이 커져가고 있다는 평도 존재한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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