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가 베낀 메뉴?”…레시피 주인을 둘러싼 ‘진실공방’ [퇴근 후 부엌-에그 베네딕트]

2024. 4. 6. 09: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주희 기자.
퇴근 후 부엌
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대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썰도 한 술 떠 드립니다.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뜨끈한 국물 요리의 계절이 가고 '브런치'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브런치 대표 메뉴로 에그 베네딕트를 빼놓으면 서운합니다. 부드러운 수란을 반으로 가르자 흘러내리는 노른자, 그 아래 노른자와 홀랜다이즈 소스를 머금은 촉촉한 빵, 짭조름한 베이컨까지. 에그 베네딕트는 모든 재료를 한입에 먹을 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브런치 가게에서 정신없이 에그 베네딕트를 흡입하다 문득 “베네딕트가 도대체 누구길래 이런 요리를 만들었나” 궁금증이 스쳤습니다. 이번 ‘퇴근 후 부엌’에서는 ‘에그 베네딕트’의 유래에 얽힌 세 명의 ‘베네딕트’의 이야기를 드려드립니다. 또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음식 썰]

사실 아직까지도 에그 베네딕트를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에그 베네딕트를 둘러싼 이야기를 파헤쳐보면 바티칸의 베네딕토 교황, 뉴욕의 베네딕트 부부 그리고 숙취에 시달렸던 뉴욕 증권가의 베네딕트라는 남성이 등장하죠.

교황 베네딕토 13세

가장 오래된 얘기는 18세기 교황 베네딕토 13세로부터 비롯됐다는 설입니다.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린 교황은 평소 구운 빵에 수란을 얹고 레몬즙이 들어간 소스를 뿌린 요리를 즐겨 먹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에그 베네딕트의 원형과 유사하지만 버터가 잔뜩 들어간 홀랜다이즈 소스와 베이컨이 빠졌다는 점에서 완벽한 에그 베네딕트라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베네딕토 13세는 대주교 시절에도 평범한 수사처럼 살았을 만큼 검소 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중세 교황청에서 금기시했던 버터를 잔뜩 넣은 소스와 함께 요리를 즐겼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본격적인 원조 논쟁은 1900년대 뉴욕 월스트리트로 옮겨갑니다. 시작은 1942년, ‘더 뉴요커(The New Yorker)’라는 잡지사가 레뮤엘 베네딕트(Lemuel Benedict)라는 월스트리트 주식 중개인에 대해 쓴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레뮤엘 베네딕트는 월스트리트 가십을 몰고 다니던 남자였습니다. 그는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 어마어마한 팁을 뿌리기로 유명했습니다. 뉴욕 증권 거래소 기록보관소에는 그의 캐리커처가 남아있을 정도죠.

1893년 미국 뉴욕에 있던 월도프 호텔 외관.

인터뷰 기사에는 50년 전 뉴욕 월도프 호텔에서 ‘맞춤 메뉴’를 주문했던 일화가 등장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그날 따라 아침부터 숙취에 절어 있던 레뮤엘은 월도프 호텔에서 해장용 아침 메뉴로 ‘수란 두 개, 베이컨, 버터 토스트, 홀랜다이즈 소스’를 주문했습니다. 월도프 호텔의 수석 웨이터 오스카 치르키는 이 메뉴가 대히트를 칠 것을 예감했는지 호텔 시그니처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그는 베이컨을 햄으로, 토스트를 잉글리쉬 머핀으로 베네딕트의 레시피를 수정해 호텔 시그니처 메뉴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요리책 ‘월도프의 오스카’에 이 같은 에그 베네딕트 레시피가 소개됐죠.


이후 월도프 호텔이 1931년 파크 애비뉴로 이전하면서 에그 베네딕트는 대통령, 영화배우 및 외국 고위급 인사를 대접할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면서 뉴욕을 대표하는 요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레뮤엘 베네딕트는 기사가 나간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1943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는 레뮤엘의 사촌의 아들이자 부동산 판매원인 잭 베네딕트의 뇌리에 박혔습니다. 당숙의 이야기에 꽂힌 그는 레스토랑 창업에까지 나섭니다.


그때부터 잭의 ‘에그 베네딕트’에 향한 무서운 집착이 시작됐습니다. 레스토랑 창업을 앞둔 1978년 3월, 잭은 ‘본 아뻬티(Bon Appetit)’ 잡지에 실린 ‘완벽한 에그 베네딕트’라는 기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기사에서는 르그랑 베네딕트(Legrand Benedict) 부부를 요리의 창시자로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의 델모니코 레스토랑. [델모니코 홈페이지 캡처]

기사에 따르면 부부는 1900년대초 뉴욕 금융 지구에 있던 한 레스토랑 델모니코(Delmonico’s)에 자신들을 위한 맞춤 메뉴를 주문했다고 합니다. 단골 고객이었던 부부는 기존 메뉴에 질려 새 메뉴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그 요리가 바로 에그 베네딕트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잭은 에그 베네딕트를 파는 것뿐 아니라 레시피의 기원에 대해 고객에게 교육하려는 목적으로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기사를 보고 피가 거꾸로 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에그 베네딕트에 대한 온갖 자료를 수집하고 레스토랑 입구 근처에 에그 베네딕트의 기원을 추적하는 스토리보드까지 만들어 두었습니다. 물론 잡지사에 항의 레터를 써보 내기도 했습니다.


잭의 집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 잭은 자신이 꽂힌 당숙 레뮤엘의 또 다른 친척 콜먼 베네딕트에게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콜먼은 통화 후 혀를 내두르며, 아내에게 “어떤 미친놈이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내 사촌이라고 하는데, 레뮤엘 삼촌에 대해 알고 싶어해요”라고 말했다고 하죠.


사실 콜먼 베네딕트 부부는 처음 잭을 두고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했다고 합니다. 그저 삼촌을 이용해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났을 때 서로 닮은 외모와 집에 있는 가족 사진을 보고 의심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그 베네딕트의 원조 타이틀을 되찾는 일에 함께 했습니다.

맥도날드의 맥머핀.

그는 맥도날드에 ‘에그 맥베네딕트(Eggs McBenedict)’라는 메뉴를 앞세워 사업 제안서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한 발 늦고 맙니다. 맥도날드는 이미 에그 베네딕트에서 영감을 받은 ‘에그 맥머핀’ 메뉴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1972 중반 맥도날드는 잉글리시 머핀과 베이컨, 그리고 계란을 넣은 맥머핀을 출시했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 맥도날드가 선보인 맥머핀은 에그 베네딕트와 비슷하게 오픈 샌드위치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고급 호텔 조식이었던 에그 베네딕트는 이제 전세계인의 아침 식사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베네딕트 가문의 이야기부터 맥 머핀까지, 에그 베네딕트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에그 베네딕트는 브런치 가게에서 꽤나 비싼 가격에 팔립니다. 고작 빵에 계란 두개, 베이컨에 기껏해야 채소가 올라간 게 전부인데 왜 이렇게 비싼지 의문이었지만 직접 만들어보니 단번에 이해가 갔습니다.

계란 노른자와 버터가 들어간 홀랜다이즈 소스, 수란을 만드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계란은 흔한 식재료이지만 조리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계란 요리는 만들기 꽤나 까다로운 편에 속합니다. 특히 동그란 계란 모양을 살리면서도 노른자가 덜 익은 수란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홀랜다이즈 소스 역시 조리기능사 실기 시험에 등장할 만큼 고난도 요리에 속하는 소스입니다. 집에서 전자레인지로 수란을 만드는 법과 ‘유사’ 홀랜다이즈 소스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저는 잉글리시 머핀을 구하기 어려워 독일식 하드롤을 반으로 잘라 사용했습니다.

▶재료 루꼴라, 계란 4알, 베이컨, 버터 80g (또는 마요네즈, 허니머스터드), 후추, 식초, 샌드위치빵

1. 프라이팬에 빵과 베이컨을 굽습니다.

2. 수란 만들기 오목한 그릇에 미지근한 물 120㎖, 식초 1t를 넣고 계란 하나를 넣습니다. 전자레인지에 30초씩 두 번, 10초를 추가로 돌립니다. 같은 방법으로 수란 두 개를 준비합니다. 계란을 넣기 전 물을 휘저으면 탁구공같이 동그란 수란을 만들 수 있습니다.

3. 소스 만들기 홀랜다이즈 소스 만들 때는 버터 80g을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려 녹입니다. 계란 노른자 2알에 레몬즙 또는 식초를 넣고 살짝 식힌 버터를 천천히 넣으며 휘핑기로 저어줍니다. 농도가 되직해지면 후추와 소금을 넣고 마무리합니다.

보다 간단한 방법으로는 마요네즈 2큰술에 허니머스터드 머스터드 1/2큰술,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잘 섞어주면 됩니다.

4. 구운 빵에 베이컨, 루꼴라와 수란을 올리고 소스를 마지막으로 끼얹어 완성합니다.

에그 베네딕트의 핵심은 온도입니다. 감으로 수란을 전자레인지에 몇 초 더 돌리는 순간 노른자까지 익어버립니다. 소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리지널 홀랜다이즈 소스를 만들 때 버터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계란 노른자만 익어버릴 수 있습니다. 또 반대로 온도가 낮아지면 순식간에 버터가 굳어버립니다. 특히 휘핑기까지 써가면서 홀랜다이즈 소스를 만드는 일은 자취생에게 무리이니 홀랜다이즈 소스와 유사한 마요네즈를 활용하는 걸 추천합니다.

jooh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