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가로막는 자사주 매입…애플의 미래는

한겨레 2024. 4. 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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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2024년 2월2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애플 매장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와 애플 직원들이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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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기업 중 하나다. 파괴적 혁신으로 현대 기술 산업을 지배해왔다. 시장의 선도자는 아니었지만 기존 기술을 활용해 자사 제품을 주류로 부상시키고 열광적인 지지층을 확보해 뛰어난 수익모델을 완성했다. 특히 스마트폰은 1992년 IBM이 처음 개발했지만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그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세상과 삶을 바꾼 건 애플이었다.

당연히 애플의 주가는 높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에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넘겨주긴 했지만, 2월 말 현재 2조8천억달러를 넘는다. 2월28일 종가 기준으로 주가수익률(PER)은 28.23, 주가매출비율(PSR)은 7.4, 주가순자산비율(PBR)은 47.1에 이른다. 다시 말해 현재의 시가총액은 순이익의 28배, 매출액의 7.4배, 순자산(장부가액)의 47.1배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지수의 지난 10년 평균 PER이 20.36, PBR은 3.26이란 점을 고려하면 투자자들이 애플 주식에 얼마나 많은 프리미엄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은 애플 주식에 비싼 값을 치를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현재의 PER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애플의 시총은 매년 4천억달러(약 528조원) 매출과 순이익률 25%가 달성될 때 지속할 수 있다. 매출 또는 순이익률이 하락하면 같은 PER에서는 현재 시총이 유지될 수 없다. 유지하려면 더 높은 PER이 부여돼야 한다. 한데 매출과 순이익률이 하락하는데 투자자가 높은 PER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4천억달러는 얼마나 많은 돈일까? 전세계 인구 모두가 애플 제품이나 서비스를 45달러씩 사야 가능한 돈이다. 천문학적인 액수다.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애플 주가의 적절성, 미래 방향성을 다루는 데 있지 않다. 현재의 애플 주가 형성에 이바지한 가장 큰 요소가 무엇이고 그것이 지속 가능한지를 따져보려 할 뿐이다. 이를 통해 오늘의 주가가 온전히 기업의 영업능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란 사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허물어질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자사주 매입’이란 마술

애플 주식은 지난 39년 동안 연평균 20% 정도 올랐다. 같은 기간 S&P500이 연평균 8.7% 올랐으니 시장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이례적 성과다. 2017년에서 2019년까지 애플의 매출과 순이익은 약 5% 성장하고 있다. 같은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4%보다 1%포인트 정도 높을 뿐이다. 이 기간 S&P500 매출과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은 약 9%다. 외려 시장 성장률보다 낮다. 그런데 왜 애플 투자자는 평균 이하 성장세를 보이는 회사 주식에 기꺼이 높은 프리미엄을 지급하는 걸까?

애플을 포함한 주요 주식의 폭발적 상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사주 매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자사주 매입이란 회사가 자사의 주식을 매수하는 것을 말한다. 특정 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시작하면 유통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줄어, 주주가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그만큼 높아진다. EPS가 높아지는 효과가 생긴다. 여기에 매입 뒤 소각까지 하면 전체 주식 수가 줄어 EPS는 물론 자기자본이 감소하는 효과로 자기자본이익률(ROE)까지 높아진다. 회사 매출과 순이익, 투자자의 밸류에이션에 변화가 없는 상황일 때, 유통 주식의 절반을 매입 뒤 소각하면 애플 주식은 두 배 오를 것이다. 한 주만 남기고 전부 소각하면, 남은 애플 주식 한 주 가격은 시총과 같아질 것이다. 애플 주가의 상승을 견인한 요소는 크게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었다.

첫째, 애플은 뛰어난 혁신기업이다. 스마트폰이란 파괴적 혁신을 통해 세계를 바꿨다. 투자자들이 미래의 잠재 제품 및 서비스에 프리미엄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천문학적 이익을 창출할 가능성에 베팅하는 투자자의 호의가 프리미엄으로 연결된다.

패시브자금(시장지수를 따라 투자하는 자금) 유입이 두 번째 이유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총 1, 2위를 다툰다. 패시브자금은 시총 순위에 따라 자금을 배분해 투자한다. 작은 기업보다는 시총이 큰 기업에 자금이 더 배분된다. 기술기업 섹터의 상장지수펀드(ETF)인 XLK는 520억달러의 자금을 운용한다. 이 ETF에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중은 거의 절반이다. 투자자가 XLK에 1만달러를 투자하면 이 중 5천달러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사 주식에 배정된다. 나머지 50%인 5천달러는 잔여 기업 62개에 배분된다. 대다수 금액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에 투자된다.

애플 주식은 지난 39년 동안 연평균 20% 정도 올라 같은 기간 S&P500지수 평균 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미국 뉴욕 나스닥거래소의 전자화면에 애플 주가가 표시돼 있다. REUTERS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자사주 매입이다. 애플의 최근 주당순이익, 순이익과 매출액 추세를 보자. 주당순이익은 매출액이나 순이익 성장률의 두 배 정도 성장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자사주 매입 효과다. 2013년부터 시작한 자사주 매입으로 주당순이익은 실제 순이익보다 4~6% 정도 더 성장했다. 주식 수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자사주를 매입하지 않았다면 주당순이익 상승률은 높지 않았을 것이다. 애플은 매년 600억~800억달러를 자사주 매입에 쓴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자사주 매입 규모는 5720억달러에 이른다. 환율 1300원을 가정하면 우리돈 74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이다. 연평균 70조원 이상의 주식을 매입해 소각했다는 얘기다.

자사주 매입은 지속 가능할까

우리는 애플이 미래에 어떤 혁신을 이룰지 알 수 없다. 투자자의 애플에 관한 호의도 얼마나 지속할지 알 수 없다. 패시브자금 유입이 얼마나 계속될지도 가늠할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건 애플의 향후 자사주 매입 능력이다. 이를 알려면 자사주 매입 자금의 원천을 알아야 한다. 보유 현금, 순이익, 부채조달로 이뤄졌다.

애플은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2013년 처음으로 장기채를 발행했다. 애플의 부채는 그로부터 8년 뒤 1090억달러로 최고조에 이르렀고, 2023년 말 기준으로 1080억달러 정도다.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이전만 해도 차입 비용이 낮아 자사주 매입에 부채를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금리는 4% 이상으로 높아졌다. 부채조달을 통한 자사주 매입은 어렵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애플의 현금과 현금성자산은 615억달러다. 얼추 기존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1년 지속할 수 있는 액수다. 많기는 하지만 2019년 1천억달러를 넘었던 것에 비해서는 많이 감소했다. 그 지속성은 순이익 규모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애플은 2021년부터 매년 1천억달러 정도 순이익을 거둔다. 팬데믹 이전의 순이익은 500억~600억달러 정도였다. 팬데믹 효과가 사라진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순이익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렇다. 애플의 3년 연평균 매출액, 순이익, 주당순이익 성장률은 많이 둔화했다. 특히 2022년 이후부터의 성장률은 플러스를 유지하지만 내림세를 보인다. 순이익 규모로 보면 애플은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순이익 전부를 자사주 매입에 쓴다면 혁신과 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 비용이 문제가 된다. 게다가 애플은 매년 배당으로 150억달러를 쓴다.

2018~2020년 애플은 벌어들인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자사주 매입에 썼다. 부족한 돈은 부채와 현금성자산으로 조달했다. 하지만 최근 2년 이상은 순이익이 많이 늘어 그것의 60% 정도를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다. 여분 현금으로 미래 자사주 매입과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연 1천억달러의 순이익을 계속 낼 수 있다면 성장이 없더라도 연간 600억~800억달러의 자사주 매입은 가능하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순이익이 감소한다면 부채와 보유현금을 동원해야 가능하다. 문제는 금리가 높다는 것이다. 고금리 상황에서 부채를 통한 자사주 매입은 의미가 없다. 남은 방법은 보유 현금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나친 금융화의 폐해

얼마 전 애플은 ‘애플카 프로젝트’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10년 공들인 프로젝트다. 이유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주가 부양을 위한 자사주 매입 규모를 절반 정도만 줄였어도 수천억달러의 추가 현금, 즉 투자 재원을 보유 중일 것이다. 그 정도 돈이면 애플카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높은 프리미엄을 받는 주식들의 공통점은 놀라운 이익, 매출, 순이익 성장률만이 아니다. 금융화의 첨병인 자사주 매입이 그 배후에 있다. 최근 들어 지나친 금융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자사주 매입을 제한하기 위해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자사주 매입에 4%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기업들의 공격적 자사주 매입은 주춤할 수 있다. 매출과 순이익 감소, 고금리 지속도 자사주 매입의 악재다.

기업은 창조적 파괴로 성장해야 한다. 금융화를 통한 주당순이익 성장은 화장술일 수 있다.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기업을 위한 성장과 투자 재원 확보다. 지나친 금융화는 창조적 혁신으로 활짝 핀 자본주의를 몰락시킬 수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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