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카더라`식 잡설 막말 쏟아낸 김준혁, 국민대표·학자 자격 있나

김세희 2024. 4. 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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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57권, 연산군 11년(1505년) 4월 12일 정묘 2번째기사. 연산군에게 강제로 부인을 내줬던 신하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정 후보<연합뉴스>

"사신은 논한다. 왕은 모든 잔치 때 명단을 보고 누구의 아내인지 잘 알아두었다가 마음에 맞는 자는 모두 간통했다. 일부는 아내를 숨기고 병을 핑계로 들여보내지 않았는데, 왕이 이를 알고는 속으로 넌지시 해칠 뜻을 가졌다. 박숭질의 아내 정씨가 나이가 젊고 얼굴이 아름다워서 왕이 가장 사랑했다. 정씨는 자주 궁에 들어가 열흘이 지나서야 나오고 했다. 왕은 '박 정승이 늙고 쇠약해 그 아내가 나를 사모한다'고 했다. 정씨는 왕의 성은을 입은 뒤부터 날마다 단장하고 안방에 들어가지 않고, 대궐만 바라보고 크게 탄식만 했다. 박 정승은 이를 알고 원통해 했지만, 그 해가 미칠 것을 두려워해 감히 막지를 못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나온 1505년 8월 25일의 기록이다. 연산군은 연회를 베풀 때마다 종친과 사대부의 아내가 그 자리에 참석토록 했다. 이들은 남편의 성명을 써서 옷깃에 붙여야 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면 성관계를 갖기 위해서다. 방식도 가지가지였다. 머리 단장이 잘 안됐다고 핑계를 대서 그윽한 방으로 유도하거나, 내명부에 올려 궁궐 안에 유숙하게 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실록에는 왕에게 강제로 부인을 내줄 수 밖에 없었던 신하들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이들은 상당히 치욕스러웠지만, 자칫 거부했다가는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결국 반정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연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고, 참석하면 아내가 왕에게 범해지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결과적으로 숨죽이고 있던 신하들도 서서히 연산군에게 등을 돌리게 됐다"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내 아내가 모욕을 당하면 참을 수 없다"고 봤다.

이처럼 역사학자들은 사료를 최대로 활용해 당시의 상황을 파악한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당대에 쓰여진 사료로 과거에 더 선명하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해석을 가미할 때는 조심스러운 표현을 쓴다. 그 시대에 쓰여졌다해도 글을 쓰는 사관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어서다. 신 교수가 대신들이 연산군에 등을 돌리게 된 계기를 설명할 때, 현대 시대 남편의 감정을 예로 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사관들도 직접 보고 듣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들었던 정보나 소문들을 '사신이 논한다(史臣曰)' 라는 구절을 앞에 두고 기록했다.

그러나 한 역사학자 출신 국회의원 후보는 선을 넘어버렸다. 연일 막말 논란을 빚는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정 후보다. 그는 지난 2023년 12월 21일 '서울의소리' 유튜브 방송에 나와 연산군을 윤석열 대통령에 빗대는 과정에서 "연산 시절에 스와핑(상대를 바꿔가며 하는 성관계)이 그렇게 많이 있었다. 자기 남편을 승진시키려 궁에 남아서 계속해서 연산군과 성적 관계를 맺는 고관대작들의 부인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진실을 추구하는 역사학자에게 필수인 이성적·도덕적 균형감각을 잊은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연산군이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대신들의 아내를 강제로 취하기 위해 벌인 사전 작업이 망라돼 있고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왕에게 바친 신하들의 명단까지 있는데도, 고관대작의 부인들이 남편의 승진을 위해 자발적으로 성관계를 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지 궁금하다. 게다가 '연산군일기'에 나온 간음 관련기사에서 '스와핑'이라 볼만한 대목도 찾아볼 수 없다.

김 후보는 또 지난 몇 년간 유튜브 채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등생ㆍ종군위안부와 성관계를 했다는 등,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제자들을 미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는 등 저질 발언을 마구 쏟아냈다. 이 발언들이 논란이 되자 자신의 블로그에 "성(性)과 관련된 자극적인 부분만 편집해 저와 민주당 전체를 매도하고 있다"며 관련 논문까지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김 후보가 근거로 든 이임하 성공회대 교수의 논문 '한국전쟁과 여성성의 동원'에는 "김활란이나 모윤숙에 의해 동원된 젊은 여성들이 파티에서 직접적인 성적 유흥을 제공하지는 않았을지라도…"라고 표현된 게 전부다. '성상납'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역사학자로서 사료(史料) 교차 검증은 커녕 '카더라'식 잡설과 막말을 쏟아낸 셈이다. 후폭풍은 거세다. 이화여대 동문들은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캠퍼스 대강당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김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도 5일 김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사퇴를 하지 않을 경우 김 후보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전국 500만 서명운동도 전개하겠다"고 예고했다. 이화여대 동문들과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요구대로 내려놓길 바란다.김 후보는 이미 국민대표는 물론 학자로서도 자격이 없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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