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애호가 '쿠베르탱 남작', 1500여년간 잠자던 '올림픽'을 깨우다 [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4.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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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4월 6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약 1500년 만에 올림픽이 부활했다.

이 역사적인 대회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의 창립자이자 프랑스 귀족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의 평화와 스포츠 정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노력으로 가능했다.

때마침 독일의 한 고고학자가 올림피아 유적을 발굴해 고대 올림픽의 모습이 드러나자, 그는 이 대회를 부활시키기로 결심했다.

쿠베르탱의 열정과 노력은 국제적 공감대를 얻어 마침내 1894년 국제 올림픽위원회(IOC)가 조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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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제1회 아테네 하계올림픽 개최
제1회 아테네 하계올림픽 포스터. (출처: 작자 미상, 인쇄물(1896),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96년 4월 6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약 1500년 만에 올림픽이 부활했다. 이 역사적인 대회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의 창립자이자 프랑스 귀족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의 평화와 스포츠 정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노력으로 가능했다.

근대 올림픽은 기원전 8~5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열렸던 고대 올림피아 경기를 모체로 한다. 올림피아는 서기 393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모든 이단 숭배 및 예배를 금지하면서 중단된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후반, 쿠베르탱은 청소년기 스포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했다. 때마침 독일의 한 고고학자가 올림피아 유적을 발굴해 고대 올림픽의 모습이 드러나자, 그는 이 대회를 부활시키기로 결심했다.

쿠베르탱의 열정과 노력은 국제적 공감대를 얻어 마침내 1894년 국제 올림픽위원회(IOC)가 조직됐다. 그는 이 조직의 초대 위원장이 되어 제1회 하계올림픽 개최를 추진했다. 아테네가 올림픽 발상지라는 유서 깊은 장소라는 점에 힘입어 큰 이견 없이 초대 개최지로 결정됐다.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는 14개국 241명의 선수가 참가해 9개 분야의 43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뤘다. 특이한 점이 선수들 전원이 남성이었다는 것이다. 여성의 올림픽 출전은 1900년 제2회 파리대회 때부터였고, 종목도 육상, 수영, 테니스, 크로케, 골프 등 5종목에 한정됐다. 또한, 동계올림픽도 1924년부터 별도로 개최됐다. 제1회 개최지는 프랑스 샤모니였다.

구베르탱의 평화에 대한 염원은 올림픽으로 실현돼 4년마다 개최되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올림픽은 전 세계 스포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전 세계 국가들의 친선과 이해를 증진하는 데도 기여했다. 오늘날 올림픽은 상업적 행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은 있지만, 평화와 우정의 상징으로서 세계 평화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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