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은의 고전 노트] 서양 문학 최초의 ‘시간 여행’ 이야기

이수은, 독서가 · ‘평균의 마음’ 저자 2024. 4. 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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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건국신화는 여러 구전설화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며, 이때 국가 형성에 작용한 다양한 요소가 상징적으로 반영된다. 이탈리아 중부에 있던 고대 왕국 알바롱가의 공주 레아 실비아가 군신 마르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로물루스가 기원전 753년 테베레 강변에 도시국가 로마를 건설하고, 이웃 왕국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평화조약을 맺었다는 로마 건국신화는 이탈리아 반도의 고대 부족들 간 권력 경쟁, 그리고 토착민과 이주민 간 융화 과정을 드러낸다.

한데 서양 고전들을 보면 종종, 로마인이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으로 일컬어진다. 아이네이아스는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묘사한 그리스 대 트로이 전쟁으로 멸망한 트로이 왕국의 유일한 생존자고, 트로이는 오늘날 튀르키예 해안에 있던 고대 도시다. 대체 트로이와 로마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이수은 독서가·'평균의 마음' 저자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30년, 시인 베르길리우스에게 건국 서사시 창작을 명했다. 위대한 로마의 위상에 걸맞도록, 로물루스 전설보다 유서 깊고 국제적인 기원을 만들어야 했던 베르길리우스는 호메로스를 참조해 ‘아이네이스’를 썼다.(’아이네이스’는 ‘아이네이아스의 노래’라는 뜻이다.) 트로이 왕족이자 베누스 여신의 아들인 아이네이아스는 ‘아이네이스’에서 (오디세우스처럼) 바다 위에서 7년을 방랑한 끝에 이탈리아 반도에 상륙, 라비니움이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한다. 그리고 미래에 로물루스라는 뛰어난 후예가 나타나 로마를 건국할 것으로 예언된다. 즉 로물루스는 베르길리우스가 새로이 부여한 전사(前史)를 통해, 반도의 작은 도시국가 족장을 넘어 지중해 전역을 아우르는 기원을 갖게 되었다.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13세기경에 있었던 트로이 전쟁과 기원전 8세기 로마 건국 간 500년의 시간차를 해소하기 위해, ‘아이네이스’에 서양 문학 최초로 ‘시간 여행’과 ‘공간 이동’ 모티프를 적용했다. 이는 후대에 단테, 괴테 같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그 결과로 ‘신곡’과 ‘파우스트’가 탄생했다. 때로 어떤 제약은 인간의 창조력을 자극해 진정한 새로움으로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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