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선생님은 녹음도 1등… 임영웅·영탁 인성 좋아 뜰 줄 알았죠”

이혜운 기자 2024. 4.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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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국민 코러스’ 33년
대한민국 1호 김현아
서울 역삼동 한 녹음실에서 만난 ‘코러스의 여왕’ 김현아. 그녀는 “여행스케치로 인기를 얻던 시절보다 가수를 돋보이게 하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지금이 더 좋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역시 현아 누나, 정말 대단해!”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 녹음실. 작곡가의 찬사에 그녀가 쑥스럽게 웃는다. 보라색으로 염색한 짧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편안한 후드 티에 청바지. 대한민국 인기 작곡가의 녹음실에는 늘 이 여자가 있다. ‘국민 코러스’라는 김현아(55)다. 송대관부터 임영웅까지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가수는 대부분 그녀의 고객이다.

코러스(chorus)는 메인 보컬의 노래를 더 돋보이게 하며 완성도를 높여준다. 쉽게 말해 백그라운드에서 화음을 넣어주는 역할이다. 나훈아의 ‘테스 형’, 장윤정의 ‘어머나’, 백지영의 ‘사랑 안 해’, 보아의 ‘넘버1′,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등은 김현아의 목소리가 들어간 히트곡이다. 가왕 조용필은 그녀에게 “네 목소리에는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무엇이 있다”고 말했다. 남진은 “100년에 한 번 나올 목소리”라고 했다. 바쁠 때는 한 달에 100곡을 녹음한 적도 있다는 김현아를 만났다.

나훈아의 ‘테스 형’, 장윤정의 ‘어머나’, 백지영의 ‘사랑 안 해’, 보아의 ‘넘버1′,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등은 김현아의 목소리가 들어간 히트곡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대한민국 1호 코러스

그녀는 1989년 그룹 ‘여행스케치’로 데뷔했지만, 1·2집 활동만 하고 1991년부터 전문 코러스로 일했다. 가요계 사람들에겐 유명하지만 대중이 김현아를 알게 된 것은 유재석·영탁 등과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다.

-유재석도, 영탁도 ‘현아 누나’라고 친근하게 부르더라고요?

“유재석씨는 방송에서 처음 봤어요. 음악을 워낙 좋아해 앨범도 많이 사는데, 거기서 제 이름을 자주 봤다는 거예요. 잘 아는 사람 같다며 ‘누나’라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 긴장이 풀려서 편안하게 방송할 수 있었어요. 이래서 국민 MC구나 싶더라고요. 영탁씨는 임영웅씨나 장민호씨처럼 무명일 때부터 봤어요. 셋 다 너무 잘돼 제가 다 뿌듯해요. 워낙 인성이 좋은 친구들이라 ‘언젠가는 성공하겠다’ 싶었지요.”

-인성이 좋은 게 표가 나나요?

“제가 사람을 깊게 알지는 못해요. 코러스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 많고, 일하기 전 몇 마디 나눠보는 게 전부니까요. 그런데 눈빛은 강력한데 늘 웃고 겸손하고 소탈한 사람이 보여요. 사실 시기가 안 맞아서, 악재랑 겹쳐서 잘 안 될 때도 있잖아요.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고 인성 좋은 친구들은 결국 잘되더라고요.”

-김현아가 코러스를 하면 그 노래는 다 뜬다는 말이 있어요.

“예전에는 그 ‘감’이 좋았어요. 앨범 시대니깐, 쭉 들어보면 ‘이 노래는 뜨겠다’는 느낌이 왔죠. 제작자들이 저한테 앨범을 들려주고 ‘어떤 곡이 제일 좋아?’ 묻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싱글 시장이기도 하고, 노래 듣는 사람들도 다양해져서 잘 모르겠어요. 뜻밖의 노래가 히트하기도 하고요.”

-한 곡만 예를 들어주신다면.

“김종국의 ‘사랑스러워’요(웃음). 종국씨가 근육질의 상남자 이미지잖아요. 그런데 그 노래를 녹음할 때 막 귀엽게 하니깐, 제가 ‘노래가 (그와 맞지 않게)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했거든요. 그런데 대박이 나더라고요.”

-요즘 ‘사랑스러워’는 숏폼(짧은 동영상)에서 10~20대의 챌린지로 한국과 일본에서 다시 뜨고 있답니다.

“이젠 어디서 어떤 노래가 뜰지 가늠할 수 없어요. 제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 중 히트곡이 많다는 건, 제가 코러스한 노래가 많아서기도 해요. 어떤 노래가 히트하면 ‘이 노래 코러스 누구야?’ 묻고, ‘김현아가 했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제 이름이 알려지게 된 거죠. 모든 곡은 뚜껑을 열어봐야 해요. 잘될지 안될지 아무도 몰라요.”

-코러스로서 본인만의 비결이 있나요?

“코러스란 음성으로 하는 악기 연주라고 생각해요. 노래에 맞춰 기타 연주를 하듯이, 저는 음성으로 맞추죠. 메인 보컬이 빛나게 뒤에서 돕는 것이 제 역할이니까요.”

-맞추기 힘든 가수도 있지요?

“힘든 건 잘 모르겠고, ‘제 목소리랑 얘는 찰떡이야’ 하는 가수는 있어요. 코요태의 신지가 대표적이에요. 신지의 끝음 처리나 비브라토, 뉘앙스가 정말 개성 있는데, 이상하게 그 목소리와 제 음성이 잘 맞아떨어져요. 그래서 신지도 ‘내 노래는 무조건 현아 언니랑 해야 해’라고 하죠. 백지영씨나 장윤정씨도 일찍부터 계속해 와서 편해요. 오래 호흡하면서 합이 점점 맞아가는 것도 있어요.”

-녹음 에피소드가 있다면.

“나훈아 선생님은 정말 녹음을 빨리 끝내요. 두세 번 만에 완벽하게. 직접 작사·작곡을 하니 머릿속에서 이미 계산이 끝난 거죠. ‘테스형’ 때는 녹음실에 안 계셨는데, 악보에 ‘테스 형’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무슨 뜻이지?’ 궁금했어요. 노래를 부르다 ‘소크라테스 형’인 것을 알고 ‘아, 이 형님이구나’ 하면서 엄청 웃었죠.”

-하나만 더 들려주세요.

“성시경씨도 빨리 끝나는데, 제가 듣기에는 음정이 가장 정확한 가수예요. 음정을 보정해 주는 기계가 있는데, 시경씨는 기계 따윈 필요가 없어요.”

-가수의 기본 자질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음정, 박자, 감정이 다 좋아야 합니다. 그래도 ‘나는 가수다’ 말하고 다니려면 음정만큼은 정확해야지요.”

-많은 곡을 작업했는데, 목소리를 알아보나요?

“그럼요. 들으면 딱 알아요. 내 작품이구나.”

“기본적으로 음정, 박자, 감정이 다 좋아야 합니다. 그래도 ‘나는 가수다’ 말하고 다니려면 음정만큼은 정확해야지요.”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생계 위해 코러스로 전업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1989년 서울음반을 통해 데뷔한 여행스케치 1집에 수록된 ‘별이 진다네’다. 여행스케치는 당시 한 가요제를 계기로 만든 11인조 남녀 혼성 포크 그룹이었다.

-’여행스케치’ 인기가 굉장했는데요.

“활동은 재미있었어요. 대학 축제도 많이 다니고. 다 또래라 의지도 많이 되고. 하지만 팬덤으로 큰 인기를 얻거나 수입이 많거나 하진 않았어요. 멤버도 많아 배분해야 했고(웃음).”

-코러스 활동은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원래 코러스는 가수들끼리 서로 품앗이로 해주던 거였어요. 솔로 앨범을 준비하던 그때 아버지가 좀 많이 아프셨어요. 갑자기 어머니가 가장이 됐죠. 저보다 여덟 살 어린 남동생은 학업이 남아 있었고요. 여행스케치 활동으로는 돈을 못 벌고, 솔로 앨범이 나온다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죠. 그런데 코러스는 녹음하면 바로 일당을 받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이 업을 선택한 거예요.”

-첫 곡이 뭐였나요?

“1991년 015B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그날 바로 2만원을 받았어요. 당시 시급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돈이었죠.”

-가수에서 코러스로 바뀐 삶은 어땠나요?

“가수일 때는 공연도 하고 방송도 하지만, 코러스는 계속 녹음실에 있어요. 그래야 일을 많이 할 수 있거든요. 항상 녹음실에 있다 보니, 아는 사람도 많아지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게 되고, 그렇게 자리를 잡은 거예요.”

-언제부터 노래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나요?

“어릴 때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했어요. 아버지는 학교 다닐 때 밴드부에서 트럼본을 불었대요. 어머니도 노래를 잘 부르고. 집안 분위기가 개방적이라 늘 음악과 함께했어요. 자연스럽게 가수가 되고 싶었죠.”

-만약 그때 아버지가 아프지 않고 예정대로 솔로 앨범을 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렇다고 더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진 않아요. 저는 코러스로 인생의 항로를 바꾸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이렇게 활동할 수 있고, 좋은 분들 만날 수 있으니. 아무리 유명한 가수라고 해도 매일 좋겠어요? 피곤한 날이 더 많을걸요? 근데 저는 늘 즐거워요.”

◇노래 가르치는 사회 봉사도

김현아가 혼자 온전히 부른 노래들도 있다. 애니메이션 주제가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으로 흘러가는 세일러문의 주제가 ‘달빛의 전설’을 비롯해 ‘마법 기사 레이어스’ ‘플랜더스의 개’ 수록곡 등을 불렀다.

-애니메이션 주제가는 어떻게 부르게 됐나요?

“여행스케치 보컬로 활동했던 이창희 음악감독이라고 있어요. 그가 투니버스에서 작곡가로 일할 때 제가 노래를 부르게 됐죠. ‘세일러문’이 잘되니 다른 일감이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가요와 비교해 애니메이션 주제가의 차이라면.

“디렉션이 조금 더 구체적이에요. 세일러문은 ‘화려하면서도 귀엽고 섹시하게 불러달라’고 했어요. 저는 CM송도 꽤 했어요. 그런 상업적 노래는 원하는 대로 불러줍니다.”

-왜 많은 작곡가와 가수가 김현아를 찾을까요?

“제 재능이 특출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꾸준하게 오래하다 보니까 잘하게 된 느낌이에요. 한 분야에서 30년 넘게 있다 보니 저만의 노하우가 생긴 거죠.”

-인생에서 또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라디오 진행요. 디제이에 대한 꿈이 있거든요. 프로그램명은 ‘김현아의 국민 가요’ 어때요? 직업이 코러스다 보니 음악을 편식할 수 없거든요. 제가 노래도 많이 알고, 장르도 다양하게 소화하니까 그 장점을 살리고 싶어요.”

-개인적인 꿈이라면.

“대학 다닐 때부터 영아원에서 봉사 활동을 했어요. 그 친구들은 독립해야 하니깐 대부분 미용 같은 기술을 익혀요. 가수의 꿈이 있어도 배울 기회가 없죠. 그렇게 환경은 어렵지만 재능이 있는 친구들에게 무료로 음악을 가르쳐 주는 시설을 운영하고 싶어요. 작곡가 그룹인 ‘알고 보니 혼수상태’ 친구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집안 형편이 어려울 때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수강료 안 받고 가르쳐 주셨대요. 무료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는 것이 꿈이라고. 제가 ‘그럼 나중에 같이해 볼까?’ 그랬어요. 상상만으로도 너무 멋질 것 같아요.”

“제 재능이 특출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꾸준하게 오래하다 보니까 잘하게 된 느낌이에요. 한 분야에서 30년 넘게 있다 보니 저만의 노하우가 생긴 거죠.”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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