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번역이 살린 ‘Ajimae’의 고유성[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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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가 올해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오른 데엔 번역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이수지 작가가 202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안데르센상 그림 부문을 수상했지만, 한국인 글 작가가 최종 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에서 진행되는 안데르센상 수상자 발표에서 'Ajimae' 같은 이색적인 단어가 언급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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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재 교수 훌륭한 번역도 주목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금이 지음·400쪽·1만6000원·창비
주인공 이름은 ‘버들’이다. 고유명사라 ‘Bodeul’이라 번역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영문판은 버드나무를 뜻하는 ‘Willow’라 번역했다. 버들이란 이름이 버드나무에서 왔다는 점에 착안해서다. 여성의 머리칼처럼 축 늘어진 잎 때문에 ‘여인’, 버들 류(柳)와 머무를 류(留)가 독음이 같아 ‘이별’을 상징한다고 여겨지는 버드나무의 함의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닐까.
반면 ‘아지매’라는 표현은 발음 그대로 ‘Ajimae’라 번역했다. 아주머니의 방언인 이 단어가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당시 여성의 처지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설의 등장인물인 ‘부산 아지매’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친가가 부산이라 추정될 뿐이다. 이금이 작가 역시 한국판에서 “구포(소설의 배경)에 사는데도 부산 아지매로 불리는 아주머니”라고 묘사하며 이름 없는 여성들의 삶을 서술했다.
‘포와(布哇)’ 역시 발음 그대로 ‘Powa’라 썼다. 당시 조선인들이 하와이를 발음하기 힘들어 한자를 음역한 것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다. 당시 사진 신부에게 하와이가 얼마나 두렵고 미지의 땅이었는지 번역이 보여주는 셈이다. 소설 영문판이 지난해 5월 미국의 저명한 출판상인 ‘노틸러스 출판상’ 역사소설 부문 금상을 받은 건 이런 섬세한 번역 덕이다.
번역가 이력도 흥미롭다. 소설 번역을 맡은 이는 안선재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82)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안 교수는 1970년대에 종파를 초월한 수도원인 프랑스 테제공동체에 머물며 수행하다 그곳을 방문한 고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김 추기경의 초대로 1980년 수사로 한국에 온 뒤 서강대에서 영어영문학을 가르치다 1994년 귀화했다. 안 교수는 정년 퇴임 후에도 서강대 근처에 오피스텔을 마련해 한국 문학작품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 때마다 조명을 받는 건 작가다. 하지만 좋은 번역이 없다면 유명 작품도 심사 대상에 오르기는 힘들 것이다. 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에서 진행되는 안데르센상 수상자 발표에서 ‘Ajimae’ 같은 이색적인 단어가 언급되길 기대해본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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