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기타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날

이지혜 기자 2024. 4. 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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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서가 = 정선영]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뒤적이다가 오랜만에 옛 영화를 다시 봤다. 제목은 <애나 앤드 킹>.

영화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태국과 버마 접경에 위치한 사이암 왕국의 뭉쿳 국왕(주윤발)은 약소국의 독립권을 지키기 위해 자식들을 서구 근대화 교육을 하려 한다. 이에 영국인 애나(조디 포스터)를 가정교사로 초청한다.

애나는 아들과 함께 사이암 왕국에 왔고, 50명이 넘는 국왕 자녀들을 가르치면서 고집 센 국왕과 의견 충돌이 잦다. 평생을 서로 다른 문화와 그에 따른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 상처를 주고 상처받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왕은 애나를, 애나는 왕을 조금씩 이해해간다. 나중에는 애나가 쿠데타로 위협에 처한 국왕 가족을 돕기에 이른다.

다소 억지스러울지 몰라도, 내가 기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꽤나 자주 기타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껴져, (잘하고 싶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야속해하기도 하니까.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우선 기타를 잡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기타 넥의 줄을 건드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튜닝을 위해 줄을 조이거나 풀 때는 왼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한참 만에 어렵게 튜닝을 한 뒤에는 음이 다시 흐트러질까 봐 기타를 건드리는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각종 용어 역시 생경하긴 마찬가지였다. 지판, 프렛, 페그, 포지션 마크 같은 기타 각 부분의 이름은 물론이요, 스트로크, 아르페지오 같은 주법, 메이저 코드, 마이너 코드, 세븐 코드 등도 내겐 저 멀리 오지의 외국어 같았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는지 기타 넥을 잡고 자리를 이동하거나 연습하다 자세를 좀 바꾸거나 할 때 기타 몸통 끝을 테이블에 부딪히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해!”라고 외치며 흠집이 생긴 곳을 쓰다듬기도 한다.

이런저런 용어를 내 입으로 말할 때도 좀 자연스러워졌다.

잘 외워지지 않아 고생했던 코드는 지금도 기타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고회로가 정지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약간의 힌트와 시간이 주어지면 어느 정도는 짚어낸다. 미숙한 코드 체인지나 현저히 부족한 리듬감도 가뭄에 콩 나듯 “그렇죠, 이거죠”라는 기타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는 걸 보면 조금씩은 나아지는 듯하다.

안타깝게 굳은살이 꽤 잡혔음에도 손가락 힘이 약해 좋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지난 레슨 때는 선생님이 또 작정을 하였는지 하드 트레이닝이 이어졌다. 그렇게 젖 먹던 힘까지 내다가 손등과 팔뚝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애초에 힘이 현저히 부족한 데다 힘쓰는 방법까지 모르니 레슨 중 자주 겪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노력과 시간, 정성이 필요하듯, 내가 기타를 이해하고 잘 다루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 정성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를 들이려는 열린 자세를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기타도 내 마음을 알아주어 좋은 소리로 화답하겠다.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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