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해도 건강한 '할메니얼' 입맛 양갱…'간식의 여왕' 됐네
비비 ‘밤양갱’ 인기에 웃은 K디저트
가수 비비(본명 김형서·26세)가 부른 노래 ‘밤양갱’의 노랫말이다. 연인과 이별하면서 ‘내가 바라던 건 진수성찬 같은 화려함이 아니라, 달디단 밤양갱 조각처럼 작지만 소중한 마음’이었음을 표현한 노래로 작사·작곡은 장기하가 맡았다.
지난 2월 13일 발매된 ‘밤양갱’이 지니, 유튜브 뮤직, 플로 등 주요 음원사이트 1위를 휩쓸면서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크라운해태제과의 과자 연양갱·밤양갱을 비롯해 시중의 양갱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업계에 따르면 앨범이 발매된 2월 13일부터 26일까지 약 보름 동안 국내 주요 편의점 4사(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의 연양갱 매출은 전월 동기 대비 최대 40% 증가했다.
‘연양갱’은 1945년 해태제과가 설립과 함께 출시한 1호 제품이다. 사람으로 치면 올해 나이 79살이다. ‘과자’라고 불릴 만한 제품이 전무했던 시기에 해태제과는 전통음식인 ‘묵’에서 착안해 팥을 넣어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연양갱을 개발했다. 당시 연양갱은 획기적인 종이 포장을 사용했는데, 이 기본 디자인은 현재까지도 사용 중이다. 판매 가격은 50환(1원=5환)으로 당시 시내버스 요금과 맞먹는 고급 과자였다.
그런데 올해 스물여섯 살의 잘파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와 2010년대 초반 이후에 태어난 알파세대의 합성어) 가수 비비가 79살의 양갱을 ‘간식의 여왕’으로 불러올린 것이다. 실제로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는 인스트그램에서 ‘#양갱’을 검색하면 13만7000개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최근 3~4년 사이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것은 ‘할메니얼’ 입맛이다. ‘할메니얼’은 할매 입맛과 밀레니얼 세대를 합친 신조어다. 소시지·햄·떡볶이 등 자극적인 단짠을 즐기는 경향이 ‘초딩 입맛’, 국밥·해장국 등 시원하고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취향이 ‘아재 입맛’이라면 할메니얼 입맛은 밋밋하지만 건강한 맛이 특징이다.
지난달 배달 플랫폼 요기요는 2년간의 시즌 데이터 분석을 통해 봄에 주문수가 많았던 메뉴들을 공개했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약과’의 봄 시즌 주문수는 전년 동기대비 약 11배 증가했고, ‘꽈배기’는 2.3배 증가했다. 쑥의 향긋함을 담은 ‘쑥라떼’도 39% 이상 주문수가 늘었다고 한다. 광동제약은 ‘비타500향 약과·오란다’ ‘광동 쌍화약과’를, 정관장은 홍삼의 풍미가 느껴지는 ‘수제약과’를, CU는 ‘약과 아이스크림’ ‘약과 타르트’ ‘약과 쿠키’ 등 약과 관련 상품 3가지를 연달아 출시했다.
젊은 층이 많이 찾는 카페들이 아예 ‘K디저트 카페’를 테마로 메뉴를 구성해 사랑받는 경우도 많다.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담장옆에국화꽃CCOT’의 홍시빙수·팥바팥빙수·수정과우유·통단팥죽, 강남구 봉은사로에 위치한 ‘한과와락’의 개성주악·개성약과, 을지로에 있는 ‘적당’의 백설기앙버터·양갱 등이 대표적이다.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식문화의 유행은 참 반가운 일이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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