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가여운 것들, 낙원 혹은 실낙원

2024. 4. 5. 22:4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이 '가여운 것들'에 돌아갔을 때 이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성숙한 여인의 몸에 태아의 뇌를 장착한 여성 '벨라 백스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태아에서 성숙한 여성까지 한 인간의 전체 인생 주기를 표현하는 방대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요구했고, 엠마 스톤은 이 어려운 연기를 매우 훌륭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해 오스카 여우주연상이 ‘가여운 것들’에 돌아갔을 때 이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성숙한 여인의 몸에 태아의 뇌를 장착한 여성 ‘벨라 백스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태아에서 성숙한 여성까지 한 인간의 전체 인생 주기를 표현하는 방대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요구했고, 엠마 스톤은 이 어려운 연기를 매우 훌륭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가여운 것들’은 엠마 스톤의 화려한 연기와 요르고스 란티노스 감독 특유의 미장센과 세계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동명 원작소설이 탄탄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또 하나의 참조물이 있다. 바로 메리 셸리의 1817년 소설 ‘프랑켄슈타인’이다. 원작소설과 영화에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 플롯의 원형을 제공한 것이 이 소설이다. 산업혁명과 진화론의 시대, 인간 이성과 과학기술에 대한 신념과 낙관이 무르익던 시대에 메리 셸리는 인간에게 금단의 영역으로 남겨진 최후의 영역, 생명 창조의 문제를 건드린다. 프랑켄슈타인은 그의 실험실에서 시체 조각들을 긁어모아 생명을 탄생시킨다. 비록 기형적인 괴물이었지만 그것은 명백히 생명 창조라는 신의 영역을 넘본 인간의 도발이었다. 그래서 메리 셸리는 소설에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를 붙인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소설을 출간했지만 이러저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프랑켄슈타인’은 남성중심 문명을 비판한 여성적 글쓰기의 흔적이 뚜렷한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요르고스 란티노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달리 갓윈 백스터는 자신의 피조물에 ‘벨라(아름답다/전쟁’)라는 이름을 붙인다. 벨라는 스스로 성장, 진화한다. 런던에서 리스본, 알렉산드리아, 파리를 거쳐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그녀는 언어를 배우고 탄생과 추락, 세계의 밑바닥을 경험하며 상징적인 부활을 한다. 다양한 남성들과의 만남으로 이뤄진 그녀의 여정은 가부장제의 역사, 혹은 인간의 역사를 압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 갓윈의 실험실에서 그녀는 새로운 창조주가 된다. 그녀의 정원에서 살아가는 하이브리드적 존재들은 무척 기괴해 보이지만 영화는 이 낯선 에덴동산을 파국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탄생과 죽음이 실험실에서 통제되는 이 시대의 도덕을 품은 낙원 혹은 실낙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제안하는 듯하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