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270km ‘초광속’ 투수는 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않았을까? [올어바웃스포츠]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2024. 4. 5. 16: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드핀치의 이야기가 담긴 스포츠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1985년 4월 특집기사 표지<출처 : SI>
미국 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의 뉴욕 메츠는 입체적인 팀입니다. 야구계 최고의 명문 뉴욕 양키스와 같은 연고지를 둔 영원한 2인자이자 성적 역시 1962년 창단 이래 이겼던 경기보다 진 경기가 많은 정도로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머 넘치고 컬트적인 팬들을 적지 않게 보유하고 있는 MLB에서 손에 꼽는 인기팀이 바로 메츠입니다.

메츠는 1969년 젊은 주축선수들의 활약에 당대 최강의 팀인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꺾고 창단 7년만에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가져갑니다. 그러나 첫 우승 이후 이유 모를 부진에 빠져 하위권을 전전합니다. 팬들은 승리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져갔고 그럴수록 팀을 수렁에서 구해줄 구세주가 강림하길 빌었습니다. 그러기를 10년이 훌쩍 지난 1985년.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야구의 역사를 뒤바꿀 재능을 지닌 메츠의 유망주를 소개합니다.

시속 270km의 패스트볼을 뿌리는 사나이. ‘시드 핀치’의 등장입니다.

“하버드대 출신 티벳 요가수행자, 메츠의 초대형 유망주되다”
핀치의 광속구를 받아 아픈 손을 쥐고 있는 메츠의 투수 론 레이놀즈<출처:SI>
SI의 객원 기자 조지 플림튼은 4월호에 ‘시드 핀치의 기이한 케이스’란 특집 기사를 싣습니다. 28살의 우완투수인 핀치에 대한 플림튼의 묘사는 하나하나가 기이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의 투구 능력이었습니다. 핀치는 워밍업도 없이 시속 168마일(270km)를 던져 당시 최고 기록인 시속 167km를 아득하게 뛰어넘었습니다. 심지어 이마저도 야구화 대신 무거운 등산화 한 짝만 신은 채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메츠의 스카우트팀은 핀치의 직구 속도와 컨트롤에 대해 8점 만점에 9점을 부여했습니다.

핀치의 투구를 직접 지켜본 메츠 선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외야수 존 크리스텐슨은 “야구공이 그렇게 빨리 던져질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그 공을 치는 것은 솔직히 인간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극찬했습니다. 포수 론 레이놀즈는 핀치의 투구 몇 개를 받은 뒤 손이 너무 아파 포구를 포기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SI가 취재한 그의 성장환경도 어느 하나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영국 고아원에서 자란 핀치는 향후 네팔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고고학자 프랜시스 화이트 핀치에게 입양됐습니다. 하버드대학교를 잠시 다닌 그는 티벳으로 훌쩍 떠나 스승에게서 요가를 배웠고, 프렌치 호른 연주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잡지사와 야구단의 손발이 척척맞는 만우절 농담
팀 간판타자이자 MLB 신인왕 출신인 스트로베리 옆에 자리잡은 핀치의 라커룸 <출처 :SI>
눈치챘겠지만 ’시속 270km의 사나이‘ 시드 핀치는 SI가 1985년 만우절을 맞아 고안해 낸 가상의 선수였습니다. 당시 편집자였던 마크 멀보이는 마침 그 해 4월 출간일이 만우절과 겹친다는 것을 알아채고 농담으로 가득찬 이야기를 내보내겠다고 생각합니다. 플림튼은 멀보이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특집 기사를 준비한 것입니다.

만우절 특집 기사는 꽤나 정교했습니다. SI의 사진작가는 자신의 친구인 중학교 미술선생님 조 버튼을 꼬셔 그를 미지의 선수 ’시드 핀치‘로 만들었습니다. 메츠 선수들의 인터뷰와 그의 이름이 적힌 라커룸 사진도 함께 실렸으며, 메츠의 투수 코치와 대화하는 핀치의 사진도 신빙성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사 이곳저곳에 시드 핀치가 농담이라는 것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투구 속도와 성장 환경은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도 이야기가 허구로 가득 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기사 내에도 힌트는 담겼습니다. 기사의 부제는

“그는 투수이자 요가수행자이자 은둔자다. 부유한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요가를 결심하고 야구 선수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시드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He’s a pitcher, part yogi and part recluse. Impressively liberated from our opulent lifestyle, Sidd‘s deciding about yoga -- and his future in baseball)”

입니다. 첫글자만 읽으면 ’Happy April fools(즐거운 만우절)‘이었습니다.

팬들도 신문사도, 경쟁팀도 속았다! 핀치가 일주일만에 은퇴할수밖에 없었던 이유
시드 핀치의 모델이 된 중학교 미술교사 조 버튼(오른쪽) <출처 : SI>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메츠의 팬들은 순식간에 ’시드 핀치‘에 빠져버렸습니다. 지지부진한 팀을 이끌어줄 대형 신인이 등장했다는 희망이 논리적인 사고를 멈춰버린 것이지요. SI지엔 더 많은 정보를 요청하는 팬들의 편지와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뉴욕시 스포츠 기자들은 SI에게만 핀치 이야기를 실을수 있도록 한 메츠의 홍보팀에 연락해 항의하기에 이릅니다. 두 MLB팀 단장은 피터 웨베로스 당시 MLB 사무국장에 전화해 핀치에 대해 문의하기도 했씁니다. 한 지역지는 핀치를 찾기 위해 기자를 파견했고, 한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는 핀치의 투구를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핀치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당시 SI에 온 편지들중엔 “형편없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사네요. 한 번 낚이긴 했는데, 마음에 드네요”, “구독 취소합니다”와 같은 내용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SI지는 일주일 뒤인 8일 핀치의 은퇴를 알리는 기사를 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뒤엔 이 기사가 가짜라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속도만큼 빠르게 전설이 된 남자: 만우절에서 시작돼 문화 현상으로
시드 핀치 30주년 이벤트에서 ‘핀치 버블헤드’에 사인을 해주고 있는 조 버튼 <출처 : 브루클린 사이클론스>
핀치의 이야기는 스포츠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만우절 농담입니다. 본질적으로 엔터테인먼트인 스포츠업계에선 비록 허구일지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얻었다면 성공적인 이벤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스포츠의 산실인 미국에선 여전히 핀치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1987년 핀치를 세상에 소개한 플림튼은 기사를 소설로 확장해 1987년에 책을 출간합니다. 기존의 이야기에 더해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오 사다하루와 핀치의 인연, 핀치가 야구를 계속해 결국 MLB 무대에 오르게 된 이야기도 덧댔습니다.

이야기를 계속됩니다. 2015년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은 ’30 for 30‘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시드 핀치 현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범접불가 : 시드핀치와 티벳의 야구‘란 프로그램은 핀치가 생소한 젊은 야구팬들을 속일 멋드러진 농담이었습니다.

같은 해 8월 메츠 산하 마이너리그팀은 브로클린 사이클론스는 핀치의 등장 30주년 기념해 이벤트를 계획했습니다. 유명 야구선수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버블헤드‘의 핀치 버전을 만들어 나눠줬고, 핀치의 모델인 조 버튼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줬습니다. 조지 플림튼은 아들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그 날의 시구자가 됐습니다.

세번째 우승 정조준한 메츠, 새로운 ’핀치‘가 필요할까
1986년 두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뉴욕 메츠 <출처 : Gettyimages>
초대형 유망주의 급작스러운 은퇴로 인한 메츠 팬들의 실망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메츠엔 핀치 못지 않은 미래가 밝은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입니다. 메츠는 1983년 신인왕인 대럴 스트로베리, 1984년 신인왕과 사이영상 2위를 석권한 드와이트 구든 등을 주축으로 했고, 핀치가 은퇴한 다음 해인 1986년 그토록 염원했던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팬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메이저리그를 밟지 않고 떠난 핀치에 대핸 향수가 남아있는 듯 싶습니다. 두번째 우승 이후 아직까지 새로운 우승반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죠. 핀치의 모델인 조 버튼은 몇 년 전 영국에 여행을 갔다가 한 미국인 무리들과 마주합니다.

“시드 핀치, 여기서 도대체 뭐하고 있어요?”

그가 받았던 질문입니다.

<참고문헌과 외신> ◎https://www.si.com/mlb/2014/10/15/curious-case-sidd-finch ◎https://www.si.com/mlb/2014/10/21/si-60-curious-case-sidd-finch-mark-mulvoy-myra-gelband ◎https://en.wikipedia.org/wiki/Sidd_Finch#cite_ref-13 ◎https://www.oakpark.com/2015/04/01/the-curious-case-of-joe-berton/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