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270km ‘초광속’ 투수는 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 않았을까? [올어바웃스포츠]
메츠는 1969년 젊은 주축선수들의 활약에 당대 최강의 팀인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꺾고 창단 7년만에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가져갑니다. 그러나 첫 우승 이후 이유 모를 부진에 빠져 하위권을 전전합니다. 팬들은 승리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져갔고 그럴수록 팀을 수렁에서 구해줄 구세주가 강림하길 빌었습니다. 그러기를 10년이 훌쩍 지난 1985년.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야구의 역사를 뒤바꿀 재능을 지닌 메츠의 유망주를 소개합니다.
시속 270km의 패스트볼을 뿌리는 사나이. ‘시드 핀치’의 등장입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의 투구 능력이었습니다. 핀치는 워밍업도 없이 시속 168마일(270km)를 던져 당시 최고 기록인 시속 167km를 아득하게 뛰어넘었습니다. 심지어 이마저도 야구화 대신 무거운 등산화 한 짝만 신은 채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메츠의 스카우트팀은 핀치의 직구 속도와 컨트롤에 대해 8점 만점에 9점을 부여했습니다.
핀치의 투구를 직접 지켜본 메츠 선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외야수 존 크리스텐슨은 “야구공이 그렇게 빨리 던져질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그 공을 치는 것은 솔직히 인간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극찬했습니다. 포수 론 레이놀즈는 핀치의 투구 몇 개를 받은 뒤 손이 너무 아파 포구를 포기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SI가 취재한 그의 성장환경도 어느 하나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영국 고아원에서 자란 핀치는 향후 네팔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고고학자 프랜시스 화이트 핀치에게 입양됐습니다. 하버드대학교를 잠시 다닌 그는 티벳으로 훌쩍 떠나 스승에게서 요가를 배웠고, 프렌치 호른 연주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만우절 특집 기사는 꽤나 정교했습니다. SI의 사진작가는 자신의 친구인 중학교 미술선생님 조 버튼을 꼬셔 그를 미지의 선수 ’시드 핀치‘로 만들었습니다. 메츠 선수들의 인터뷰와 그의 이름이 적힌 라커룸 사진도 함께 실렸으며, 메츠의 투수 코치와 대화하는 핀치의 사진도 신빙성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사 이곳저곳에 시드 핀치가 농담이라는 것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투구 속도와 성장 환경은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도 이야기가 허구로 가득 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기사 내에도 힌트는 담겼습니다. 기사의 부제는
“그는 투수이자 요가수행자이자 은둔자다. 부유한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요가를 결심하고 야구 선수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시드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He’s a pitcher, part yogi and part recluse. Impressively liberated from our opulent lifestyle, Sidd‘s deciding about yoga -- and his future in baseball)”
입니다. 첫글자만 읽으면 ’Happy April fools(즐거운 만우절)‘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핀치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당시 SI에 온 편지들중엔 “형편없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사네요. 한 번 낚이긴 했는데, 마음에 드네요”, “구독 취소합니다”와 같은 내용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SI지는 일주일 뒤인 8일 핀치의 은퇴를 알리는 기사를 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뒤엔 이 기사가 가짜라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7년 핀치를 세상에 소개한 플림튼은 기사를 소설로 확장해 1987년에 책을 출간합니다. 기존의 이야기에 더해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오 사다하루와 핀치의 인연, 핀치가 야구를 계속해 결국 MLB 무대에 오르게 된 이야기도 덧댔습니다.
이야기를 계속됩니다. 2015년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은 ’30 for 30‘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시드 핀치 현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범접불가 : 시드핀치와 티벳의 야구‘란 프로그램은 핀치가 생소한 젊은 야구팬들을 속일 멋드러진 농담이었습니다.
같은 해 8월 메츠 산하 마이너리그팀은 브로클린 사이클론스는 핀치의 등장 30주년 기념해 이벤트를 계획했습니다. 유명 야구선수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버블헤드‘의 핀치 버전을 만들어 나눠줬고, 핀치의 모델인 조 버튼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줬습니다. 조지 플림튼은 아들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그 날의 시구자가 됐습니다.
그러나 팬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메이저리그를 밟지 않고 떠난 핀치에 대핸 향수가 남아있는 듯 싶습니다. 두번째 우승 이후 아직까지 새로운 우승반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죠. 핀치의 모델인 조 버튼은 몇 년 전 영국에 여행을 갔다가 한 미국인 무리들과 마주합니다.
“시드 핀치, 여기서 도대체 뭐하고 있어요?”
그가 받았던 질문입니다.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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