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자해행위”…표심 갉아먹는 환상, 가덕도 신공항[시사저널-경실련 공동기획]

공성윤 기자 2024. 4. 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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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최악의 개발사업’ 5위 가덕도 신공항 부지, 전문가 동행 취재
입지부터 경제성 떨어지는 실패작…멍든 주민들의 아우성 “당리당략에 신공항 이용해 먹었다”
‘지역 발전’이란 장밋빛 전망도 실현 불투명...“김해공항 확장안이 완벽한 대체재 될 수 있어”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전문] 선거철만 되면 '돈잔치'가 벌어진다. 공항·철도·도로 등 사회기반시설(SOC), 테마파크·관광 단지, 재개발·재건축 등 대규모 건설과 관련한 개발 공약이 난무한다. 특히, 지역 대표를 뽑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봇물 터지듯 나온다.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는 개발사업은 정확한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지역사회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난개발이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도시개발‧공공사업으로 인한 재정낭비와 환경파괴 등은 고스란히 시민들 몫이다. 시사저널은 4.10총선을 맞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와 함께 ▲전문가들이 선정한 역대 최악의 도시개발·공공사업 ▲254개 지역구 출마자의 개발 공약 전수조사 등을 진행했다. 개발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시사저널과 경실련은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진행된 도시개발·공공사업들과 현재 추진 중인 사업들 중에서 최악의 사업을 선정했다. 1위는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차지했다. 이 밖에 서울-김포 통합, 4대강 사업, 레고랜드, 가덕도 신공항이 TOP5에 올랐다. 무안·청주·양양 공항, 도시재생 사업, 새만금 사업, 대구 신공항, 해운대 엘시티 사업이 뒤를 이었다. 시사저널은 사업예정지에 편입된 가덕도 대항동을 4월 1일 찾았다. 현장에는 지방대 경제학과 A교수가 동행했다. 그는 사안의 민감성과 발언의 파장을 고려해 거듭 익명을 요구했다. 

점입가경. 부산 강서구 가덕도는 가는 길마다 굽이굽이 천혜의 절경을 보여줬다. 벚꽃이 만개해 화사한 분위기마저 물씬 풍겼다. 절벽에 서니 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유독 날씨가 맑아 20여km 떨어진 거가대교와 대죽도가 눈에 훤히 들어왔다. 이곳은 빠르면 올해 12월, 늦어도 내년 초부터 한동안 인부의 발자국과 흙먼지로 뒤덮인다. 역대 정권마다 부침을 거듭한 기간사업인 동남권 신공항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최악의 도시개발·공공사업'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35표를 받아 5위에 꼽혔다. 전문가들이 집중적으로 선정한 이유는 '정치논리(27표)'였다. 그 말대로 신공항 설립 사업은 정권에 따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업이었다.

4월1일 오후 부산 강서구 대항전망대에서 바라본 가덕도 신공항 예정부지 전경 ⓒ시사저널 박정훈

정치논리에 좌우된 '최악의 개발사업'

2002년 김해시 돗대산에서 일어난 민항기 충돌사고로 촉발된 신공항 필요성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사업 검토 지시로 공론화됐다. 하지만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했고,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부활시키며 김해신공항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듬해 대선공약으로 신공항을 내건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김해신공항 계획을 사실상 철회하고 2021년 가덕도 신공항 건설안을 법률('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로 못박았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특별법에 예비타당성 면제 조항을 포함시켜 국민의힘의 반발을 샀다. 특히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문 대통령이 가덕도를 방문했을 때는 "선거 개입"이란 지탄이 쏟아졌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도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직후인 작년 12월6일 부산을 찾아 가덕도 신공항 조기 개항을 약속했다. 이후 12월29일 고시된 신공항 건설사업 기본계획에 따라 사업비 13조 4900억원과 사업예정지가 명문화됐다.

부산역에서 차로 가덕도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지하철은 없었고 버스로 가려면 족히 2시간은 잡아야 했다. A교수는 "신공항 사업에서 정치인들이 정치논리에 사로잡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부분이 공항의 입지"라며 "가덕도는 접근성이 떨어져서 이용객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산시는 신공항과 함께 부울경(부산∙울산∙경남)에서 1시간 이내에 공항에 다다를 수 있는 광역철도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공항 진입철도를 깔아 기존 광역철도와 잇는 방식이다. 이에 A교수는 "(부산시와 김해공항을 잇는) 부산-김해 경전철의 경우 작년에 본 적자만 800억원에 이른다"며 "공항을 아무리 크고 편리하게 지어도 접근성 문제는 물리적 해결이 불가능할뿐만 아니라 세금이 빠져나가는 구멍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헌식씨와 그의 자택에 있는 전봇대. 이 전봇대는 작년에 토지 보상을 노리고 지어진 가설건축물이 해풍으로 무너지면서 그 파편에 맞아 휘어졌다고 한다. ⓒ시사저널 공성윤

마음의 병 든 주민들…"국토부는 죽음의 삽질 멈춰라!"

가덕도 대항동에 들어섰다는 건 내비게이션을 굳이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차도 양쪽에 줄지어 걸린 플래카드 덕분이다. 여기에는 모두 토지 보상요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초입의 플래카드는 "국토부는 진정성 있는 피해보상 대책을 수립하세요" "공존과 상생의 길! 국토부의 진정성 있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등 점잖은 어조였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니 "지역 현안 안 챙기는 정치인! 선거 때 표 받을 생각하지 마라" "와이라노! 똥묻은 빤쮸까지 벗어주까? 국토부는 당장 죽음의 삽질을 멈춰라!" 등 노골적이고 강경한 어조로 바뀌었다.

도로 중간 대항전망대는 아예 난간 전체가 플래카드로 빙 둘러져 있었다. 월요일 이른 오후인데도 삼삼오오 관광객이 계속 찾아왔다. 이들은 "이거 다 우째 메우노" "앞으로 주민들은 뭐 묵고 사노" "토지 수용이 제대로 되겠나" 등 대부분 신공항과 관련된 얘기를 나눴다. 이곳 대항전망대는 지난 1월2일 신공항 부지 시찰 후 이동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피습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가덕도 주민들은 이 대표에게 '신공항 건설에 따른 피해보상 요구안'을 직접 전달했지만 대형 사건에 묻혀버렸다.

요구안을 이 대표에게 건넸던 김상환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그에게 경실련과의 협업 취지를 설명하자 "환경 문제 지적할 거면 나가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오해라고 설명한 뒤 그를 돌려 앉혔다. 김 위원장은 "환경단체가 우리를 두 번 죽이고 있다"며 "단점을 끄집어내 추진하려던 사업을 또 중단시키려는 세력 때문에 주민들은 마음의 병이 들었다"고 호소했다.

김 위원장은 "20년 넘게 주민들이 정치권에 우롱당했다"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리당략에 따라 신공항 사업을 이용만 해먹으니 마을이 수년째 어수선한 분위기"라고 주장했다. 문태진 주민대책위 사무국장은 "개발지역으로 묶이다 보니 공법상 이용제한이 걸리고 토지거래도 막혀 오랜 기간 지가 인상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며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앉아서 돈을 뜯긴 셈"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개발론만 무성하고 지역 경제는 오히려 후퇴했다. 그에 따른 보상금은 설령 개발이 안 돼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공항을 둘러싼 주민대책위의 입장은 충분한 보상금을 전제로 한 '조건부 찬성'인 셈이다.

'조건부 찬성' 속 정치권 비난…"신공항 갖고 표나 딸라 케쌌지"

다른 주민들도 생각은 비슷했다. 다만 개인 상황에 따라 조금씩 의견이 갈렸다. 슈퍼를 운영하는 서인길씨는 "나는 땅도 없고 가게도 임대해서 영업하는 입장이라 신공항에 반대한다"며 "마을 주민 10명 중 7명은 반대고 3명만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자가를 소유한 어부 김아무개씨는 "찬성이 7명이고 반대가 3명"이라고 정반대로 말하며 "보상금 받아 나가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들과 근래 부쩍 늘어난 외지인 투기꾼들이 신공항에 반대하는 원주민보다 더 많다"고 주장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가덕도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2021년 2월)되기 두 달 전인 2020년 12월 기준 가덕도 사유지의 약 80%가 외지인 소유였다. 본인 소유 카페를 운영하는 강아무개씨는 "보상금 많이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부산 발전과 국익 차원에서 신공항은 세워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신공항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로 표출됐다. 가덕도 출신으로 어업을 하다 은퇴한 국가유공자 주헌식씨는 '이번 기회에 말 좀 해야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나 여(이곳)를 위해 실제로 한기 뭐 있는교? 만날 신공항 갖고 표나 딸라 케쌌지. 그것 땜에 바깥 놈들 들어와 갖고 되도 않은 가건물 지어 놓으니 바닷바람에 다 뿌사지가꼬 우리 집이 개박살이 났다 아인교. 이번 선거도 누굴 찍으나 결과는 뻔할끼라!" 관광차 가덕도에 들렀다는 부산 사하구 주민 김동욱씨는 "고마 정치인 싹 다 없애뿌고 신공항 사업은 공무원들한테 맡깄으면 좋겠십니다"라고 일갈했다.

A교수는 "지방의 여론형성 과정이 예전보다 후퇴했다"며 "정치권과 언론이 지역 경합주의 관점에서 개발사업을 조명하니 마치 이걸 안 하면 우리 지역이 도태되거나 차별받는다는 인상을 시민들에 심어 준다"고 꼬집었다. 그는 신공항 사업을 '민주주의의 자해행위'라고 표현하며 "선거가 있는 한 신공항 사업 중단은 절대 불가능"이라고 못박았다. 오후 5시. 가덕도를 빠져나와 시내로 향했다. 퇴근시간이 겹친 탓인지 강서구 르노코리아 공장 주변 4차선 대로가 꽉 막혔다. A교수는 "신공항 들어서면 더욱 심해질 교통체증"이라며 "차로 이동한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조 들어도 지역 발전효과 23조원?..."턴키 수주 대기업이 따낼 것"

가덕도 신공항을 두고 정부와 부산시가 유독 강조하는 부분이 지역경제 발전이다. 국토교통부는 신공항 건설이 부울경에 미칠 생산∙부가가치 유발효과를 23조원으로 추정했다. 신공항 사업비(13조4900억원)에 부지조성 사업비 7조원을 합한 금액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러한 추계치는 지역 민심을 사로잡는 데 유효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공항으로 인한 경제효과는 고스란히 지역 밖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당장 신공항 부지조성 공사 진행방식이 턴키(설계·시공 일괄 진행) 발주로 결정됐는데 이렇게 되면 덩치 큰 대기업들이 하도급 업체와 미리 손을 잡고 공사를 전부 독점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공사 일부는 지역 업체가 수행한다 해도 대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핵심 공사는 결사체를 구축한 업체에게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미 대기업 중심으로 대관 로비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시민들의 수요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권오혁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는 "김해공항 확장안이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대체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김해공항은 우선 접근성이 우수하다고 인정을 받은 곳이다. 소음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공항이 그린벨트에 위치해 있고 낙동강이 양쪽으로 흘러서 객관적으로는 피해가 덜한 수준이다. 인근 산악으로 인한 안전성 문제는 V자형 활주로를 추가 건설하는 방법으로 해결 가능하다. 동시에 대형 여객기의 이착륙이 가능해져 국제선 유치에도 유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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