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요금제 탓에 매출 급감?" 가장 쓸데없는 게 이통사 걱정

김다린 기자 2024. 4. 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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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중간요금제 가입자 대폭 늘어
정부 “5300억원 통신비 절감”
미디어 “이통사 매출 그만큼 감소”
이통사 매출 정말 줄어들까
정부, 미디어 모두 오판 가능성
중간요금제 확산 지나치게 낙관

# "1400만명 이상 국민에게 연간 5300억원 수준의 가계통신비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정부가 밀어붙여 추진한 '중간요금제'에 가입한 5G 소비자의 숫자가 600만명을 넘어서자, 정부가 꺼낸 호언장담이다. 지금 추세대로 중간요금제에 가입하는 소비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면 연 5000억원이 넘는 가계통신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 그러자 몇몇 미디어는 '이통3사 연간 매출이 5300억원 빠질 것'이라면서 느닷없이 통신사 걱정을 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정부의 공언과 미디어의 우려는 맞아떨어질까. 그들의 생각대로 중간요금제에 가입하는 소비자는 갈수록 늘어날까. 더스쿠프가 이 질문에 '반론'을 제시했다.

중간요금제가 앞으로도 확산할지는 미지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책의 성과를 자축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3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 추진 현황 및 향후 계획'을 통해서다. 과기부에 따르면, 신설 중저가 요금제를 선택한 이용자는 올 2월 기준 621만명을 넘어섰다. 비중은 5G 가입자의 19.0% 수준이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금과 같은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 증가 속도를 유지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총 1400만명 이상의 국민이 연간 5300억원 수준의 통신비 절감 효과를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미디어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통3사 매출이 연간 5300억원 감소할 것"이란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가계통신비가 줄면 이통3사 매출이 감소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국민들이 통신비를 이통3사에 납부하고 있어서다.

다만, 정부의 예상대로 가계통신비가 5300억원 줄고, 미디어가 전망한 것처럼 이통사 매출이 그만큼 감소할지는 의문이다. 정부와 미디어의 전제가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인데, 국내 통신시장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조건을 달성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 반론 중간요금제 지속 가능할까 = 중저가 요금제가 확산하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요금제가 국민들의 미래 모바일 생활 패턴에 적합하지 않아서다. 먼저 중간요금제의 면면을 살펴보자. 이통3사는 2022년 8월 중간요금제를 처음 도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중간요금제 출시'를 내걸었는데, 이통3사가 응답한 결과였다.

중간요금제를 도입하기 전 5G 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은 10GB 미만이거나 100GB 이상으로 극과 극이었다. 가격도 그랬다. 이 체계에 '중간지대'를 만들자는 게 윤 대통령 공약의 골자였다. 이통3사는 중간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24~31GB 구간의 5만9000 ~6만1000원짜리 요금제를 각각 출시했다.

정부 정책으로 국내 이동통신 유통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정작 시장이 호응하지 않았다. 단품 요금제인 데다, 31GB 이상 요금제가 없는 등 공백이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이듬해 추가 중간요금제의 출시를 압박했고, 이통3사는 데이터 제공량을 더 세분화했다. 이것이 최근 30~100GB 사이의 추가 중간요금제들이 론칭된 배경이다.

문제는 추가 중간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이 기존 고가 요금제보다 여전히 적은데, 국민들의 데이터 사용량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1월 기준 5G 스마트폰의 데이터 사용량은 87만2474TB. 1년 전(74만6281TB) 대비 16.9% 늘었다. 같은 기간 가입자 1명당 사용량 역시 소폭(27.40GB→27.92GB)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증가했다.

이중에서 고가인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를 제외하면 변화는 더 극적이다. '일반 요금제' 가입자 1명당 트래픽은 지난해 말 18.58GB를 기록했는데, 1년 전(12.90GB)과 비교해 44.0%나 증가했다. 고가의 무제한 요금제가 아닌 일반 요금제에 가입한 국민의 데이터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국민들의 데이터 소비량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데이터 소비량은 이동통신속도에 따라 비례해 증가하는데, 5G 네트워크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3사 평균 전송속도(다운로드 기준)는 939.14Mbps로 전년 대비 4.8% 빨라졌다. 5G 상용화 초기엔 656.56Mbps에 불과했다.

이런 추세라면 중간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이 국민들의 니즈를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AI 시대로 가면서 모바일에서도 더 많은 트래픽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데이터 제공량이 적은 중간요금제는 한계가 있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제공 데이터를 다 쓰면 발생하는 '속도 제한'도 걸림돌이다. 상위 요금제의 속도 제한은 5Mbps(초당 메가비트)인데, 신설 중간요금제는 대부분 1Mbps다. 1Mbps로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를 쾌적하게 누리기 어렵다. LTE는커녕 3G에 가까운 속도다.

이종호 장관은

올해 들어 이통3사가 출시를 완료하면 3만원대 저가 요금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데이터 소진 후 제한속도가 400Kbps(초당 킬로비트)다. 모바일 메신저조차 편하게 쓸 수 없는 환경이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5G가 전국망 커버리지를 갖추면 데이터 전송속도가 더 빨라질 텐데 중간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이 과연 이를 충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상위 요금제로 갈아탈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 반론 정책 엇박자 = 중간 요금제의 지속적인 확장을 막는 요인은 또 있다. 공교롭게도 정부 정책이다. 사실 윤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은 '중간요금제 신설'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폐지를 공언한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혁신도 가계통신비 인하정책 중 하나다. 단통법의 골자는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보조금 혜택을 주자는 건데, 이 법을 폐지하면 이통사간 지원금 경쟁이 촉발해 가계 통신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게 윤 정부의 계산이다.

문제는 이통사의 단말기 지원금이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고가 요금제에 몰린다는 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게 전환지원금 책정이다. 단통법은 국회 입법 사항으로 당장 폐지할 수 없다. 그래서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전환지원금'을 신설했다. 번호이동을 통해 사업자를 옮길 때 발생하는 위약금이나 단말기 교체비용 등을 최대 50만원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정비한 거다.

그런데 전환지원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고가 단말기' '고가 요금제'가 필수다. 가령, SK텔레콤은 전환지원금을 최대 32만원으로 책정했는데, 갤럭시S23 시리즈와 갤럭시폴드5를 선택하고, 월 12만5000원짜리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KT 역시 갤럭시S22, 갤럭시Z 폴드4ㆍ폴드5ㆍ플립4를 선택해야 하고, 월 13만원 요금제에 가입해야 최대 33만원의 전환지원금을 준다. 최대 30만원의 전환지원금을 책정한 LG유플러스도 마찬가지다. 이를 제대로 받으려면 갤럭시S23 시리즈 6개 기종과 갤럭시Z 폴더5 2개 기종 중 하나를 선택하고 월 9만5000원짜리 이상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단말기 지원금도 마찬가지다. 9만원을 웃도는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해야 50만원 안팎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국민이 선택하길 원하는 중간요금제를 선택하면 지원금 규모가 커 봐야 30만원 안팎이다.

애초에 지원금의 취지 자체가 그렇다. 이통사가 단말기 가격을 일부 내주는 대신 고가요금제를 일정 기간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거다. 정부가 공언한 대로 단통법을 폐지해 이통3사간 '지원금 경쟁'을 벌일 수 있는 멍석이 깔리더라도 고가지원금을 미끼로 한 고가요금제 가입자만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은 "단통법 폐지 검토와 전환지원금 신설은 이통사 간 이용자를 뺏어오는 단말기 지원금 경쟁을 일으키려는 게 목적"이라면서 "하지만 지원금 경쟁은 중간요금제로의 이동을 방해할 게 뻔하다는 점에서 정책적인 오류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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