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기숙사생에게 아침 운동 의무 참가, 인권침해일까 아닐까

김세훈 기자 2024. 4. 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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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 게티이미지



고등학교 기숙사생들에게 아침 운동을 의무적으로 요구한 게 인권침해일까, 아닐까.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경북 소재 기숙형 고등학교에 “학생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자기결정권이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도록 기숙사생에 대한 아침운동 강제를 중단하고 기숙사 운영규정 중 아침운동에 관한 부분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 보도자료 △인권위 익명 결정문 △몇몇 고교 체육교사들의 의견을 묶어 사안을 정리했다. 해당 학교는 취재 요청을 거부했다. 아침 운동 상황은 익명 결정문에 나온 내용으로 갈음한다.

Q. 아침 운동은 어떻게 진행됐나.

A. 학교는 기숙학교다. 기숙사 생활 필수과정인 아침 점호와 동시에 아침 운동을 실시해왔다. 25여 년 동안 이어져 온 기존의 40분 ‘구보’ 형태를 간소화해 올해부터 20분 동안 학교 근처를 ‘산책’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Q. 불참해도 되나.

A. 6시40분 기상해 점호(인원 점검, 밤새 이상 유무 판단, 건강 상태 및 현황 파악)를 실시하고 동시에 운동 가능 여부를 파악한다. 다리를 다쳐 이동이 불편한 학생을 제외하고 모든 학생들은 점호에 참여해야한다. 불참 사유가 분명한 학생 명단은 전날 담임교사를 통해 사감에게 전달된다. 새벽에 연고가 생긴 학생들도 사감에 의해 파악되며 그들은 벌점 없이 운동에 불참할 수 있다. 특별한 사유 없이 점호에 불참하는 학생은 벌점 3을 받는다.

해당 고교가 인권위에 제출한 벌점표



Q. 벌점은 왜 주나.

A. 학교는 “기숙사 규정을 무시한 채 지속적으로 잠을 자면 식사, 등교 등 모든 일정이 흐트러진다”며 “이와 관련해 꾸준히 지도 및 상담을 진행했으나 개선의 여지가 없는 학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학교는 “이러한 생각을 바로잡고 학교 산책 및 운동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벌점 제도를 부득이하게 취했다”고 설명했다. 학교는 1단계부터 5단계까지, 학년별 누계벌점표(2023학년도)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Q. 아침 운동이 무리하게 진행된 적이 있나.

A. 인권위 익명 결정문에 따르면, 비·눈·바람 등 날씨가 불순하거나 황사 및 미세먼지가 심한 경우, 방학, 혹서기(7월, 8월) 및 혹한기(11월, 12월), 시험이 있는 날, 학교 정규 시험 시작일 2주 전에는 아침 운동을 하지 않는다. 학교는 “아침 산책은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운영하며 실제 운영 일수는 매우 적다”고 밝혔다.

Q. 기숙형 학교로서 관리 규정이 있었을 것 같다.

A. 학교는 기숙사 운영 규정 및 생활관 규정, 생활관 일정표 등을 인권위에 제출했다. 300명이 넘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생활관 일정표를 보면 평일은 오전 6시40분 기상해 50분부터 7시20분 사이 단체 점호 및 아침 운동을 한다. 취침 시간은 1학년은 자정, 2~3학년은 자정에서 새벽 한시 사이다. 자율 공부 후 새벽 1시10분 소등한다. 토요일, 일요일은 산책 및 운동 시간이 없다.

Q. 일반적으로 기숙사형 학교에는 기숙사 운영 규정, 기숙사 입실 서약서 등이 있다.

A. 많은 학생들이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규정 없이는 관리가 힘들다. 모 고교 체육교사는 “나도 기숙형 학교에 근무했다”며 “학교는 입학에 맞춰 기숙사 생활 규정을 설명했고 학생들은 기숙사 입실 서약서를 제출한다”고 말했다. 교사는 “기숙사 운영 지침과 생활 기준 등은 교육계획서에도 명기돼 있다”며 “기숙사 운영은 매년 컨설팅을 받고 보완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교사는 “입학 전 해당 고교가 아침운동을 필수로 진행한다는 전통을 밝혔다면 인권위에 제소할 만큼 아침 운동이 싫은 학생들은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입학한 이후에도 충분한 설명과 동기부여가 있었다면 인권위 진정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Q. 소수의 의견도 묵살해서는 안된다.

A. 물론이다. 민원을 제기한 학생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다. 부득이한 이유로 운동에 불참했는지, 고의로 불참했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소수의 의견도 학교는 전체 규정을 깨지 않은 선에서 조정, 조율할 필요는 있다.

Q. 학교 입장은 어떤가.

A. 인권위 권고가 내려지기 전, 학교는 “졸업 후 심신이 건전하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자 사회인으로 육성하고자 기숙학교에서 진행하는 바람직한 학교의 전통 내지 관습마저 간섭을 받고 운영이 제한된다면 학교 교육의 자율성을 상당히 위축시킬 수 있다고 생각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Q. 다른 학교 체육 교사들의 생각은 어떤가.

A. 학교가 학부모, 학생들에게 교육 과정, 기숙사 생활 지침 등을 명확하게 전달했고 부모, 학생들도 이를 인지하고 동의했다면 아침 운동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다. 또 현실적으로 기숙사에서 지내는 많은 학생들을 관리하려면, 기숙사 운영 지침, 벌점 제도 등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다. 반대 의견도 있다. 한 교사는 “강제적으로 활동을 강요하고 벌점을 주는 건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며 “아침 걷기 활동이 교육적으로 효과가 크고 활동의 강도가 높지 않다면, 활동을 해야하는 이유 등을 충분히 교육한 뒤 시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Q. 어쨌든 인권위는 인권침해 결정을 내렸다.

A. 단체 생활을 하려면 규정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사고를 예방하고 과도한 갈등 요소도 차단할 수 있다. 기숙사, 생활관 규정은 학생, 부모가 인지하고 입학했다. 그걸 따르지 않은 소수의 의견을 수용해 인권침해 결정을 내린 것은 과도하게 학교 자율성과 교육 철학을 침해한 소지가 있다. 반대 의견도 있다. 어떤 교사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학생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며 “전통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희망자가 아닌 모든 학생들의 참여를 강제하고 불참학생에게 벌점까지 주는 것은 폭력”이라고 말했다.

Q. 아침 운동이 아니라 아침 영어, 아침 독서에 대한 민원이 제기됐다면 어땠을까.

A. 애매한 가정이다. 아마도 일반적인 학습이라면 민원을 제기하는 학생, 부모가 거의 없었을 것 같다. 한 교사는 “신체 활동은 부모 동의서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독서, 영어 등에 대한 활동은 동의서를 받지 않는다”며 “신체적 차이만 인정할 뿐 학습의 차이는 인정하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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