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석 가려지는 밸류업 정책 수혜주

한겨레 2024. 4. 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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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정부의 주식 부양 정책에 힘입어 대표적 저평가주로 꼽혔던 현대차와 기아차가 주식 상승을 이끌고 있다. 서울의 한 현대차 대리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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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순자산비율(PBR·Price/Book Ratio)이란 용어가 최근 주식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PBR은 주가와 장부 간의 비율을 뜻한다. 회사가 매년 성장하면 PBR은 1을 넘는 것이 정상이다. 회사가 가진 자산의 장부가치보다 시가총액이 더 높지 않다면 지금 회사를 청산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4년 3월 기준으로 코스피지수의 PBR은 0.96 수준이다. 논리를 다소 비약하자면, 코스피에 속한 전체 회사들의 사업을 모두 청산해 현금으로 분배하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이다.

코스피의 낮은 PBR은 만성적 현상이었다. 그런데 2024년 들어 한국 증시는 이른바 ‘저(低)PBR’ 관련 주식이 상승을 이끌고 있다. 저PBR 주에는 자동차, 금융 등 오랫동안 상승에서 소외된 종목이 주로 포진돼 있다. 반도체, 2차전지 주식의 상승을 보며 손가락만 빨던 저PBR 주식 보유자들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행복을 느낄 만하다.

상승 원인의 바탕에는 증시 부양에 나선 정부 정책이 한몫했다. 대통령이 직접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고 하고, 금융위원회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또 용두사미가 될까 두렵다. 저PBR 해소 정책이 단순 ‘테마’가 아닌 전체 증시의 지속적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까.

코스피지수는 별 변화 없어

정책 발표 이후 주식 흐름을 살펴보면, 일부 섹터에만 정책의 온기가 닿은 것으로 보인다. 정책 발표 뒤 불과 두 달 만에 옥석이 가려지는 느낌이다. 대세 상승을 이끈 것은 금융과 자동차다. 두 섹터의 특징은 정부 정책의 효과를 가장 크게 누릴 것으로 기대되는 업종이라는 점이다.

먼저 금융을 살펴보자. 금융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다. 그간 정부는 은행업 등에 배당 축소, 자본 확충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은행이 국가경제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은 있다. 그러나 정부 규제는 금융업 주가에는 치명적이다. 주주에게 돌아가야 할 배당이 각종 규제를 이유로 은행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금융주 시가총액 1위인 KB금융지주의 주가는 10년간 제자리걸음이다. 그러나 ‘규제 산업’이라는 말을 뒤집어보면 규제 완화로 주주가치를 쉽게 높일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벌어들인 이익으로 충분한 배당을 할 수 있다면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밸류업 정책 발표 이후 금융주의 주가가 기대감 속에 즉각 반응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

둘째는 자동차 섹터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대표하는 섹터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매 분기 영업이익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주주에게 줄 돈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동안 주가가 눌려 있었다. 자동차 섹터의 상승은 정부의 정책 인센티브가 이들의 현금 곳간을 더 열게 하리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과 자동차 이외의 건설, 통신, 철강 섹터는 정책 발표 이후에도 지지부진하다. 먼저 건설주다. 모두가 알다시피 건설시장은 최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경색, 고금리 등으로 미래 성장이 불확실하다. 철강주도 비슷하다. 철강주는 주로 중국 경기에 많이 연동되는데, 중국 경기가 영 지지부진하다. 통신주 회사들은 이미 배당을 많이 하고 있다. 통신주 ‘대장’인 SK텔레콤의 배당성향은 70%에 달해 이번 정책 발표로 추가적인 주주환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조금은 아쉽다. 정부 정책이 저PBR 특정 섹터에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우리 증시의 대장인 반도체는 제자리걸음이었고, 코스피지수도 별 변화가 없다.

이번 정책의 효과가 저PBR 주식에만 집중돼서는 안 된다. 정부의 정책 목표는 한국 증시의 한 단계 성장이 돼야 한다. 흥미롭지만 슬픈 통계가 있다. 최근 10년간 미국의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약 280% 상승했다. 이에 비해 코스피지수는 최근 10년간 36%가량 성장했을 뿐이다. 연환산하면 은행 이자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시가총액을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0년 전 코스피의 시가총액은 1186조원이었다. 지금은 2160조원 수준이다. 약 86% 오른 셈이다. 코스피지수가 시가총액 증가만큼 올랐다면 매년 8%를 주는 꽤 괜찮은 투자였을 것이다.

지수와 시가총액 사이의 큰 괴리는 어디서 발생했을까? 그 원인 중 하나는 기업들의 신규상장이라고 본다. 엘지(LG)에너지솔루션의 예를 들어보자.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 물적분할을 통해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를 신규상장했다. 상장 당일 LG에너지솔루션 시가총액 100조원이 우리 시가총액에 더해졌다. 그러나 그날 코스피지수는 3.5% 하락했다. 이유가 있다. 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신규상장 당일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가 지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쪼개기 상장’ 논의 필요

그렇다면 3.5% 하락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날 기관과 개인들이 LG에너지솔루션을 매수하기 위해 다른 종목들을 매도하면서 큰 하락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다음날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가 10% 이상 하락하면서 지수 상승을 제한했다. 결국 시가총액은 100조원이 증가했으나 지수는 하락한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은 여러 곳에 피해를 줬다. 먼저 LG화학 기존 주주들이다. 졸지에 핵심 사업부를 내주고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맞게 됐다. 2가 넘던 PBR도 반토막이 났다. 코스피지수 하락도 가져왔다. 승자는 LG 지주사뿐이다.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시가총액을 중복해 향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자회사 상장도 유사하다. 카카오가 상장시킨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는 기업공개(IPO) 기대감에 상장일에 꼭지를 찍고 상장 이후 하락을 계속했다. 신규 상장으로 시가총액은 증가했으나 지수가 하락하는 악영향을 준 것이다. 이러한 ‘쪼개기 상장’도 향후 발표할 정책에서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강조하자면, 이번 정책의 발전 방향은 우리 증시 전체의 체급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잠을 설치며 미국에 투자하는 개미투자자와 외국인투자자가 한국 증시에 매력을 느낄 날이 오길 바란다.

찬호 공인회계사 Sodoh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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