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꽃 야구·공격 야구… 선수들 기 살려 화끈하게 이겨야죠”[M 인터뷰]

정세영 기자 2024. 4. 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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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프로야구 KIA 사령탑 취임 한달… 이범호 감독
최다 만루홈런 기록 보유자이자
KBO 첫 80년대생 최연소 감독
시즌초반 상위권, 우승후보 꼽혀
“주전이든 후보든 즐겁게 뛰도록”
친형처럼 살피며 질책보단 칭찬
감독데뷔 첫승땐 물세례 받기도
팀내 “2017년 통합우승때 느낌”
롤모델은 김인식·김기태 前감독
“선수들 마음 얻고 똘똘 뭉쳐야”
이범호 KIA 감독이 지난달 27일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롯데와의 KBO리그를 앞두고 경기 전 그라운드에서 활짝 웃고 있다. KIA 제공

광주 =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2024 신한은행 쏠(SOL)뱅크 KBO리그에서 KIA의 출발이 좋다. 지난 4일 기준, KIA는 7승 2패로 2위에 올라 있다. 선두 한화와는 불과 0.5경기 차. KIA는 투·타에서 모두 짜임새 있는 전력을 갖췄다. 두터운 야수진을 앞세운 KIA는 팀 타율 1위(0.303)에 올라 있으며, 탄탄한 불펜진의 힘이 돋보이는 마운드도 팀 평균자책점 역시 1위(2.85)를 유지 중이다. 주변에선 ‘약점이 없는 전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연스레 올해 KIA의 지휘봉을 잡은 이범호(43) 감독에게 시선이 향한다. KIA는 지난 2월 후원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김종국 전 감독을 경질했고, ‘차기 감독감’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 감독을 1군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KIA의 상징 동물은 백수(百獸)의 왕으로 불리는 호랑이다. 그런데 이 감독의 이름엔 ‘범’과 ‘호’가 있어서 타이거즈를 팀 명으로 쓰는 KIA에 무척 어울린다는 평가. 범은 우리말로 호랑이, 호는 범 호(虎)와 음이 같다.

하지만 사실 이 감독의 이름은 호랑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자로 돛 범(帆)과 넓을 호(浩)를 쓰기 때문. 대신 이 감독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념, 탁월한 승부 감각, 절묘한 선수 기용, 영민한 판단력 등 호랑이의 특질을 빼다 박았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KBO리그를 주름잡은 강타자였다. 대구고를 졸업하고 2000년 한화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해 KBO리그 통산 329개의 홈런을 남겼다. 4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KBO리그에서 이 감독보다 홈런을 더 많이 친 선수는 이승엽, 최정(SSG), 이대호, 박병호(KT), 양준혁, 최형우(KIA), 장종훈, 이호준 등 단 8명뿐이다. 특히 만루에서 무척 강했다. 현역 시절 17개의 만루 홈런을 날렸는데, 이는 프로야구 통산 최다 만루 홈런 기록이다.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선 두산의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때려내 KIA에 우승을 안겼다.

이 감독은 몸 관리도 잘해 30대 중반까지 거의 매년 100경기 이상 소화했다. 2019년 현역 은퇴 후엔 차곡차곡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은퇴 후 곧바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KIA 구단 스카우트(2020년)를 거쳐 2군 감독(2021년), 1군 타격 코치(2022∼2023년) 등을 맡았다.

이 감독을 지난달 28일 KIA의 홈구장인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만났다. 당시 KIA는 개막 후 3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이 감독은 “세 경기 모두 사연이 있다. 첫 경기는 역전승, 두 번째는 완벽한 마운드, 세 번째는 화끈한 공격력을 앞세운 승리였다. 개막 후 투타 밸런스가 상당히 좋은 것 같아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KIA 안팎에선 젊은 감독이 가져올 신선하고 역동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분위기. 이 감독은 지난달 8일 취임식에서 추구하고 싶은 야구로 ‘웃음꽃 피우는 야구’를 꼽았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기분 좋게 야구장으로 출근했을 때 그걸 더 올려줄 수 있는 게 감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즐거움을 배가시켜줄 수 있는 게 웃음이다. 주전이든 후보든, 잘하는 선수든 못하는 선수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면 사기는 저절로 높아진다. 그게 바로 웃음꽃이 피는 야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 대신 친형처럼 선수단을 보살피고 있다. 감독 이범호의 사전에 권위란 없다. 질책보다 칭찬, 채찍보다 당근을 앞세운다. 이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이지만 누구보다 무명의 설움을 잘 알고 있다. 야구를 못한다고 지적하는 건 기를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게 그의 지도 신념이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일체의 권위를 내던졌다. 지난달 23일 광주 키움과의 개막전이 좋은 예다. 당시 개막전에서 승리한 뒤 KIA 선수들은 사령탑의 첫 승을 기념해 ‘물 세리머니’를 준비했고, 이 감독은 시원한 물세례를 받았다. 감독과 선수들의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KIA 감독실 문도 항상 열려 있다. 선수들이 감독실을 오가다 보면 이 감독과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고, 친분은 두터워진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는 게 좋다. 프로야구에서 감독이 첫 승을 했다고 물통을 뒤집어씌우는 게 그간 없었다. 선수들이 축하해 주겠다는 의지가 컸던 것 같다”고 미소 지은 뒤 “우리 팀이 어떤 분위기라는 것을 다른 팀에 전파한 것도 큰 효과다. 100승 때도, 200승 때도 물 세리머니를 받고 싶다”고 설명했다.

1981년생인 이 감독은 10개 구단 사령탑 중 가장 어리다. 역대 프로야구로 범위를 넓혀도 1군 정식 감독으론 최연소다. 올해 KIA 선수단 최고참인 1983년생 외야수 최형우와는 불과 두 살 차이. KIA의 팀 내 코칭스태프에서도 이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 코치가 진갑용(50) 수석코치부터 홍세완(46) 타격코치, 이헌곤 주루코치, 조재영(이상 44) 작전코치 등 수두룩하다. 이를 두고 초·중·고부터 형성된 선후배 간 위계질서 문화를 중시하는 야구계에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겠느냐는 의문도 나왔다. 그러나 이 감독은 “오히려 편하다”고 대답했다. 그는 “초보 감독인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연배가 있으신 코치님들께서 파악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현재 코치진은 오랫동안 봐 온 사이다. 여러 가지를 서로서로 공유할 수 있어 큰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이 감독의 가장 큰 무기는 KIA 선수단의 장단점을 훤히 꿰고 있다는 점. 이 감독은 장점을 더욱 발전시키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KIA의 전력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이 감독이 선수와 코치였을 때 동고동락했던 최형우, 김선빈 등 고참들은 아낌없이 힘을 보태고 있다. KIA 프런트 관계자는 “김기태 감독으로 모두가 똘똘 뭉쳐 통합우승을 차지한 2017년 당시 분위기가 물씬 난다”고 귀띔했다.

이 감독은 자신의 롤모델로 김인식 전 야구대표팀 감독과 김기태 전 KIA 감독을 꼽는다. 이 감독은 “현역 선수로 두 감독님과 함께할 때, 주변에서 ‘우리 감독님을 더 오래 지휘하게 해 드려야지’라고 말하는 동료들이 많았다. 저는 이게 감독으로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이 아닐까 한다. 우승을 시키는 감독이 좋은 사령탑일 수 있지만, 선수들의 마음을 얻고 똘똘 뭉쳐 성과를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도 감독으로서 그런 사령탑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이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는 ‘공격 야구’다. 그는 “‘어떤 야구를 하겠다’는 틀을 정해 놓지는 않았다. 다만 과감한 야구를 하고 싶다. 그때 과감하게 할 것이라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우리 불펜 투수들이 강하기 때문에 2∼3점의 리드를 충분히 지켜낼 수 있는 전력이다. 공격적으로 화끈하게 밀어붙여 경기 초반 득점을 내면 우리가 승리할 확률이 높다. 야수들의 뎁스가 좋고, 기량도 뛰어나기에 공격 야구가 우리 팀 컬러에 맞다”고 말했다.

KIA는 올해 전문가들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는다. 주변의 ‘고평가’에 부담을 가질 법하다. 그러나 이 감독은 “부담은 없다. 주변에서 우리 팀을 다 3강 이상의 전력으로 보고,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게 선수단에 ‘우리가 제대로 플레이만 하면 상위권에서 놀겠네’라는 믿음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주변의 좋은 평가가 부담보다는 좀 더 시너지가 되는 부분도 많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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