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산행 진해 장복산] 진해에는 벚꽃터널 분홍색 산이 있다

신준범 2024. 4. 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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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피기 직전의 장복산 산행과 진해드림로드 걷기 12km
장복산 5부 능선을 따라 이어진 진해드림로드를 걷는 백장미씨. 장복산 조각공원을 기점으로 산행과 걷기길을 결합한 원점회귀 코스를 걸었다.

진해 없는 벚꽃, 아니 벚꽃 없는 진해에 갔다. 허공이 제철이었다. 거리는 허허로움으로 가득했다. 와락 부는 바람에 꽃비가 아닌 냉기만 가득했으나, 느릿느릿 봄이 오고 있었다. 착각처럼 오후 2시면 아지랑이가 새싹처럼 돋아 표정 없는 경상도 사내의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있었다.

장복산(584m)을 빠져나오자 진해였다. 장복터널 어둠이 걷히자 벚나무 행진이었다. 다른 세상 같았다. 햇살의 빛깔이 달라져 있었다. 100년 전에도 있었을 것만 같은 거대한 벚나무들이 유적처럼 뻗어 있었다. 열흘 뒤 군항제가 열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앙상했으나, 공기가 미묘하게 달랐다.

벚꽃 피기 직전의 기대감. 침묵의 나무는 속으로 차곡차곡 축포를 준비하고, 차분한 진해 사람들은 그날을 기다리며 힘을 비축하는, 어떤 분위기가 있었다. 아직 회색이지만 진해는 미묘한 기대감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조각공원 치유센터에서 트로트 가수 백장미씨와 남편이자 매니저인 이태희씨를 만났다. 가수와 리포터로 활동하는 백씨는 2019년 100명산을 완등했으며, 캠핑 유튜브(백솔라)를 운영하는 아웃도어 마니아다.

벚꽃으로 유명한 안민고개길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는 백장미씨. 여성 트로트 가수로는 최초로 2019년 100명산을 완등했다

삼밀사 방향으로 들자, 중세 침묵 수도원으로 변하며 세상이 고요해졌다. 로마네스크 양식 기둥마냥 곧게 뻗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압도적 숲향기로 사람의 채취를 지우고 있었다. 가만히 머무르기만 해도 폐가 초록으로 변할 것 같았다.

근육이 한껏 단단해지는 급경사를 오르자 삼밀사 입구이자, 진해드림로드라 불리는 걷기길 임도다.

6km로 산행이 짧아 안민고개에서 걷기길을 따라 삼밀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12km 코스를 잡았다. 산행 시작과 동시에 성벽을 직등으로 올라야 해서 짧다고 만만히 볼 수 없다. 진해는 능선이 성벽처럼 에워싸고 있어, 시내에서 능선을 보면 내륙과 단절된 요새임을 실감할 수 있다.

삼밀사 부근의 편백나무 숲. 장복산은 조각공원부터 덕주봉에 이르기까지 진해 방면 사면에 넓은 편백나무 숲이 있다.

계단이 끝없이 밀려온다. 마흔 개쯤 헤아리다 포기하고, 호흡을 가라앉히는 데 집중한다. 꽃이 없는 장복산은 사람이 없다. 짙게 깔린 침묵이 모처럼 나타난 사람들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중간에 산행을 포기하는 이가 많은 걸까. 오를수록 산길은 가파르고 희미하다.

호흡을 가다듬고 혹시 산길을 잘못 든 건 아닌지,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한다. 조각공원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공원마냥 길이 잘 나있었으나, 어디로 갈지 고민해야 할 정도로 산길이 희미하다. 오랜만의 산행이라는 백장미씨가 "쉬운 산인줄 알았다"며 보통이 아니라며 숨가빠한다. 500m대 산이라 쉽게 봤음을 인정한다. 등고선이 워낙 촘촘해 깔딱고개일 줄은 알았지만, 길이 희미할 줄은 몰랐다. 비로소 전력으로 산을 오른다. 감각을 집중해 어디가 길인지, 만나는 길인지 다른 길인지, 길이 아닌지 판별한다.

덕주봉 부근 암릉구간을 우회하는 데크길. 능선은 등산로 정비가 잘되어 있어 초보자도 어렵지 않다.

느닷없이 찾아온 저돌적인 러브레터

장복산 정상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길찾기에 감각을 집중하는 사이 기습처럼 다가왔다. 바위를 우회해서 오르는 이 길이 바른 길인지 몰두하고 있을 때, 시야가 뻥 트이며 하늘과 닿는다.

정글 같은 숲을 나와 처음 만난 경치가 사방으로 트인 정상 바위라니. 장복산은 진해의 봄처럼 감당할 수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와락 안겨오는 파노라마 경치, 예상 못한 저돌적인 러브레터에 땀에 젖은 축축한 몸이 단번에 개운해진다.

등산객 몇 사람쯤 방석을 깔고 경치를 안주 삼아 탁배기(막걸리 경상도 방언) 나눌 법한데, 아무도 없이 정상 표지석만 덜렁 서서, "오래 기다렸다"며 반긴다. 웅산으로 이어진 덕스런 산줄기와 분화구처럼 가라앉은 진해시내, 해안선에 갇힌 좁은 바다며, 공장으로 가득한 창원 성산구 일대며 예상을 깨는 독특한 풍경이 둘러싸고 있다.

삼밀사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산길. 1시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가파르고 산길이 희미해 주의해야 한다.

시야가 깨끗했다면 좋았겠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도심의 산이지만, 정상 경치만으로 명산의 반열에 올려도 좋을 정도로 다채로운 경치를 품은 바위 봉우리다. 진해 최고봉인 웅산(710m)이 훨씬 높지만 암봉이 가진 미학적인 면은 장복산이 한수 위다.

능선부터 산행이 감미롭다. 공원처럼 잘 정비된 산길로 시야가 뻥뻥 트인다. 팔각정을 지나며 벚나무의 향연이다. 능선에 벚나무가 집단으로 자생하는 것은 드문데 지자체에서 심은 듯하다. 열흘 뒤 여좌천에 꽃이 피면, 일주일 뒤 장복산 벚꽃도 필 것이다. 흐드러지게 피는 꽃의 양과 화려함은 진해시내에 못미치겠지만,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는 아스팔트길의 꽃잎과 흙길 능선을 걸으며 맞는 꽃향기는 비교해서 무엇하랴.

벚나무가 늘어선 여유로운 능선길은, 국내 산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호사다. 꽃샘추위 광풍 부는 날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장복산 능선에서 실컷 꽃에 얻어맞으리라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다.

장복산 정상 부근의 암릉 구간. 사방으로 열린 바위 위라 경치가 탁월하다. 위험한 곳은 계단이 있어 어렵지 않다.

송골송골 맺히는 감정의 찌꺼기는 슬그머니 꽃에 실어 보내고, 산이 일어서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산이 신록으로 반짝반짝 잎을 내며 일어서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등산할 만큼 했잖아, 이제 산에 안 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편백나무가 바닷바람을 막아줘 아늑하다. 모처럼 온 사람이 반가웠는지 산불감시초소 지기는 이어지는 질문에 친절히 답한다. 오래 전 이곳에 산불이 났고, 그 자리에 편백나무를 심었단다. 장복산長福山 이름에는 여러 설이 있다. 창원에서는 "산이 벽처럼 솟아 있어 장벽산이라 했다"고 전하며, 진해에서는 "옛날에 장백이라는 사람이 이 산에 살았다"하여 이름이 유래한다.

덕주봉 정상부의 바위지대. 진해 방면 사면을 편백나무가 빽빽이 메웠다.

진해 기인 혹은 도인 김덕주

덕주봉도 사람 이름에서 유래한다. 100여 년 전 장복산 아래 경화동에 '김덕주'라는 사람이 살았다. 일제강점기의 실존 인물인 그는 기인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지금의 덕주봉 정상에 살면서 확인되지 않은 기행을 벌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괴력으로 바위를 들어 올려 능선에 집을 짓고 살았다거나, 축지법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능력이 있다거나, 날씨를 예측하거나 미래를 예언했다는 풍문이 전한다. 그의 기행은 사실인지 확인된바 없으나 장복산 덕주봉에 살았고, 그로인해 봉우리 이름이 유래한다.

훤칠한 바위봉우리의 등장이다. 멀리서도 덕주봉의 존재감이 강렬하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본 덕주봉은 도인이 집을 삼을 법한 멋스러움이 있다. 감탄에 인색한 사내도 소리를 뱉고 마는 경치의 연속. 촘촘히 건물로 가득한 진해시내와 남해바다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짜릿한 각도가 산행 내내 따라온다. 며칠 후면 진해 시내가 분홍물결로 변하겠지만, 지금의 회색 진해도 충분히 볼 만하다. 이토록 경치 좋은 능선에서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는 고요가 있으니 말이다.

덕주봉 전망데크 부근에서 본 진해시내와 진해 앞바다.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트인 경치가 덕주봉 일대를 걷는 내내 따라온다.

덕주봉 가는 길 자체가 걸작이다. 산행의 즐거움으로 뽑은 100명산을 다시 정한다면, 장복산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덕주봉 전망데크 옆에 사람들이 오른 바윗길 흔적이 선명하다. 덕주봉 정상석이 있는 바위 꼭대기는 좁지만 경치는 단단한 개운함이 있었다.

안민고개로 내려서는 길, 임도처럼 편한 산길을 따라 앙상한 벚나무가 손 흔든다. 생태통로가 있는 안민고개에서 찻길과 만난다. 후반전, 진해드림로드를 따라 삼밀사로 돌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둘레길을 따라 거슬러 간다.

진해가 고요하다. 아무것도 피어 있지 않은 진해는 외로워, 아무도 봄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하룻밤 사이 꽃이 피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을 보며 늙은 벚나무는 희미하게 웃을 것이다. 우리 숨소리만 가득한 인적 없는 임도 너머로 봄이 오고 있다.

산행길잡이

보석 같은 경치와 꽃으로 가득한 봄산이다. 봄날의 장복산은 산행 즐거움의 밀도로 따지면 열 손가락에 들 정도다. 능선에서 이토록 많은 벚나무를 만날 수 있는 산은 드물며, 벼랑 같은 바위능선 따라 막힌 가슴 뚫어놓는 경치가 충분히 이어진다. 다만 진해의 성벽답게 능선이 일자로 길게 뻗어 있어 원점회귀가 쉽지 않다. 그나마 차를 세울 만한 곳이 장복산 조각공원 일대이며, 여기서 산행을 시작해 정상에 올랐다가 안민고개에서 진해드림로드를 따라 되돌아오는 것이 원점회귀 가능한 코스다. 안민고개에서 찻길 따라 1.7km 걸으면 임도 갈림길에 닿는다. 찻길이라 해도 벚나무 명소이고 보행자를 위한 데크길이 있어 지루하지 않다. 임도를 따라 걸으면 삼밀사에 닿는다.

조각공원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산길이 1.6km로 짧지만 가파르고, 정상 부근으로 갈수록 산길이 희미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능선부터는 험한 곳은 계단이 있고, 임도마냥 너른 산길이 있어 초보자도 어렵지 않다.

대부분 지도는 팔각정이 있는 곳을 정상으로 표시했으나, 실제 정상석이 있고 정상다운 바위봉우리의 맛과 운치는 월간산 지도에 정상으로 표시한 곳이 월등하다. 팔각정이 있는 봉우리는 평평한 흙으로 된 공터라 봉우리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기 쉽다.

긴 산행을 원할 경우 마진터널에서 산행을 시작해 장복산 능선을 종주해 웅산에 올랐다가 천자봉 지나 대발령 만남의 광장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추천할 만하다.

교통

진해시외버스터미널과 진해역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20~30분 만에 조각공원 입구에 닿는다. 3~4km로 터미널에서 멀지 않아 택시를 타더라도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안민고개는 버스편이 없다. 찻길이 있으나 4km의 산복도로를 거쳐야 하므로 콜택시도 잘 오지 않는다. 진해 주민 말로는 5,000원에서 1만 원 정도 추가금을 내면 택시가 온다고 한다.

맛집_

진해 맛집 기사 참조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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