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읽어주는 여자, 앤티크 그릇 컬렉터 김지연을 만나다

리빙센스 2024. 4. 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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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

사랑하는 것이 있는 이는 늙지 않는다. <<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를 펴낸 그릇 컬렉터 김지연을 만나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그가 그릇을 모으며 알게 된 것들을 모은 블로그 은 400개, '그릇 읽어주는 여자'로 더 잘 알려진 그의 블로그에 다녀간 앤티크 마니아만 무려 140만 명이다. 사랑하는 것을 수집하고 그 경험을 타인과 나누는 일, 그로 인해 더 행복해지는 일. 그릇 컬렉터 김지연이 자신의 그릇에 담은 것은 무엇일까.

 (몽스북)을 출간한 김지연 대표.

그릇 읽어주는 여자, 김지연

시립 무용단 단원으로 해외 공연을 다니던 20대 시절, 공연을 마친 단원들이 옷을 사고 기념품을 살 때도 오래된 도시의 골목을 혼자 누비며 그릇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30년간 이어진 그릇 공부와 컬렉팅을 소개하는 블로그 '그릇 읽어주는 여자'로 활동하며 티 클래스를 3년째 운영 중이며, '그릇과 홍차이야기'라는 인문학 수업도 운영한다. 김지연은 최근 저서 <<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몽스북)를 통해 10개국 35개 브랜드를 소개했다. 로얄코펜하겐, 로젠탈, 빌레로이앤보흐처럼 익숙한 이름부터 민튼, 운터바이스바흐 샤우바흐쿤스트 등 대중에겐 낯선 브랜드까지. 그릇 애호 초심자를 위한 지침서로 오랫동안 사랑받을 만한 책이다.

30년간 모은 그릇이 다 이 공간에 있는 건가요?

아니에요. 작업실에는 컬렉팅한 그릇의 10분의 1정도만 두었어요. 제가 컬렉팅한 4만 점 정도 되는 그릇들 중 일부를 수강생들과 함께 나누는 중이에요. 때때로 그릇을 바꿔가면서요.

30년간 그릇을 수집하면서 책을 낼 것이라고 예상하셨나요?

처음엔 전혀 생각지 못했죠. 블로그 방문자가 140만 명이 넘어가자 남편이 "이제 이걸로 책을 한 권 써보면 어떻겠냐"고 응원해 주었어요. 여러 제의를 받았는데, 저와 결이 맞는 건 몽스북이었죠.

책을 집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워낙 방대한 양의 그릇이 있다 보니 이를 정리하는 것부터 탈고까지 쉽지 않았어요. 욕심을 덜어내고 초심자를 위한 책을 위해 내용을 골라내는 것 또한 깊은 고민이 따랐고요. 좋은 편집자와 함께여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무려 4만여 점의 그릇, 어떤 기준으로 컬렉팅을 하셨나요?

"없어질 그릇을 컬렉팅하자"는 게 저의 1순위 기준이에요. 예를 들어 1990년도에 단종된 웨지우드의 그릇은 비교적 컬렉팅 가치가 낮다고 봐요. 단종된 지 30년밖에 안됐으니 누군가의 식기장에 들어 있단 뜻이거든요. 죽기 전에 한 번은 만날 일이 생겨요. 제가 컬렉팅하는 것들은 100년이 넘은 것들이에요. 그때서야 비로소 '앤티크'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가치가 생기고, 그게 시장에 나온다면 다른 컬렉터들이 금세 구매하겠죠. 그럼 그 그릇은 다시는 안 보일 확률이 커요.

운터바이스마흐 샤우바흐쿤스트의 제품.
표지에 쓰인 제품은 독일 마이센의 KPM.

그릇을 컬렉팅하는 이들에게는 다양한 성향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로얄코펜하겐의 플로라 다니카 같은 최고급 라인만 모으는 분들도 있고, 하나의 브랜드를 오랫동안 깊이 컬렉팅하는 분들도 있죠. 저의 경우엔 다양성에 집중했어요. 블로그에 글을 써야 하는데 매번 같은 그릇을 소개할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만나지 않은 그릇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훗날 작은 공간에라도 그릇 박물관을 열고 싶거든요. 그런 공간을 꾸린다면 그곳을 찾는 손님들을 대접하며 행복하게 생을 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가격이 비싸지 않더라도, 생소하고 아름다운 그릇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죠.

왜 '그릇 읽어주는 여자'가 됐나요? 블로그 방문자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그릇 좋아하는 이들끼리 이른바 '정모'를 하다가, 누군가 제게 그릇을 읽어주는 여자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제게 와닿았어요. 오랫동안 그 이름을 쓰고, 상표도 출원하다 보니 이제는 제 이름 석 자보다 '그릇 읽어주는 여자'로 저를 알아주는 분들이 있어서 즐겁죠. 종종 모임에 나가면 옆에서 "그릇 읽어주는 여자 블로그 봤어?"라며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만나요. "그거 저인데요"라고 대답하면 깜짝 놀라는데, 그런 모습이 신기해요.

앤티크, 빈티지 그릇은 안목만 있다고 제대로 고를 수 있는 게 아니라고들 하죠. 그래서 사기를 당하는 이들도 많다고요.

모두가 거치는 과정인 듯해요. 저도 속된 말로 '호구'가 되어본 적이 있습니다. 5만원이면 살 수 있는 걸 20만원 주고 산 적도 있죠. 그릇 공부를 조금 더하면 속지 않죠.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그런 일이 있지 않기를 바라며 쓰기도 했어요. 초심자의 입장에서요.

그릇 컬렉터 김지연이 운영하는 쇼룸의 외관.

컬렉터들 중에는 제품을 판매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판매를 생각해 보신 적은 없나요?

한 번도 없어요. 판매하려고 모으지 않았으니, 제가 덕업일치를 이루지 않았을까 싶어요. 블로그에 리뷰한 그릇 역시 단 한 번도 남의 것을 빌린 적이 없고요. 아마 한 번이라도 판매를 했다면 '그릇 읽어주는 여자'라는 저의 정체성도 모호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릇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오래전부터 외국에 갈 때마다 백마크도자기 바닥에 표시한 상표나 문장, 혹은 상징 북을 하나씩 모았어요. 해외 중고 서점에 가면 브랜드가 지닌 철학부터 찻잔 속 그림, 필기 등을 자세히 수록한 책들을 찾아볼 수 있어요. 마니아층이 두텁고 탄탄해 관련 도서도 많고요. 그릇 회사들이 크고 작은 합병을 하면서 기존의 브랜드가 일반에 제공하던 정보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오래된 책들에 더 의존하는 편입니다. 그릇 공부를 위해 제가 드릴 수 있는 팁 중 하나는 각국의 그릇 박물관에 가서 도록을 구매하는 거예요. 저도 꼭 구매하는데, 그 안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거든요.

 약 4만 점의 콜렉션 중 실제로 사용이 가능한 제품의 일부를 그의 작업실에서 수강생에게 선보이는 중이다.
작업실의 외벽 창가에 위치한 제품은 JKW 바바리아.

사실 컬렉터들이 가장 많이 받고, 또 답변을 꺼리는 질문은 "어디서 사셨어요?"일 텐데요. 저서 <<나의 앤티크 그릇 이야기>>에 모든 걸 공개하셨어요. 아깝진 않았나요?

처음엔 '내 보물창고를 어떻게 이야기해 주나' 싶어 원하는 게 있다면 구매해 주겠다고 답하곤 했는데요. 이제는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저의 모든 공부와 , 그리고 클래스 활동의 목적이 '남 주려고 한 공부의 기쁨'에 있으니까요. '나는 모을 만큼 모았다'는 자신감도 있고요.

30년 내공이 묻은 책을 준비할 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었나요?

초심자를 위한 바이블이었으면 했어요. 그리고 그릇을 공부하며 알게 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죠. 일례로 독일의 그릇 브랜드 마이센이 1709년 시작됐는데, 그 배경에 제국주의시대 동인도회사에서 중국의 차와 그릇을 가져오다 벌어지는 아편전쟁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다는 사실 같은 거요. 세계사를 몰라도 그릇을 공부하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 참 재미있어요. 그릇을 알면 차가 더 맛있어져요.

130년~200년이 된 그릇을 아까워서 어떻게 쓰세요? 저는 손이 떨릴 것 같은데.

제가 운영하는 티 클래스뿐 아니라 식구들과 식사, 티타임에도 쓰고 있어요. 제게 아주 귀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대접하고 또 쓰이기 위한 그릇이에요.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고운 그릇에 내어주고, 맛있고 향 좋은 차를 귀한 찻잔에 내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제 안에 있어요. 일생 부모님과 시부모님,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살았어요. 제가 늘 웃을 수 있고, 긍정적인 마음을 지니고 살 수 있었던 건 결국 그런 사랑이 근간이죠. 저는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그 마음을 가족에게, 또 저를 찾아오는 이에게 돌려주고 싶은 거죠.

블로그를 하고, 책을 쓰고, 티 클래스를 운하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뭔가요?

"이렇게 해서 뭐가 남아요?"라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아요. 농담이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으면 남는다고 답해요. 저는 그만큼 이 일에 진심이에요.

사랑하는 일을 하고 계시네요.

올해로 57세예요. 제가 이 나이에 에너지 넘칠 일을 찾기란 쉽지 않겠죠. 어쩌면 그릇을 모으는 것보다 행복한 일은 이곳을 찾는 이들과 나누는 그릇 이야기, 또 제가 모은 그릇을 보며 웃는 모습을 보는 거예요. 거기서 에너지를 찾아요. 그럼 그걸 다시 돌려주고 싶죠.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이렇게 살 수 있어요.

CREDIT INFO

freelance editor박민정

photographer김잔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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