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숲에도 고운 깃 오색딱따구리·후투티 있는 거 아세요? [ESC]

한겨레 2024. 4. 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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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탐조
쌍안경·휴대폰으로도 가능…고성능 장비, 학생·여성 등 ‘진입장벽’ 낮춰
코로나19 거리두기 때 관심 늘어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탐조 시작돼
동호회·전문서점·채널 등 활짝 “동네에서 시작해 반경 넓혀도 좋아”
지난해 11월 서울숲 단풍 사이에서 나무를 쪼고 있는 오색딱따구리. 이명자 제공

“이틀에 한번은 쌍안경과 휴대폰만 들고 새를 보러 다녀요.” 김유솔(27)씨는 전남 완도에서 사진관을 운영한다. 그는 서울에서 5년간 살다가 2019년 고향인 완도로 돌아와 탐조를 시작했다. 새를 관찰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탐조(探鳥)는 18세기 영국에서 야생 조류 사냥이나 사육을 금지하면서 유럽·미국·일본 등으로 확장된 취미 활동이다.

“근처 새를 본 지 1년 정도 되었어요. 저희 집이 앞은 바다, 뒤는 산이거든요. 다양한 새를 볼 수 있어요.” 그는 네이버 카페 ‘쌍안경으로 보는 세상’, 스마트폰 앱 ‘네이처링’, 그리고 ‘탐조책방’에서 여는 온라인 강의를 통해 새 정보를 얻는다. 새의 깃털을 줍거나 디지스코핑(쌍안경이나 한쪽 눈으로 세밀하게 새를 관측하는 ‘필드스코프’에 스마트폰·카메라를 대고 사진을 찍는 일)을 한다. 새 그림도 그린다.

지난 3일 삼육대 탐조 동아리 ‘호버링’ 회원들이 서울 노원구 캠퍼스 안에 있는 호수인 제명호에서 탐조 활동을 하고 있다. 김동원 제공

580여종 새의 20% 이상이 서울에

지구상에는 1만여종의 새가 있는데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새는 580여종이다. 작은 국토 면적을 고려하면 굉장히 많은 수다. 김유솔씨는 먼저 소리를 들어 새를 구분하고 보이는 특징을 바탕으로 도감을 찾는다. 주로 이용하는 책은 국내 최초 도감인 ‘한국의 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새를 암수 구분까지 그려놓아 참고하기 좋다. 그래도 알아낼 수 없는 경우 ‘네이처링’ 앱 게시판에 질문한다. 그는 새를 보기 위해 한달에 한번 전남 완도 망남리를 찾는다. “여기서 개리 등 멸종위기 새를 봤어요. 이후로 매달 이 방파제를 찾아요.” 김유솔씨는 탐조 경력에 비해 운 좋게도 멸종위기종을 자주 만난 편이다. 서해안의 갯벌이 없어지면서 북쪽에 있던 새가 완도까지 내려온 경우가 많아진 이유도 있다. “원래 지내던 곳이 사라져 새가 여기 완도까지 내려왔다고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고, 아직은 멸종되지 않아 제가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쁘기도 해요.”

지난해 11월 전남 완도 1부두 쪽 타워 꼭대기에 있는 까마귀 떼를 디지스코핑한 모습. 김유솔 제공

서울에서도 새를 볼 수 있다. 580여종의 새 중 20% 이상이 서울에 서식한다. 특히 도시의 하천과 공원은 새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대학생 김동원(24·삼육대 동물자원과학과)씨는 20살부터 탐조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쌍안경과 100만원대 니콘 쿨픽스 카메라를 이용해 새를 관찰한다. 학과 친구들과 함께 새를 보다가 지난해 3월 탐조 동아리 ‘호버링’을 만들었다. 동물자원과학과 재학생 두명이서 시작한 동아리는 1년 만에 66명으로 회원이 크게 불어났다. 동식물 전공자 외에도 디자인·예술·컴퓨터공학·건축 등 다양한 학과 학생들이 모여 매주 새를 보러 간다.

호버링 멤버들은 학교와 가까운 서울 노원구 불암산과 학교 안에 있는 호수(제명호)를 특히 자주 찾는다. 내년엔 제명호에서 관찰한 동물 자료를 모아 소책자를 발행할 예정이다. 계절마다 다른 지역으로 탐조를 가기도 한다. “작년 여름엔 잣까마귀를 보러 설악산에 갔어요. 대청봉에만 사는 잣까마귀는 설악산에 있는 눈잣나무 열매를 먹어요. 4시간 반 동안 산을 타서 느긋하게 눈잣나무 위를 날아다니는 새를 만났어요. 말로 할 수 없이 기뻤죠.” 요즘 탐조지에는 특히 어린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띈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다양한 사람이 새를 보러 모여요. 저희 또래도 많지만 초등학생·중학생이 특히 많이 보여요. 대부분 탐조를 다루는 유튜브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11월 김유솔씨가 완도 자신의 집에서 까마귀 떼를 쌍안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유솔 제공

호버링은 올여름엔 강원 춘천시 남이섬에 가서 솔부엉이와 소쩍새 같은 야행성 맹금류를, 가을에는 충남 서천군 유부도에서 도요새를, 겨울에는 동해에서 오리와 갈매기를 볼 계획이다. 호버링 운영자 김동원씨는 네이처링 앱과 사람을 두루 취재하면서 탐조지를 선택한다. 네이처링에서는 새 종류, 시기, 지역별로 필터를 적용하면 적합한 탐조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블로그와 카페, 새를 좋아하는 선후배, 학과 교수님께도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해요.” 그는 새가 주는 다채로움이 있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산새는 조그맣고 귀여워요. 맹금류는 카리스마가 느껴지고요. 탐조하면서도 둥지에 가까이 간다거나 새를 잡으려 하는 등 위협을 하지 않는 이상 위험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아요. 다만 과도한 욕심으로 새를 자극할 수는 있기 때문에 탐조 나가기 전에 과한 욕심을 버릴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처음 보는 새는 설레고 다시 보는 새는 반갑죠. 지금은 겨울 철새가 가고 여름 철새가 오는 시기예요. 꼬박 1년 만에 보니까 친한 친구와 재회하는 것처럼 기뻐요.”

“죽은 줄 알았던 새가 다시 창틀에…”

김유솔씨처럼 집 앞에 바다가 없고, 김동원씨처럼 동아리를 만들 상황도 아니라면 집에서 혼자 탐조를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책 ‘내가 새를 만나는 법’과 ‘1일 1새 방구석 탐조기’를 쓴 작가이자 유튜브 채널 ‘조용한 작업실’을 운영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방윤희(46)씨가 선택한 방법이다. “2016년 가을, 창틀에 해바라기씨를 한 줌씩 놓으며 새를 보기 시작했어요. 겨울엔 하루 세번, 여름엔 하루 한번씩 먹이를 줬어요.” 그 역시도 원래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탐조 활동을 즐겼다. “그땐 책에서 보던 새를 직접 눈앞에서 보는 기쁨이 컸어요. 흥분·설렘·신기함 같은 감정이 들었죠.” 그러다 자신의 반려견 ‘비단이’가 2019년부터 아프면서 탐조를 나가는 일이 줄어들었고 집 가까이 찾아오는 새들을 관찰했다.

서을 근교 빌라에서 사는 방씨는 창틀에 스마트폰 갤럭시노트9를 끼워놓고 새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간접적이고 과거형인 탐조죠. 창틀 촬영을 하며 새가 계절을 보내는 감각을 공유하게 되었어요. 구분이 가능한 일부 개체에게는 매일의 기분과 건강·안부 같은 걸 확인하며 기쁨을 느껴요.” 낮 시간을 탐조에 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새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새가 빈 창틀을 뒤지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먹이양을 늘리게 되었어요. 아몬드·호두나 분쇄 땅콩 등 종류도 더하고요.” 스마트폰에 충전기를 꽂은 채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러놓고 최대 7시간씩 촬영한다. 저녁이면 영상을 보면서 다녀간 새와 특징을 종이노트에 적었다. 새의 특이한 행동이 담긴 영상은 편집해두고 종별로 폴더를 만들어 보관한다.

지난 1월 오른발을 다친 참새 ‘흑발’(왼쪽 둘째)이가 방윤희씨의 집 창틀에서 모이를 먹고 있다. 방윤희 제공

2022년 8월엔 발을 다친 참새가 먹이를 찾아 방씨의 창틀에 들렀다. 발이 까매 ‘흑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녀석의 다친 발은 굳고 오므라들다가 나중엔 떨어져 나갔어요. 한번은 일주일 넘게 보이지 않아 죽은 줄 알았는데 이내 멀쩡히 나타나 해바라기씨를 쪼아 먹더라고요. 반가워서 눈물이 났어요. 발 하나로 건강히 살아가는 흑발이를 보며 (2019년 겨울) 비단이와의 이별로 위축되었던 마음이 단단해지는 걸 느꼈어요.” 2011년 처음 탐조를 시작해 14년째 새를 보고 있는 방씨는 요즘 사람들의 탐조 활동이 활발해졌다고 느낀다. “예전엔 도감이나 사진 에세이 몇권이 볼 수 있는 자료의 전부였어요. 그러나 요즘엔 만화, 관찰기, 잘 꾸며진 도감, 번역 서적 등 자료가 다양해졌어요. 에스엔에스(SNS)에 보이는 젊은 탐조인들도 매우 많아졌고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탐조책방’은 탐조인의 입문을 돕는 곳이다. “요 몇년 사이 새 관련 책이 많이 늘었어요. 새가 그려진 달력이나 엽서·굿즈 등도 많아졌고요.” 3년 전 책방을 연 박임자(53) 대표의 말이다. 책방에는 새와 관련한 300종 이상의 책이 있고 탐구 가이드 역할을 하는 도감·쌍안경을 판매한다. 매달 입문자 코스를 진행하는데 쌍안경 대여도 가능하다. 탐조책방은 또 수원시 일월호수·서호 등에서 주기적으로 탐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도시 공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공 새집 달기도 이어오고 있다.

“쌍안경·도감만 들고 오세요”

2020년 심리치료사로 일하다가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일을 쉬게 된 박 대표는 당시 1년간 자신이 거주하는 경기 수원시 아파트 단지에서 47종의 새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같은 단지에 사는 언니와 어머니도 각각 2층과 17층 베란다에서 먹이를 주며 탐조의 기쁨을 누렸다. 아파트 탐조는 주로 어린이와 가족이 주축이 된다.

“탐조책방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고 새에 관심이 생겨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젊은이와 여성이 많아졌고, 학생 인구도 크게 늘어났어요.” 박 대표는 몇년 사이 탐조 인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한다. “쌍안경과 도감, 합쳐서 15만원 정도면 탐조를 시작할 수 있어요. 새를 보는 일이 얼마나 쉽고 즐거운지 한번만 경험하면 그다음에는 굉장히 다채로운 걸 얼마든지 즐길 수 있어요. 어떤 취미보다 접근성이 좋죠.”

탐조가 우리나라에서 젊은 세대에게 주목받은 데에는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시작한 탐조 모임 ‘서울의 새’ 이진아(53) 대표는 “탐조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면서 즐길 수 있는 취미였다. 탐조에 대한 관심 고조에는 코로나가 한몫한 것 같다”고 했다. 박 대표도 “코로나 때 동네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는데, 자기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하는 아파트 탐조가 덕분에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탐조책방’ 내부 모습. 박임자 제공

촬영 장비의 경량화, 고성능화는 젊은 세대뿐 아니라 여성의 탐조 활동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췄다. 크고, 무겁고, 비싼 카메라 장비가 없어도 탐조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바다나 산으로 떠나지 않고도 동네에서 새를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에 사는 숲 해설가 이명자(60)씨는 1년 전 탐조 블로그를 개설했다. “사계절 내내 숲에 즐길 거리가 많아져 행복해요. 동네에서 한겨울에 후투티를 만난 날이 떠오르네요. 놀랍고 신기했어요.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 철새인 후투티가 우리나라에서 월동을 하기 시작했대요.” 이씨는 산책을 하며 주변의 새를 살피다 남편이 선물한 똑딱이 카메라로 새 사진을 찍는다. 2천m까지 줌이 당겨져 멀리서도 새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씨가 운영하는 탐조 블로그는 아들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다. “포스팅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서울숲 탐조를 함께 해보고 싶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들 역시 제게 새 이야기를 물으며 평소보다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지난 2월22일 눈 쌓인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 있는 호수에 유유히 떠 있는 원앙. 이명자 제공

기후위기로 환경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새와 자연을 보호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중에는 유튜브 채널 ‘새덕후’(구독자 45만6천명)를 운영하는 김어진(28)씨가 있다. “탐조 다큐멘터리를 올리는 유튜브 채널 ‘새덕후’의 영향도 커요. 새로 모임에 온 사람들 중 ‘새덕후’ 보고 왔다는 사람이 많아요.”(이진아 대표) 김어진씨는 희귀 조류를 발견해 소개한다. 또 매년 철새 도래지에서 개체 수를 조사하고 줄어드는 이유가 개발에 따른 서식지 파괴임을 꼬집는다.

지난해 3월 서울숲 벚꽃나무에 앉아 있는 직박구리. 이명자 제공

탐조 모임 ‘서울의 새’도 입문자가 찾기 좋다. 이 모임에서는 여의도공원, 어린이대공원, 중랑천 등 서울 10개의 장소를 정기 모니터링하며 새를 본다. 지난 한달 동안 한강을 찾아 오리를 보는 프로그램이 네번 열렸다. 누구든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다. “쌍안경과 도감만 들고 오면 돼요. 빈손으로 와서 뭘 사야 할지 조언을 구해도 좋고요.” 이진아 대표는 유치원생 시절 새를 좋아하던 아이를 따라 탐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매력에 빠졌다. “새를 보면서 계절이 흐르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또 탐조하며 워낙 많이 걷다 보니 체력도 좋아지고 복잡한 머리가 차분해지기도 합니다.” 모임이 부담스러우면 익숙한 동네에서 혼자 탐조를 시작하며 반경을 넓혀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이 대표는 조언한다.

지난 1월8일 서울숲에서 만난 후투티. 이명자 제공

조서형 지큐코리아 웹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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