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막오른 1기 신도시 재건축…기대 크지만 사업성은?
용적률 등 파격 혜택에 재건축 기대감↑…"집값 수준 달라 사업성도 차이"
전문가들 "기반시설 확보해야", "미래 도시기능 고려한 설계가 우선"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요즘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는 주말마다 단지별로 재건축 사업 설명회가 열린다.
정부의 신도시 정비사업 선도지구 지정을 앞두고 주민들의 사전 동의율을 높여 선도지구에 뽑히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모습이다.
"선도지구 지정만이 살길"…분당·일산 등 경쟁 후끈
지난달 30일 오후 분당 내정중학교 실내체육관.
분당 수내동 파크타운 통합재건축 설명회에 500명이 넘는 주민이 모였다.
이날 설명회는 파크타운 대림·롯데·삼익·서안 등 4개 단지의 재건축 준비위원회가 정부의 신도시 정비사업 선도지구 지정을 앞두고 주민들의 동의를 독려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정비계획은커녕 정부의 신도시 전체 마스터플랜도 안나왔지만, 현장의 열기는 여느 재건축 단지 못지않게 뜨거웠다.
설명회에 참석한 한 신탁회사는 재건축 조합방식 대비 신탁방식의 장점을 알렸고, 설계회사와 정비회사는 재건축 방향성과 사업성을 각각 브리핑했다.
현대엔지니어링, 대우건설, 롯데건설 등 시공사 3사도 나와 최근 재건축 동향을 설명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4·10 총선 분당을에 출마한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후보도 자리했다.
김은혜 후보는 "분당갑 의원 시절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최초로 발의한 장본인으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폐지하겠다"며, 김병욱 후보는 "민주당의 노후계획도시주거환경개선특위 위원장으로서 노후계획도시특별법 제정을 주도했다"며 일제히 신도시 정비사업 지원을 약속했다.
한 파크타운 주민은 "처음에 재건축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왔는데 진짜 재건축이 본격화되는 느낌"이라며 "그래도 변수가 많아서 조급함 없이 느긋하게 지켜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다음 달 노후계획도시 선도지구 지정 지침을 공개하고, 이르면 6월부터 선도지구 공모에 들어가기로 하면서 대상 지역 주민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현재 재건축에 가장 적극적인 분당을 비롯해 일산, 평촌 신도시 등에서는 최근 주말마다 선도지구 지정을 위한 주민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특히 정부가 주민 참여도가 높은 단지를 선도지구 평가 항목으로 꼽으면서 단지마다 사전 동의율을 높이는데 사활을 건 분위기다.
분당 서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1기 신도시만 5곳이고, 다들 비슷한 시기에 입주해 이번 선도지구 지정에서 탈락하면 최소 5∼10년 이상은 재건축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며 "선도지구로 뽑히기 위해 최대한 동의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분당 신도시의 경우 '마을' 단위로 구획된 29곳(아파트·빌라 21개 마을, 단독주택 8개 지역) 가운데 선도지구 경쟁에 뛰어든 곳은 현재까지 12곳이 넘는다.
입주가 가장 빨랐던 분당 서현동 시범단지(7천769가구)를 비롯해 정자동 정자일로(2천860가구), 정자동 한솔마을 1·2·3단지(1천872가구), 정자동 정든마을(3천730가구), 수내동 양지마을(4천892가구), 수내동 푸른마을(4천392가구), 수내동 파크타운(3천26가구), 이매동 풍림·선경·효성(1천634가구) 등이 선도지구 지정을 위한 사업설명회를 마쳤다.
이중 일부 지역은 주민 사전동의율이 80%를 넘은 상태다.
분당보다 열기는 덜하지만 일산에서도 마두동 강촌마을 1·2단지와 백마마을 1·2단지, 일산동 후곡마을 3·4·5·10단지 등 여러 단지에서 통합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평촌은 관양동 한가람 한양·삼성·두산, 비산동 샛별한양 2·3단지, 호계동 목련 6·7단지 등이 통합 재건축을 논의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신도시당 1곳 이상의 선도지구를 지정한다는 방침이다. 분당, 일산 등 규모가 큰 신도시에서는 복수 지정도 예상된다.
최병길 국토부 도시정비기획준비단장은 "현재 주민들의 재건축 의지가 높고 규모가 큰 분당과 일산에서는 2∼3곳 이상의 선도지구 지정도 검토 중"이라며 "주민 참여도(동의율) 외에도 노후도와 주민 불편 정도, 도시기능 향상, 주변지역 확산 가능성 등을 고려해 5월 중 지자체별로 구체적인 평가 기준을 마련해 공개하고 6월 이후 공모 절차를 거쳐 연내 선도지구를 지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격 혜택' 신도시 재건축…추가분담금은 얼마?
정부가 마련한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의 혜택은 일반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수준이다.
2개 단지 이상 통합재건축을 추진하되, 특별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되면 법정 상한의 150%까지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현재 3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법정 상한 용적률이 300%인데, 최고 450%까지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역세권 단지는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을 하면 법정 용적률(500%)의 150%인 750%까지 용적률을 올릴 수 있다.
현재 1기 신도시 평균 용적률은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로, 지금보다 용적률을 100∼200%포인트 이상 더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건폐율 등 각종 건축규제도 법적 상한까지 완화해주고, 조례로 정하는 일정 비율 이상의 공공기여를 하면 안전진단도 전면 면제해준다.
주택도시기금과 연기금이 주도하는 12조원 규모의 '미래도시 펀드'를 조성해 초기 재건축 사업비도 지원한다.
정부의 목표는 현 정부 임기 내 첫 착공에 들어가 2030년에 첫 입주 단지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J&K도시정비 백준 대표는 "정부가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도 일단 선도지구에 대해서는 인허가 절차 단축, 공공기여 축소 등 파격적인 지원이 뒤따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며 "단지마다 선도지구 지정에 열을 올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업성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최근 공사비 급등으로 조합원 추가분담금이 늘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까지 시행되는 상황에서 신도시 재건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분당 파크타운 재건축 준비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설명회에서 다른 단지에서 하지 않은 수익성 분석 결과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파크타운은 중대형 단지가 많아 재건축 후 조합원의 주택형을 넓혀가지 않는 대신 일반분양분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인데, 동일 주택형으로 입주할 경우 전용면적 84㎡ 이상은 추가분담금 없이 1억원 이상을 환급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용적률 350%를 적용해 종전 3천26가구가 4천736가구로 늘어나며, 가구 수 증가분을 향후 3.3㎡당 5천500만원의 분양가로 일반분양한다고 가정한 결과다.
시뮬레이션에서는 일반분양가를 3.3㎡당 5천만원으로 낮춰도 전용 84㎡ 이상은 5천만원 이상 환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파크타운 전용 131㎡(공급면적 157㎡)의 매매 시세는 17억∼19억원 선으로 3.3㎡당 3천600만∼4천만원 선에 그치지만, 인근 판교신도시 아파트값은 3.3㎡당 5천만∼6천만원을 넘는다.
다만 준비위원회와 설계회사가 제시한 사업성 분석에는 용적률 상향에 따라 지자체가 기부채납 등의 형태로 회수할 공공기여 부분이 고려되지 않았다.
특별법 시행령의 공공기여 비율은 기본계획상 기준 용적률까지는 10∼40%, 기준 용적률을 초과하는 부분은 40∼70%로 규정하고 있다.
기준 용적률이 300%이고, 단지 용적률이 180%에서 330%로 높아지는 경우 공공기여 비율(33%) 만큼을 현금이나 공공주택, 사회기반시설, 토지 등으로 내놔야 한다.
연말까지 지자체가 수립할 노후계획도시정비 기본계획과 관련 조례에 따라 기준 용적률이 정해지고, 공공기여 범위가 확정되면 그만큼 수익이 감소해 주민들의 실부담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지자제의 기본계획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현재로선 추가분담금을 예측할 수 없는 단계인데 너무 앞서갔다"고 말했다.
박시삼 파크타운 재건축추진준비위원장은 이에 대해 "성남시 등과 단지 내 신재생에너지, 상하수도 시설 설치 등의 방식으로 공공기여를 대체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초안이나마 사업성 분석을 제시한 뒤 주민들의 동의율도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업계 "집값 높고 일반분양 많은 분당은 사업성 양호…나머지는 글쎄"
전문가들은 일단 신도시의 경우 재정비 특별법을 통해 파격적인 용적률 혜택을 주기로 한 만큼 일반분양 물량 확보의 토대는 마련됐다고 본다.
하나감정평가법인 오학우 평가사는 "정비사업 성공의 열쇠는 사업성"이라며 "현재 아파트 시세가 뒷받침되는 분당과 평촌 정도는 일반분양가를 높여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분당 다음으로 규모가 큰 일산은 기존 용적률이 낮아 다른 신도시에 비해 일반분양분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간선도로 등 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고 아파트값이 낮은 것이 걸림돌로 지적된다.
중동과 산본 신도시는 기존 용적률도 높은 편인데 상대적으로 아파트값도 낮아 지금처럼 공사비가 급등한 시기에 사업성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산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주민들은 선도지구에 지정되더라도 최근 공사비가 급증해 추가분담금에 대한 걱정이 많다"며 "입주 때까지 최소 10년 이상은 걸리지 않겠느냐는 말들을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발목을 잡는다. 사업 개시 시점(조합설립인가)과 종료시점(준공)의 시세 차익도 문제지만, 신도시는 일반 재건축 단지에 비해 용적률 상향에 따른 수익이 커 초과이익(재건축 부담금)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지자체가 수립할 기본계획에서 도로·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나 공공시설, 도시 자족기능 확보 방안이 얼마나 담길지에 따라 사업성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분당만 해도 당장 출퇴근 시간대에 서울 및 경기 광주 등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정체가 심해 교통대책이 필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도시 재정비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단군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사업"이라며 "이 때문에 용적률이 1.5∼2배로 늘었을 때 기반시설 확보 방안이 반드시 검토돼야 하는데 공공기여 요구가 크면 반대로 재건축 사업성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동시다발적인 재건축 속도전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총선과 대선 등 선거 공약에 휘둘리는 등 졸속 접근은 견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별법 대상에만 지원하는 용적률, 자금 지원 방침과 일반 재건축 사업과의 형평성 논란도 정부가 감당할 몫이다.
이주 문제도 변수다. 정부는 인근 유휴부지 등에 이주단지를 조성해 주변 전세시장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대규모 개발이 한꺼번에 이뤄질 경우 전세대란, 집값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서울 5대 저밀도 재건축처럼 범정부 차원의 재건축 시기조정이 불가피한데, 이는 개별 단지의 사업 일정에 영향을 미친다.
단국대 김호철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신도시 정비계획은 30년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신도시 주거여건 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부는 정치적 유불리보다 베드타운인 신도시의 도시 기능을 향상할 수 있는 다시 오기 힘든 기회라는 점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며 "마스터플랜부터 기본계획까지 미래의 도시 기능을 충분히 고려한 설계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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