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출판인 사로잡은 한국형 ‘오컬트 로맨스 판타지’ [책&생각]

한겨레 2024. 4. 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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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프랑크푸르트도서전과 비교해 런던도서전은 여러 면에서 만만해 보이는 도서전이다.

하지만 국제도서전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원고 발굴 및 저작권 거래'라는 점에서 보면, 런던도서전은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절대 밀리지 않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런던도서전에서 세계 출판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작품은 박에스더 작가의 '벽사아씨전'(안전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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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아씨전
박에스더 지음 l 안전가옥(2023)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프랑크푸르트도서전과 비교해 런던도서전은 여러 면에서 만만해 보이는 도서전이다. 전시장 크기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의 4분의 1가량에 불과하고, 기간도 단 사흘뿐이다. 하지만 국제도서전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원고 발굴 및 저작권 거래’라는 점에서 보면, 런던도서전은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절대 밀리지 않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3월12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런던도서전에도 3만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몰려들었다. 저작권 거래의 중심 역할을 하는 에이전트가 모여 있는 국제저작권센터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다양한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와 강연에서도 활기가 느껴졌다.

도서전에서 저자, 출판사, 에이전트, 스카우트 등, 여러 출판 관계자는 자신들이 준비해온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세계 각지에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자국에 소개할 매력적인 해외 작품을 발굴해 저작권을 사거나, 또는 해외 시장에 어필할 자국 작품을 소개해 저작권을 팔기 위해서다. 사전에 협의된 빽빽한 미팅 일정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반가운 인사 뒤에 빠르게 작품 소개를 주고받는다. 짧은 시간 치열한 만남 가운데 상대의 눈이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국제도서전에서는 특히 한국 작품의 인기가 뜨겁다. 지난 런던도서전에서 세계 출판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작품은 박에스더 작가의 ‘벽사아씨전’(안전가옥)이었다. 주요 출판그룹 가운데 하나인 아셰트(Hachette)는 발 빠르게 고액의 선인세를 제시하면서 ‘벽사아씨전’의 영미권 저작권을 확보했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출판사 몬다도리(Mondadori)는 도서전 현장에서 프리 엠트(Pre-empt, 선구매) 제안으로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이밖에도 러시아, 독일, 스페인, 폴란드, 튀르키예, 브라질 등, 전 세계 여러 나라 출판사들이 이 책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계약 조건을 협의하고 있다.

‘벽사아씨전’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컬트 판타지 로맨스 작품이다. 남장을 한 채 벽사(귀신을 쫓음)하러 다니는 여주인공 빈이 이야기를 이끌고, 빈 외에도 5명의 인물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108개의 귀혼구를 모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루려 결심한 남장 퇴마사 빈의 이야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모험적인 여성상을 제시해준다. 비록 국내에서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만큼 커다란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벽사아씨전’을 향한 해외 출판사들의 관심 열기는 뜨겁다. 영미 저작권을 확보한 담당 편집자는 “흥미진진한 유령 이야기면서 가슴 설레는 로맨스다. 정교하고 치밀한 세계관 속에 살아 숨 쉬는 듯한 캐릭터들이 만족스러운 반전을 만들어낸다. 지금껏 읽어보지 못한 놀라운 판타지다”라면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또 다른 해외 편집자는 “한국 민속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판타지에 큰 감명을 받았다”면서, “재발견을 기다리고 있는 무수한 신화와 민속설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라고 전했다.

‘벽사아씨전’의 해외 진출로 그간 주로 힐링 소설 중심으로 소개되던 한국 작품의 지평이 더욱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이 해외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서 다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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