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년, 그곳과 그날의 슬픔을 돌보다 [책&생각]

양선아 기자 2024. 4. 5.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억의 공간’과 공간 지킨 연대자들 조명
슬픔 재료 삼은 작가들의 글이 위로 건네
광주시민상주모임의 시민상주들은 희생자 가족들과 10년을 이어왔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는 세월호 참사의 ‘기억 공간’ 10곳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신정임 제공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l 한겨레출판 l 2만2000원

월간 십육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 에세이
김겨울 외 49인 글, 임진아 그림, 4·16재단 엮음 l 사계절 l 1만8000원

슬픔의 달 4월이 찾아오면, 온 국민의 머릿속에는 그날의 장면이 자동 재생된다. 학생들을 태운 큰 배가 서서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모습. 그 장면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며 발을 동동 구르다 “전원이 구조됐다”는 소식에 잠시 안도했다가 수백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충격과 깊은 슬픔에 빠져야 했던 그해 그날. 여전히 기억은 선명한데 벌써 10년이 지났고,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기획된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아직도 세월호냐’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기억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리고 왜 우리가 이 슬픔을 지키고 잊지 말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책들이다.

먼저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는 세월호 참사 관련 공간과 그 공간을 지키고 가꿔온 연대자들을 조명한 책이다.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목포 신항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4·16기억교실에서 시작해 단원고, 4·16기억전시관,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인 화랑유원지를 지나 다시 기억교실까지 걷는 ‘기억과 약속의 길’, 인천에 마련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희생자들의 유해가 수습됐던 팽목항에 마련된 ‘세월호 팽목기억관’ 등 세월호와 관련된 ‘기억 장소 10곳’을 작가 10명이 찾았다.

노란 우산을 쓰고 ‘기억과 약속의 길’을 따라 걷는 시민들의 모습. 4·16재단 제공

인터뷰나 르포 등을 전문으로 해온 작가들은 그 장소를 직접 찾고 그 공간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활동가들을 인터뷰해 글에 담았다. 독자들은 글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이 저릿함을 느낄 것이고, 또 나를 대신해 그곳에 있어준 그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피어오를 것이다. 2017년 3월 목포 신항만에 세월호가 들어오던 날, “그냥 가야 할 것 같아서” 신항으로 향했던 김애숙씨. 김씨는 울음을 쏟아내는 유가족 곁을 지켰고, 봉사자 부스 컨테이너에서 매일 천을 자르고 노란 리본을 만들었다. 지금은 새해 첫날과 추석 전날 상차림을 해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세상은 안 바뀐다”고 말하고 유가족 순범 엄마에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될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한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김씨의 다짐까지 읽고 나면,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4·16기억전시관 천장에 걸린 304개의 기억등. 안미선 제공

송경동 시인이 모은 10명의 작가는 단순히 활동가들의 활동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가 인터뷰와 세월호 참사 이후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토대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시민들이 함께 고민할 의제들도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예컨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시체팔이’를 운운하던 사람들, 수많은 참사 경험에도 여전히 체계적인 재난 대응 매뉴얼을 갖추지 않은 정부에 대한 비판은 물론, 추모 공간은 어떤 의미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또 기억교실과 기록물을 지키는 일은 왜 중요한지, 사회적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음 세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짚는다. 이 밖에도 여러 생존자와 유가족의 지난 10년 동안 삶의 궤적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세월호 희생자’라고 퉁쳐서 생각하지 않고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독자들을 안내해 공감의 지평을 넓힌다. 이 책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4·16재단이 주축이 되어 발족한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가 기획했다.

‘월간 십육일’ 의 내지 그림. 이 책은 크게 다섯부로 나뉘는데, 삽화가 임진아씨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을 상징하는 다섯 장의 그림을 그려 배치했다. 이 그림은 ‘다시 봄’에 해당하는 5부 그림. 사계절 제공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가 공간을 중심으로 ‘세월호 기억’을 꽃피웠다면, ‘월간 십육일’은 매달 16일에 ‘그해 그날’에 대한 글을 써 ‘기억과 연대의 울타리’를 마련한 책이다. 4·16재단이 기획해 2020년 6월16일부터 아직 공개되지 않은 2024년 10월16일까지 총 50편의 에세이를 엮었다. 정보라, 은유, 이슬아, 정세랑 등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나희덕, 오은, 성동혁, 서윤후 등 다수의 시인들과 인권운동가인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 정혜윤 라디오 피디, 삽화가 임진아, 사진가 이훤 등이 참여했다.

글이라고 하면 내로라하는 이들이 슬픔을 원료 삼아 쓴 글들은 슬프지만 또 아름답다. 한명 한명이 진심을 담아 글로 만든 ‘기억과 연대의 울타리’ 안에서 독자들은 안전하게 슬퍼할 수 있고 위로도 받을 수 있다. 생존자와 유가족뿐만 아니라 4월이 되면 그해 그날이 자동 재생되는 우리 모두가 어쩌면 사회적 참사의 또 다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정세랑 작가는 책에서 “공공의 기억을 확립하지 못하고서는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훼손되지 않도록 시민들이 기억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윤후 시인은 또 “슬픔의 기억력이 좋아질수록 훗날, 이 슬픔을 그대로 물려주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김하나 작가는 “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작고 약하지만 손을 맞잡고 잊지 않으면 우리는 물결이 되어 거대한 바다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50편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묵묵히 슬픔의 자리를 지키고” “슬픔을 돌보는 일이”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이 책을 사서 매일 한 편의 에세이를 읽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거나 에세이에 참여한 작가들처럼 오는 16일엔 ‘나와 세월호’ 글 한 편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l 진실의힘 l 3만5000원

책임을 묻다
세월호참사 10년, 우리는 책임을 물었고 국가는 책임을 묻었다
김광배 외 7인 지음 l 굿플러스북 l 2만2000원

이 밖에도 2016년 ‘세월호, 그날의 기록’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토대를 놓은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지난 10년 동안 쌓인 조사 결과와 각종 기록과 자료 등을 정리해 새로운 관점으로 참사를 분석한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도 출간됐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족과 이들을 옆에서 지원한 변호사들이 지난 10년간의 자료들과 수천장에 이르는 판결문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정부의 책임에 대해 다루는 ‘책임을 묻다’도 나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