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잘 노는 아이들이 성공한다

관리자 2024. 4. 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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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키워 취업과 결혼까지 시켰으면 '교육'에 대한 고민은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한글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깨우쳤고 초등학교 3학년에 겨우 구구단을 암기했던 시절에 살았던 내게는 한글도 정확하게 발음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까지 과외를 시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30여년 기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던 내 경험으로는 영어나 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행복하고 풍요한 삶을 누리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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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키워 취업과 결혼까지 시켰으면 ‘교육’에 대한 고민은 끝날 것 같았다. 그런데 부모는 종신범처럼 평생 자녀에 대한 의무가 끝이 없듯, 손주가 태어나니 이제는 ‘손주 교육’이 숙제다.

친구들이 모이면 “손주 영어유치원 비용은 누가 내니, 강남은 한달에 200만∼300만원이라더라” “내 며느리는 기저귀도 안 뗀 손자에게 영어·미술·놀이 과외에, 주말에는 체육관에도 보내 내 아들 등골이 휜다” “초등학교 가기 전에 수학도 익혀야 특목고에 갈 수 있단다” 등의 대화를 나누며 한숨을 쉰다. 33개월 된 손자를 둔 할머니인 나는 영어유치원 비용은커녕 동화책이나 세발자전거 등을 사주는 것만으로도 생색을 엄청 내는데, 어린이집만 다니는 손자에게 은근히 죄책감까지 들었다.

하지만 한글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깨우쳤고 초등학교 3학년에 겨우 구구단을 암기했던 시절에 살았던 내게는 한글도 정확하게 발음 못하는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까지 과외를 시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건 부모, 이젠 조부모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조기교육 공포마케팅이라고 소리쳐 주장하고 싶다. 꼰대라고 욕먹어도 상관없다.

30여년 기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던 내 경험으로는 영어나 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행복하고 풍요한 삶을 누리는 것 같지는 않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삶이 풍성해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한국어를 잘해야 가능한 일이다.

휴대전화를 켜면 동시통역사처럼 번역 애플리케이션(앱)이 의사소통을 대신 하고 계산기가 계산도 척척 해주며, 무얼 물어봐도 챗GPT(지피티)가 척척 대답해주는 요즘 시대에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원에서 배우는 외국어나 수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친구들만이 아니라 인공지능(AI)과 승부해야 하는 시대에 인간이 갖춰야 할 능력은 상상력이다. 입력된 자료를 바탕으로 조합한 것이 아니라 틀에 박히지 않은 생각을 꺼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힘 말이다. 상상력이란 유전자는 과외수업으로 자라지 않는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잘 노는 사람은 가상 상황에 익숙하다. 놀이는 항상 가상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잘 노는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는 데도 매우 능숙하다. 나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능력은 또 하나의 가상 상황에 나를 세워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잘 노는 사람이 행복하고 잘살게 돼 있다. 그래서 우린 잘 놀아야 한다. 놀이의 본질은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주말에 놀러 온 손자와 동네 봄꽃 구경을 하다 경기 과천의 화원에 데려갔다. 꽃들의 이름을 알려주고 가장 마음에 드는 꽃을 고르게 해 이유를 물었다. 손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란색 팬지와 엄마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빨간색 튤립을 골라 화분에 담아왔다. 손자는 화원을 돌아다니며 꽃과 나무에 인사했다. 요즘 사막여우에 심취한 손자는 “여기는 사막이 아니라 여우가 찾아와 꽃밭을 망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심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공부 못한다고 쥐어박는 할머니가 아니라 장난감이나 꽃과 함께 놀아주는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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