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위해 뭉쳤다… 5인조 요양원장 난타단

김영우 기자 2024. 4. 5.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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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 요양원 원장 5명
2년간 난타 배우고 올해 초 첫 공연
지난달 27일 오후 7시쯤 경기 안양시 만안구의 한 난타 학원에서 5명의 요양원장이 북을 치기 위해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7시쯤 찾은 경기 안양시 만안구의 한 난타 학원. 요양원을 운영하는 원장 5명이 가수 장윤정의 트로트곡 ‘짠짜라’에 맞춰 북을 두드렸다. “어이!” 기합 소리와 함께 연습하던 이들은 박자가 어긋나자 서로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선남(57)씨가 “내가 어떻게 박자가 안 맞았는지 재현해 보겠다”고 농담을 건네자 요양원장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날 연습에 나선 5명은 서울 금천구 요양원장 친목 모임에서 만났다. 코로나로 수년간 요양원 어르신들이 외부와 단절되자, 이들을 위해 무얼 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게 난타 공연이다. 김명자(61)씨는 “코로나로 면회도 막히고 외부 강사도 못 와서 누워만 있던 어르신들이 민요나 트로트처럼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 신나게 춤을 추셨다”며 “어르신들이 큰 북소리를 들으면 스트레스가 풀릴 거라는 기대에서 난타 공연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들은 2022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난타 공연을 연습했다. 금천구의 학원은 코로나로 모두 문을 닫아, 차로 한 시간 거리의 경기 안양시 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난타 강사 현명희(63)씨는 “원래 10명이 넘어야 수업이 가능한데 김씨가 찾아와 ‘우리가 5명뿐이지만 요양원 어르신들을 위해 난타를 배울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며 “진심에 크게 공감해 수업을 열었다”고 했다.

의욕적으로 연습을 시작했지만, 처음엔 걱정이 컸다고 한다. 박도연(57)씨는 “첫 수업에서 선생님 시범을 보고 ‘몸치·박치인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지금도 박자 맞추는 것은 어려운 과제지만 이제는 요양원 어르신들에게 직접 배운 난타를 가르칠 정도는 됐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1월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총회에서 첫 공연을 했다. 우영선(62)씨는 “공연 이후 자신감이 생겨서 이제는 요양원 어르신들 앞에서 난타를 선보이며 같이 악기 연주도 한다”고 했다.

이들이 공연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요양원장들에게 코로나는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자율 방역 체계로 전환됐지만, 상당수 요양원은 여전히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 자가 진단을 해야 출입할 수 있다고 한다. 김명자씨는 지난 2월 난타 학원을 가다가 한 어르신이 위급하다는 얘길 듣고 차를 돌렸다. 김씨는 “코로나 이후 요양원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에 더욱 예민해졌다”며 “한 어르신이 평소와 다르게 축 처지고 혈당이 갑자기 떨어졌다고 해 급히 요양원으로 돌아가 응급실로 모셨다”고 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한때 10여 명으로 늘었던 난타 공연 단원은 5명으로 줄었다.

이들은 오는 20일 금천장애인종합복지관이 주관하는 장애인의 날 행사에 초대받아 난타 공연을 할 예정이다. 이지영(49)씨는 “요양원 어르신들도 일종의 장애를 가진 분들인데, 장애인의 날에 공연하면 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며 “궁극적으로는 전국 요양원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 앞에서 공연하는 게 우리 목표”라고 했다.

다른 요양원장들도 응원에 나섰다. 첫 공연을 본 한 요양원장은 “우리는 색소폰을 배우는 소모임을 만들고 싶다” “일도 바쁠 텐데 어떻게 짬 내서 이런 걸 준비했냐”고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김명자씨는 “다음 공연 무대를 다른 팀에 뺏길까 봐 걱정도 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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