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야죠"... 버려진 식물에 생명 불어넣는 사람들

김태연 2024. 4. 5. 04: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식물유치원'.

백씨는 "처음에는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식물이 안쓰러워 데려왔지만, 그냥 두면 다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얘기를 듣고 '생명'을 살리자는 마음에 구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백씨는 2021년 8월 공덕동으로 이사 온 뒤 주택 앞 마당을 식물유치원으로 명명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79회 식목일]
식물 구조하는 백수혜씨... "같은 생명"
나무 살리는 의사 등 전문자격도 인기
환경 중요성 체감... "자연과 교감해야"
백수혜씨가 4일 서울 마포구 소재 '공덕동 식물유치원'에서 구조된 식물을 돌보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3년 전에 데려온 친구인데 제법 많이 자랐죠?"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식물유치원'. 백수혜(37)씨가 알로카시아를 가리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6.61㎡(2평) 남짓한 마당에 비비추, 배초향, 냉이 등 100종 가까운 풀과 꽃이 한데 모여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은평구 갈현동, 서대문구 연희동 등 재개발을 앞둔 서울 곳곳의 마을에서 방치되다가 '구조'된 식물이다. 백씨는 "처음에는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식물이 안쓰러워 데려왔지만, 그냥 두면 다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얘기를 듣고 '생명'을 살리자는 마음에 구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식물 하면 그저 집에서 키우고 돌보는 '홈 가드닝'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병들고 버려진 식물을 거둬 치유하는, 적극적 보호에 힘 쏟는 이들도 있다. 길거리 동물들을 돌보는 것처럼 식물도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방치 식물의 새 보금자리 '식물유치원'

지난달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인근 재개발단지에서 백수혜씨가 구조한 백합(왼쪽 사진)과 돌단풍. 백씨 제공

구조와 유치원, 선뜻 식물에 붙이기 어려운 단어다. 백씨는 2021년 8월 공덕동으로 이사 온 뒤 주택 앞 마당을 식물유치원으로 명명했다. 생명 하나를 살려보겠다는 개인의 의지에서 나아가 식물의 새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목표가 투영된 명칭이다. 지금까지 300개 넘는 식물을 구조했고, '졸업식'으로 부르는 분양 전까지 정성껏 키운다. 그는 "구조된 풀과 꽃은 고유종(種)이거나 한국의 자연환경에 이미 적응한 경우가 많다"며 "외래종을 들여오고 기르면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과 사연을 게재하자 백씨의 따뜻한 마음은 금세 입소문을 탔고, 동참하겠다는 사람도 여럿 생겼다. 지난해 4월 갈현동에서 함께 식물 구조를 한 유다운(23)씨는 "인간이 떠난 자리에 식물이 어떻게 방치되고 있는지 알게 된 시간"이라며 "구조한 식물을 돌보면서 온도, 습도 등을 신경 쓰다 보니 나를 둘러싼 공간에도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해 10월 동작구 흑석동에서 버려진 무화과나무를 데려온 김모(25)씨도 "버려진 식물을 구조하면서 환경 감수성을 키웠다"고 뿌듯해했다.


식물 가치 눈 뜨게 한 기후변화

식물 사랑은 구조에 그치지 않는다. 나무의사처럼 식물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등 관련 자격증을 따는 전문인력도 많아졌다. 나무의사는 약 150시간의 교육을 이수한 뒤 자격시험까지 통과해야 하는 전문가다. 지난해 12월 한국임업진흥원의 자격 발급현황을 보면, 2019년 52명에 그쳤던 나무의사는 지난해 470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나무의사 자격증 취득 추이. 그래픽=신동준 기자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직업 만족도도 높다. 지난해 나무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김경아(34)씨는 "병·해충 피해를 극복하고 상태가 호전된 나무를 보면서 느끼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경남 양산에서 나무의사로 일하는 김다솔(35)씨도 "자연과 소통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통해 얻는 보람이 크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급격한 기후변화는 무심코 지나쳤던 식물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일상에서 환경 훼손을 체감하는 일이 늘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법,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전용호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고 병·해충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서 덩달아 식물 치료 및 관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고 분석했다.

오랜 감염병 사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반려식물과 조경의 가치를 깨닫는 데 영향을 줬다. 나무의사 제도를 주관하는 산림청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도시숲, 가로수 등 녹지환경 수요가 증가한 것이 자격증 취득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태연 기자 tykim@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