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고수·석사 출신 선생님이 돌봄 수업

표태준 기자 2024. 4. 5.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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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학교 시행 한 달, 학부모 호응
지난 2일 오후 경기 화성시 아인초등학교 늘봄교실에서 1학년 학생들이 양알마 늘봄학교 강사가 진행하는 미술 수업을 듣고 있다. 이 학교는 늘봄학교 참여를 희망하는 1학년 학생들에게 놀이 중심 프로그램 등을 매일 2시간씩 무료로 제공한다. /박상훈 기자

“선생님! 귀엽게 접어야 하는데 (모양이) 반듯하지가 않아요.”

2일 오후 1시 40분 경기 화성시 아인초등학교 학습도움실에서는 1학년 10명이 종이접기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한 학생이 종이로 강아지 얼굴을 접는데 모양이 삐뚤삐뚤하다며 불평하자, 이정연(45) 강사가 직접 접기 시범을 보였다. 이때 다른 학생이 “저는 강아지 귀가 얼굴보다 커졌는데 어떡해요?”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씨가 “귀가 큰 강아지도 많은데 어떻게 알았어?”라고 놀라는 표정을 짓자 학생은 이내 웃으며 “귀엽죠?”라고 말했다.

늘봄학교 강사 한 달 차인 이씨는 경력이 화려하다. 대학에서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어린이집 교사로 6년 넘게 일했다. 10여 년 전 둘째를 출산하고 일을 그만뒀지만, 이후에도 논술, 독서, 종이접기 등 각종 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아이 재우고 밤에 공부해 국어국문학 학사도 땄다. 학사 2개에 자격증 부자인 셈이다. 이씨는 “신입생들은 환경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최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격려해준다”고 했다.

올해 본격 도입된 늘봄학교가 4일 시행 한 달을 맞으면서 학교 현장에서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기존 ‘방과 후 학교’와 ‘돌봄 교실’의 질을 높이고 시간도 늘린 게 ‘늘봄학교’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3월 전국 초등학교 돌봄 교실 대기자는 1만5000명에 달했지만, 올해는 ‘0명’이다. 원하는 모든 학생이 학교 안팎에서 돌봄을 받게 됐다는 뜻이다. 아인초도 작년엔 돌봄 교실 정원이 40명밖에 안 돼서 8명이 탈락했다. 올해는 1학년 145명 중 희망자 60명 모두 돌봄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경기 화성시 아인초등학교에서 이정연 늘봄학교 강사가 종이접기 수업을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특히 이씨처럼 ‘베테랑 교육 인력’이 강사로 투입되면서 학부모 반응이 좋다. 현재 전국 6175개 초등학교의 46%(2838교)가 늘봄학교를 운영하며, 학생 13만5599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는 1만7197명이다. 이들 외에 행정 인력으로 3634명이 신규 채용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늘봄학교 시행 후 1만명 넘는 채용이 발생한 데다가 강사 업무 시간은 하루 2~3시간으로 길지 않아서 경력이 단절됐던 ‘은둔 고수’ 선생님들이 많이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인초에서 방과 후 미술 수업을 하는 양알마(38) 강사도 ‘숨은 고수’다. 양씨는 대학에서 도예(陶藝)를 전공하다 교육에 관심이 생겨 도예 정교사 2급 자격증을 따고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미술교육 석사까지 마쳤다. 이후 미술 정교사 1급 자격증을 따고 중·고교에서 6년간 근무했지만, 육아 등을 이유로 교육 현장을 떠나 있었다. 양씨는 “하루 2~3시간 정도면 아이 키우면서 할 수 있어 도전하게 됐다”면서 “학교 아이들이 제 아이(6·8세)들과 나이가 비슷해서 더 애틋하고 열정적으로 가르치게 된다”고 말했다.

아인초에는 늘봄 수업을 듣기 위해 기존에 다니던 학원을 그만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아인초 1학년 학부모 심윤희씨는 “퇴근할 때까지 아이가 ‘학원 뺑뺑이’ 돌 때 드는 비용을 계산하니 월 70만원이 나오더라. 늘봄학교가 생겨서 돈도 안 들고 학원 대신 맡길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원흥초에는 ‘메달리스트’가 늘봄 기간제 교원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86 아시안게임 여자 펜싱 플뢰레 은메달리스트인 박순애(58)씨다. 박씨는 오전엔 체육 정규 수업을 하고, 오후엔 늘봄학교 관련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가끔 아이들과 놀이 체육 활동도 한다. 박씨는 국가대표를 한 이후 고교 펜싱 코치와 스포츠 강사로 일하면서 체육 정교사 2급 자격증을 땄다. 그러다 육아 때문에 교육 현장을 떠났다가 이번에 십수년 만에 복귀한 것이다. 그는 “학교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어 제게도 큰 행복”이라고 했다.

정부는 2학기에 전체 초등학교로 늘봄학교를 확대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6일 늘봄학교 범부처 회의에서 “늘봄학교의 성공은 부모 지위가 자녀에게 세습되는 것을 막아 우리 사회를 더 역동적이고 이동성이 활발한 나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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