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540명 떠난 아산병원 “급한 암환자도 3개월 대기”

김철중 기자 2024. 4. 5.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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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암병원 현장 가보니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2일 오전 서울 소재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 신입 전공의 모집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뉴스1

지난 1일 월요일 오전 8시 서울 송파구에 있는 서울아산병원 3층 수술실. 축구장 3개 정도 크기 공간에 수술실 70여 개가 복도 양쪽으로 길게 도열해 있다. 국내 최대 규모다. 보통 월요일 아침은 주말에 밀려든 입원 환자의 수술이 한창 이뤄질 시간이지만, 수술실 절반 정도가 텅 비어 있다. 수술 준비로 바쁜 의료진으로 북적이는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수술실 복도는 썰렁했다. 수술 장비와 수술 보조 영상 장치들이 복도 한편에 쌓여 있다.

입원 병상 2700여 개를 보유한 국내 최대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암 수술만 2만3300여 건을 했다. 신규 암 환자 3만6200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우리나라 신규 암 환자 7명 중 한 명이 이 병원서 치료를 받은 셈이다. 아산병원은 국내 암 수술의 약 13%를 하고 있다. 입원 환자의 절반 이상이 암 환자일 정도로 매머드급 암 병원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전 세계 의사 108명이 수술을 배우겠다고 연수 와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평가받는다.

언제쯤 들어갈 수 있나요 - 지난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전공의 이탈로 수술·입원 건수가 반 토막 났다. /김지호 기자

그런 서울아산병원이 전체 전공의 565명 중 540여 명이 의대 증원 결정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자, 수술이 반 토막 났다. 수술 전 준비와 수술 후 처치 관리를 도맡아 하던 전공의들이 없으니, 예전처럼 수술을 진행할 수 없는 것이다. 평소 하루 280~300건이던 수술 건수가 150~160건으로 줄었다. 이 중 절반이 암 수술이었다.

지금은 교수들이 수술이 끝난 환자의 카트를 직접 밀며, 환자를 회복실로 이송하고 있다. 입원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던 병원이었는데, 현재 입원 환자도 반 토막 났다. 평소 입원 병상 가동률은 95%였는데, 현재는 50% 초반대로 떨어졌다.

그래픽=양인성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초 예정된 암 수술이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본래 암 환자가 워낙 많아서 암 수술을 한 달 이상 기다리는 상태였는데, 이번 사태로 하염없이 더 밀리고 있는 것이다. 한 위장관외과 교수는 “교수 9명이 단톡방을 만들어서 정말 수술이 급한 환자를 서로 공유해 그 환자부터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며 “암 수술 앞둔 환자들이 수술이 연기됐다고 하면 그사이 암이 번지면 어떻게 하느냐며 항의하고 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어 괴롭다”고 말했다. 병원 외래에 있는 항암제 치료실, 여기에는 전공의가 관여하지 않았던 탓에 치료가 80% 이상 이뤄지며, 암 환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현재 당장 수술이 시급한 위암 환자의 경우 석 달까지 밀려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방광암, 신장암 등 비뇨의학과 암 수술은 3분의 1만 겨우 진행돼 수술이 수개월 연기될 판이다. 진단받은 신규 암 환자는 병원 진료 접수조차 제한받고 있다. ‘암 정복=조기 발견, 조기 치료’라는 말이 무색한 상황이다. 암 수술이 연기된 환자에게 당장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옮기길 권고했으나 이들의 90% 정도는 아산병원 수술을 기다리겠다고 답했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교수들이 번갈아 가며 병실 당직, 야간 당직, 외래 진료, 수술을 맡고 있다. 이들은 “체력적으로 힘들어 앞으로는 수술을 더 줄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암 환자를 가장 많이 치료하고, 그래서 전공의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대형 병원에서 암 환자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전공의 이탈로 수술·입원 건수가 반 토막 났다./김지호 기자

의학계에서는 암 진단 후 수술이 한 달 반 정도 이내 이뤄질 경우 생존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나, 두 달이 넘어가면 암 생존율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의대 윤영호 교수팀이 암 수술을 받은 환자 14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단과 수술 시차(한 달)에 따른 5년 후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수술을 한 달 이상 기다린 환자는 한 달 안에 수술받은 환자보다 사망률이 유방암은 59%, 직장암 28%, 췌장암은 23% 높았다. 암 수술 연기 파동은 전국 주요 대학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기에 의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올해 암 생존율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원장은 3일 소속 교수들에게 단체 메일을 보내 “2월 20일부터 지난달까지 의료 분야 순손실이 511억원에 달했지만, 정부가 수가 인상을 통해 지원한 규모는 17억원에 불과하다”며 연말까지 상황이 이어지면 순손실 규모가 4600억원에 달할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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