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친구들 위한 길을 고민하는 마음은 왜 없을까…[그림책]
벽의 마음
유하정 글·안효림 그림
책고래 | 40쪽 | 1만4000원
쭉 뻗은 고속도로 위를 차들이 달린다. 커다란 트럭, 시커먼 자동차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시원하다. 도로를 조금 더 자세히 본다. 거대한 움직임들 사이 작고 느린 움직임이 보인다. 새끼 고라니. 새끼 멧돼지. 새끼 고양이. 도로를 한번 건너가 보려던 작은 동물들이다.
<벽의 마음>은 로드킬에 관한 그림책이다. 화자는 고속도로에 붙어 있는 높은 벽이다. 고속도로가 위치한 곳은 산이다. 한쪽에는 벽이, 다른 한쪽에는 산이 있다.
산에 사는 동물들은 자꾸만 벽이 있는 쪽으로 건너오려고 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차들은 미처 이들을 보지 못한다. 고라니는 어제 봤던 개망초꽃을 다시 보러 가려다, 멧돼지는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가려다, 고양이는 혼자 걸음마 연습을 하려다 차에 치인다. 달리는 차에 받히고도 조금씩 움직여 결국엔 도로를 다 건넌다. 그리고 지친 몸을 벽에 기댄다.
벽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처음부터 도로를 건너오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고, 차를 천천히 달리게 할 수도 없다. 벽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린 동물들이 벌벌 떨며 자신에게 기댔을 때 온 마음을 다해 함께 버텨주는 것뿐이다. 너무 무섭지 않도록. 너무 춥지 않도록.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지만 이야기의 끝은 아름답지 않다. 꽃을 보고 싶어 했던 고라니의 눈에 마지막으로 담긴 것은 차의 바퀴다. 멧돼지는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고양이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다. 무언가 하고 싶었던 작은 마음들은 이제 없다. 벽은 마음을 다했지만, 벽의 마음만으로는 이런 일을 막을 수 없다. 굳이 산과 산 사이에 도로를 놓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차를 위한 길을 놓을 때 동물을 위한 길을 고민하는 마음은 왜 없었을까.
유하정이 쓴 담담한 시에 안효림이 부드러운 그림을 그렸다. 회색과 분홍색, 두 가지 색만 사용해 도로 위의 속도감과 로드킬의 끔찍함, 벽의 슬픔을 표현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본다면 정말 ‘벽의 마음’은 어땠을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겠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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