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지주’인가 ‘사회사업가’인가

한겨레 2024. 4. 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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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태도의 지주 가문 도련님이었다.

서태석과 박복영 등 나중에 소작쟁의를 이끈 인물들과 친했다.

정병준의 논문에 따르면 "암태도 소작쟁의 이전 경제적 빈부의 차이는 있었지만, 서태석·박복영·문재철 3인의 정치의식과 활동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부터 백년 전, 소작쟁의가 본격화되자 문재철은 지주 계급의 이익에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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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문재철 (1883~1955)

암태도의 지주 가문 도련님이었다. 서태석과 박복영 등 나중에 소작쟁의를 이끈 인물들과 친했다. 1924년 초에는 전조선노농총동맹 창립준비회에 축하문을 보내기도 했다. 정병준의 논문에 따르면 “암태도 소작쟁의 이전 경제적 빈부의 차이는 있었지만, 서태석·박복영·문재철 3인의 정치의식과 활동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부터 백년 전, 소작쟁의가 본격화되자 문재철은 지주 계급의 이익에 충실했다. 지나치게 충실했다. 소작료를 5할에서 4할로 내려 달라는 요구를 거부했고, 서태석 등 소작쟁의 지도부를 유인해 폭행했다. 다른 지주 천씨 집안에서 소작료를 인하하려 하자 화를 내며 말렸다고도 한다. 일제 경찰 당국이 문재철에게 양보하라고 압력을 넣을 정도였다.

소작인들이 승리한 뒤에도 문재철은 한동안 심술을 부렸다. 문재철은 소작인 단체에서 사람을 빼 오려고 지주소작상조회를 결성했고, 소작인 단체와 관련이 있던 암태취급점을 탈취했다. 소작인들이 육지를 오가는 배편까지 통제하려다 반발 때문에 그만두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제 강점기의 악덕 지주”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문재철이라는 인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몰강스럽게 그러모은 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한센병 환자를 도왔고, 학교가 없던 곳에 학교를 세웠다. 독립운동에 거금을 쾌척했다는 증언도 있다. 박복영에 따르면, 문재철이 임시정부에 전달해 달라며 자신에게 독립자금을 건넸다는 것이다. 다른 증거가 없어 이 일화를 어느 정도로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소작쟁의 때 첨예하게 대립했던 박복영이 이를 증언했으니, 거짓이라고 딱 잘라 무시하기도 어렵다.

문재철의 진실은 회색의 영역에 있다. 해방 뒤 반민특위(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되기도 했으나 처벌받지 않았다. ‘친일인명사전’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교육계에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다. “정부는 박복영-문재철-서태석 순으로 이들이 모두 국가 유공자임을 인정해 포상했다. 21세기 한국은 이들 세 사람의 세 가지 길을 모두 자신의 역사로 포용한 것이다.”(정병준)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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