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창조 모니터 요원에서 K-팝 리더로…“K-팝이라는 용어 생긴 것이 가장 놀라운 일”

2024. 4. 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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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CAO의 K-팝 입문기
음악 언어 이해하려 따로 공부
“같이 가야 멀리 가”…동반 성장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CAO·KMR 대표 [SM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작곡을 전공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었고, 대중음악 황금기에 성장한 덕에 자연스럽게 가요와 팝에 눈을 떴다. 일찌감치 피아노를 배웠지만, 아버지는 정작 “넌 어설프게 잘 할 것 같다”며 ‘음악의 길’을 만류했다.

드뷔시의 ‘달빛’을 감미롭게 연주하고, 샤이니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와 ‘내가 사랑했던 이름’을 쓴 작곡가. K-팝 부흥기와 전성기를 이끈 음악 비즈니스맨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CAO(Chief A&R Office·A&R 이사)의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M에 인턴 사원으로 첫 출근한 해였다.

그룹 신화가 데뷔했고,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유니텔 등 4대 PC통신을 통해 팬덤이 커져가던 시기. 그에게 주어진 첫 업무는 ‘신화창조의 동향 파악’이었다. 이 곳에서 팬덤의 이야기를 듣던 그에게 대중음악의 세계가 호기심처럼 내려앉았다.

“그 때 신화 팬클럽의 동향을 살피다, 음악방송 모니터를 하며 점차 영역이 확장됐어요. H.O.T에서 만들어진 팬덤의 문화를 비즈니스와 접목하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롭더라고요. 그걸 제일 처음 시작했던 것이 SM이었고요. 대중음악계를 가까이서 보게 되며 음악 비즈니스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짧은 인턴 생활 이후 군대에 다녀와 2002년 다시 인턴으로 근무했다. 정식으로 입사를 한 것은 2005년 8월. A&R 담당으로 대중음악 산업에 첫 발을 디딘 후 이 CAO는 “음악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음악하는 사람들과 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음악 공부에도 매진했다.

“스스로 음악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작곡, 컴퓨터 음악을 공부했어요. 입사 초창기엔 퇴근하고 새벽까지 작업을 하기도 했고요. 이후엔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A&R에 집중하면서 창작보다는 일상의 위안 정도로만 피아노를 치고 있어요. (웃음)”

빠르게 익힌 실무 감각으로 2009년 A&R 팀장으로 승진한 뒤 그는 K-팝의 황금기를 맞았다. SM 특유의 색을 담은 음악이 쏟아지며 이 CAO 역시 최고의 성취를 쌓던 시기였다. 동방신기, 보아, 소녀시대, 샤이니, 슈퍼주니어, f(x)가 한국 대중음악계를 호령했고, SM은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국 시장을 개척할 때였다. 그 중심에 이 CAO가 있었다.

지난 20년 SM과 대중음악계를 이끄는 동안 이 CAO가 마주한 변화의 순간들이 많다. 그는 “돌아보니 K-팝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 무척이나 놀라웠다”고 말한다.

“2009~2010년 즈음 K-팝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많이 쓰이게 됐던 것 같아요. K-팝은 사실 국내에서는 불필요한 용어죠. 해외에서 K-팝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고, 처음엔 단어 자체가 어색했는데 전 세계를 관통하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K-팝이 퍼지며 조명받았어요.”

2009년 SM은 업계 최초로 자사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의 음악이 전 세계로 향했다. 그는 “K-팝을 만드는 필수 요소인 음악, 퍼포먼스, 스타일링 등 ‘굿-룩킹(good-looking)’한 모습을 보여주는 종합 콘텐츠를 알리기 위해 채널을 열었고, 음악을 보고 듣는 플랫폼이 마땅치 않던 시절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K-팝이 확산됐다”고 봤다. 당시 SM을 필두로 빅뱅, 2NE1의 YG, 비, 2PM, 원더걸스의 JYP, 카라의 DSP가 공존하며 시장을 키우고 K-팝 브랜드를 쌓아나갔다. “K-팝 사상 가장 재밌는 세대였던 때”라고 한다.

그는 “지금도 그렇지만, 15년쯤 전이었던 2010년, 2011년에도 ‘K-팝이 언제까지 갈 것 같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지금과 그 때의 다른 점이라면 당시 질문의 기저엔 ‘원히트 원더’처럼 사라질 것 같은데 어떻게 보냐는 비관론의 질문이었다”고 했다.

“이제는 어느 한 사람, 하나의 기업의 성과가 아닌 K-팝 전체가 산업으로 함께 성장, 진화하는 때가 됐어요. SM 혼자 뚫고 나갈 때는 퍼스트 무버로서의 의미와 힘듦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거대한 콘텐츠로 전 세계에 대응하며 선의의 경쟁을 주고 받는 동반자가 됐어요. 오늘보다 내일을 더 기대해야 하고, 지켜봐야 하는 산업이 됐다고 봐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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